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초록걸음 이후 2개월간의 쉼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시작한 지리산 초록걸음, 어느새 13년째로 접어들었다. 121차 초록걸음은 40여 명의 길동무와 함께 함양 마천 벽송사에서 용유담을 거쳐 휴천면 와룡대까지 엄천강을 따라 걸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만났다.

도인송 아래서 올해 초록걸음 펼침막 ‘지리산과 함께라 행복합니다’를 펼치고서...
도인송 아래서 올해 초록걸음 펼침막 ‘지리산과 함께라 행복합니다’를 펼치고서...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벽송사 전경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벽송사 전경
도인송을 흠모하며 가까이 가려 하는 미인송
도인송을 흠모하며 가까이 가려 하는 미인송

걸음을 시작한 벽송사는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전해지는데 판소리 ‘변강쇠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신라 시대에 창건, 조선 중종 15년(1520년) 벽송 지엄대사가 개창했고 한국전쟁 때 미군기의 폭격으로 소실되었다가 1963년 원응 구환스님이 다시 짓기 시작해서 1978년에 완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는데, 국군이 기습해 불을 질러 치료 중이던 인민군 환자들이 많은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 벽송사 제일 위쪽에는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그 옆엔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도인송과 그 도인송을 흠모하는 미인송이 300년 넘는 세월 동안 벽송사와 함께 칠선계곡을 굽어보고 있다. 도인송 아래서 박남준 시인의 시 ‘지리산 둘레길’을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리면서 2024년 한 해 안전한 발걸음을 기원하고 또 지리산의 의미를 각자의 가슴에 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도인송 아래서 위로 올려다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도인송 아래서 위로 올려다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만에 하나 지리산 댐이 생겼다면 수몰될 뻔했던 용유담에서
만에 하나 지리산 댐이 생겼다면 수몰될 뻔했던 용유담에서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용유담 너럭바위에서 푸른 강물을 즐기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용유담 너럭바위에서 푸른 강물을 즐기다.

벽송사를 한 바퀴 돌고서는 서암정사 방향이 아닌 모전마을 쪽으로 난 둘레길을 따라 용유담으로 향했다. 약간의 능선길을 오른 후 계속된 내리막을 1시간가량 걸어 도착한 용유담은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물빛으로 우리를 반겼다. 만에 하나 지리산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되지 않았다면 수장될 뻔했던 용유담을 흐르는 강물이 항상 이렇게 맑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비만 오면 엄천강 상류 운봉 쪽에서 상습적으로 내보내는 축사 분뇨로 오염된 강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너럭바위에 앉아 길동무들과 맛난 점심을 먹으며 용유담의 비경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후 발걸음은 용유담에서 시작해 아스팔트 포장길인 둘레길 대신에 함양군이 엄천강을 따라 조성한 전설탐방로를 걸었다. 마천(馬川)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말이 달려오듯 그렇게 흘러왔던 엄천강은 용유담을 지나 휴천(休川)면에 이르러 그 물살이 쉬엄쉬엄 흐르게 된다. 엄천강을 따라 세동마을을 지나는데 이 세동마을은 한때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닥종이 생산지이기도 했던 마을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이 마을의 모든 집은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억새로 띠를 이어 얹은 샛집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용유담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바위에 앉은 부부 길동무1
용유담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 바위에 앉은 부부 길동무1
용유담 푸른 강물에 넋이 나간 부부 길동무2
용유담 푸른 강물에 넋이 나간 부부 길동무2
마천 쪽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부부 길동무3
마천 쪽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부부 길동무3

세동마을부터 도착지인 와룡대까지는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야 하는데, 가능하다면 엄천강을 따라 논둑길을 걷도록 한다면 더 둘레길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십여 년이 된 지리산 둘레길도 전체적으로 노선 점검을 해서 좀 더 둘레길스럽게 노선을 수정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팍팍한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도착한 와룡대,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아주 넓은 너럭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정여창과 김일두 선생이 이곳을 가히 살만한 곳이라는 의미로 가거동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던 곳이다.

지리산을 그대로’ 배낭 깃발이 있어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길동무
'지리산을 그대로' 배낭 깃발이 있어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길동무
배낭에 매달린 쓰레기 봉지가 초록걸음의 의미를 더해준다.
배낭에 매달린 쓰레기 봉지가 초록걸음의 의미를 더해준다.

와룡대에서 푸른 하늘과 함께 엄천강 푸른 강물이 어우러진 2024년 첫 초록걸음은 봄볕 같은 길동무들의 환한 미소로 마무리되었고 봄이 더 깊어갈 4월의 초록걸음을 기약하며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24년 초록걸음의 안전 기원과 다짐으로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린 필사 시
2024년 초록걸음의 안전 기원과 다짐으로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린 필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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