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김영란법’ 왜 비켜가나
공정하지 않은 행태 더는 버티기 어려워

홍창신 칼럼리스트
홍창신 칼럼리스트

'김영란법'이 제안되고 논란을 거쳐 마침내 시행된 것이 2016년이다. 국민권익위원장이던 대찬 법률가 김영란이 처음 입을 떼고 4년 만이다. 깎이고 발려 본래 정신에 흡족하게 부합하지 못했다 하나 그럼에도 그것은 구태의연한 세상을 회까닥 뒤집는 획기적인 법이었다. 법 같은 거 백 촌이 넘는 소시민의 눈으로 보기에 저건 단순히 법안 하나를 시행하는 것 이상의 기념비적 '사건'이라 여겨 나는 이 법을 '천지개벽법'이라 불렀다.

민주화 이후 큰 변화가 있었지만 하급 관료들의 행악은 소시민이 노상 맞닥뜨리는 것이 오랜 폐습이었다. 인허가를 받거나 행정 서류를 발급받으러 가노라면 하대하는 버르장머리가 몸에 배어 있었다. 법원 귀퉁이에 붙은 등기소에서 등본 하나 떼려 해도 말단 서기가 부리는 위세가 대단했다.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는 으레 웃돈이 얹혔다. 경찰은 범칙금을 현금으로 징수하고, 교사는 제자 사랑을 봉투로 되받고, 기자는 기사를 수표와 맞바꿨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던 뻔뻔한 세상이었다.

'김영란법' 시행령의 거래 한도는 음식물 3만 원, 축의금과 조의금은 5만 원, 화환 조화 10만 원, 선물 5만 원이다. 얼마나 간명한가. 그것은 부패의 순을 자르는 처방이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손바닥 뒤집듯 단번에 될 리야 없다. 윗물에서 노는 큰 도둑들의 거래는 더 은밀하고 교묘해질밖에. 그 매듭을 깔끔하게 끊는 날 선 칼이 필요했다.

검사 윤석열이 내세운 '공정과 정의'는 시대의 요구에 때맞춰 출현한 '명검'으로 박수받았다. 그 칼로 윤석열은 조국을 베고 이재명을 찔렀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었다. 빌미는 모두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었다.

총선에 이변이 일어났다. '조국혁신당'이 창당 보름 만에 10만 당원을 돌파하고 지지율 20%에 이르더니 이제 30%를 넘본다. 남은 기간에 요변이 일어날 여지가 있으나 '조국당'은 적어도 제3당에 오를 것임이 자명해졌다. 1, 2심에서 2년 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죄인 '조국'에 저리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갖가지 죄명을 치렁대며 법정에 끌려다니는 이재명은 그 무수한 칼질에도 또 어째 저리 꿋꿋한가. 시방 더불어민주당은 유착된 언론의 일방적 해코지에도 외려 지지세를 더 넓혀가고 있지 않은가.

'뽀록'이 난 것이라. 그동안 드러난 정황으로 그들에게 휘두른 칼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보검이 아니라 선무당이 생사람 잡는 칼질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이 굳어진 것이다. '공정'이란 것은 나에게나 남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올바름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저울로 달아본다. 김건희가 받은 300만 원짜리 디오르 백(가방)과 김혜경이 치렀다는 밥값 7만 6000원을. 곽상도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 원과 조국의 딸이 받은 장학금 600만 원을. 한동훈이 숨긴 27자리 비번과 박은정 검사가 내준 비밀번호 네 자리를.

나라 살림은 갈수록 곤두박질치는 모양새인데 대통령은 여전히 우쭐거리고 낯빛은 반질거린다. 남북 관계는 험악하게 만들고 일본에는 연신 굽실거린다. 부자 세금은 통 크게 깎아주더니 복지와 연구·개발(R&D) 예산마저 무자비하게 깎아버린다. 무역적자는 늘어가고 물가는 치솟는다. 사과 한 개 1만 원이라 비명을 지르니 대파 한 단 875원이라 들고 흔드는 행색을 보며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이대로 3년을 더 버텨낼 수 있을까.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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