서성룡 단디뉴스 편집장
서성룡 단디뉴스 편집장

이번 22대 총선에서 가장 큰 이변은 아마도 ‘조국혁신당’이라는 돌풍일 것이다. 물론 4월 10일 밤 또는 11일 새벽까지 모든 투표함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비례전용 정당으로 다소 늦게 닻을 올린 조국혁신당의 지지도는 시간이 갈수록 상승하는 분위기라 못해도 10석 이상은 가져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20년 총선이나 22년 대선처럼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양대진영으로 나뉘어 서로를 ‘종북 빨갱이’와 ‘친일매국노’로 비난하며, 선거판을 ‘한일전’혹은 ‘남북전’으로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조국혁신당의 출현으로 조금은 다른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보는 이에 따라 일명 ‘조국당’의 돌풍은 매우 이례적인 것일 수 있겠지만, 지난 선거 역사를 돌아볼 때 ‘바람’은 대한민국 선거에서 그리 낯선 손님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마다 7,8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처럼 선거 때마다 거의 매번 대한민국에는 ‘바람’이 상륙해 돌풍을 일으키고 민심을 뒤흔들었다.

북회귀선을 따라 북반구로 이동한 태양열로 한껏 뜨거워지고 습해진 태평양의 수증기가 태풍의 강력한 에너지원이라면, 한반도에 선거 때마다 부는 태풍의 에너지원은 무엇인가.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선거태풍’의 일반적인 에너지원은 기존 정치에 대한 염증과 그것을 넘은 ‘혐오’ 감정이다.

지금은 그 이름을 아는 이도 드물겠지만 한때 대한민국엔 ‘문국현’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다.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문국현은 화장지와 여성용품을 생산하는 유한킴벌리의 대표로만 기억될 뿐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 민주적인 회사 경영방식이나 자연친화 활동 등이 보도되면서 하루아침에 정치권으로 소환됐다.

대중에게 각인된 문국현의 이미지는 우선 ‘깨끗하다’, 그리고 ‘능력 있다’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까지 보아온 기존 (더러운) 정치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국현 바람은 그가 실제 정치에 입문한 후로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특히 대선이라는 검증무대에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과정에 증여세를 탈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명박과 정동영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2012년 대선에선 안철수 바람이 불었다. 의사 출신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 ‘V3’를 만든 지식인이자 성공한 기업인으로 알려진 그는 정치 입문 초입에 대번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그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역시나 가장 큰 강점은 ‘정치에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일 게다.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 과정,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국회 입성,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돌풍도 ‘기존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과 각자 분야는 달라도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이라는 점이 주효했다. 권좌에 오르자마자 처가와 아내에 대한 특검 거부권 행사와 최근 ‘입틀막’ 논란으로 비호감 정치인으로 추락한 윤석열 대통령도 한때는 ‘정치에 물들지 않고 아군에게도 칼을 대는 청렴한 검사’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또한 조국이 정치권에 본격 진입해 총선이라는 링 위에 오르자마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기존 정치에 대한 전 국민적 실망과 정치혐오 정서를 제대로 공략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아내 김건희 여사의 방패막이용에 불과한 국힘의 조용한 공천도 마음에 들지 않고, ‘비명횡사’라는 웃지도 못할 단어를 만들어낸 민주당의 계파정치에도 상처받은 민심이 조국이라는 바람의 가장 큰 에너지원인 것이다. 또한 ‘검찰독재’라는 말로 밖에 설명 안 되는 윤석열 정권의 통치방식과 인사행태에 대한 염증과 국민적 반감이 조국 바람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

어찌됐건 22대 총선으로 조국은 국회에 입성하게 될 것이고, 이제부터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정치 역량을 대중들에게 입증해보여야 한다. 희망보다는 혐오에 기초해 분 ‘바람’은 언젠가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태풍의 눈’이 됐던 인물들은 대개 정치권에 들어간 후 기존 정치구도에 동화되거나 밀려나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 이러한 반복은 한국 정치 지형을 조금씩 바꾸긴 했지만 정치 발전에는 도움이 안 된 것 같다.

그래서 인물이 아니라 구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다. 진보정당의 출현이 지루한 양당정치를 끝내고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치로 판을 바꿀 것이라 기대를 모은 적도 있었지만, 양당구도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고 이번 총선에서는 그 존립마저 위태로워졌다.

조국혁신당은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와 마찬가지로 정치구도를 개선하는 흐름에 정확히 역행하는 비례위성정당임이 분명하다. ‘검찰독재 종식’을 중요한 정치지향으로 앞세우지만 앞 순번을 차지한 상당수가 법조계 출신이라는 것도 한계로 보인다.

조국혁신당이 대한민국 정치권에 불었던 이전의 바람들과 마찬가지로 ‘찻잔 속 태풍’으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구도에 대한 개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혐오’를 먹고 자라는 진영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도록 한국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결국 민주당에 흡수될 비례위성정당에 너무 큰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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