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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기의 미음완보] 가까이 있어서 더 큰 것의 소중함

기사승인 2018.03.02  08: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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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집들이 모여 있기에 동네가 유지되고 사람들은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일요일 아침 7시쯤 목욕하러 나선다. 1시간쯤 뒤 돌아오면 배가 고플 게 뻔하다. 보통 6시 30분쯤 밥을 먹으니까. 찌개를 뭘 끓일까 생각하다가, 설날 얻어 놓은 돼지 수육이 떠올랐다. 김장김치를 숭숭 썰어 먼저 끓이다가 수육과 두부를 넣으면 얼큰한 김치찌개가 된다. 수육으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건 내 비법이다. 김치찌개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펭귄유통은 대개 8시쯤 문을 여는데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게 생겼다. 목욕비와 두부값을 운동복 주머니에 넣고 대문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펭귄유통(요즘은 ‘펭귄 프레시 마트’라고 영어 알파벳으로 이름을 붙여 놓았다)을 지나다가 ‘상중(喪中)’이라고 써 붙여 놓은 걸 보게 됐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싶어졌다. 2004년부터 14년 남짓 오며가며 들르는 곳이어서 그 집 어른 부부와 아들 부부를 대충 안다. 그들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아니면…. 아무튼 큰일은 아니길 빌면서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에 들어서자마자 배가 툭 꺼져버렸다. 1시간은 해야겠는데 어떻게 보낼까 걱정되었다. 그보다 더 큰 걱정은, 펭귄유통이 문을 닫았으니 두부를 사기 어려워졌고 그렇다면 끓여 먹으려던 김치찌개를 끓이지 못하게 되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반찬을 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보글보글 끓는 찌개 영상이 자꾸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1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실제로는 40~50분쯤 있다가 뛰쳐나왔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정말 고맙게도, 펭귄유통은 열려 있었다. 한걸음에 달려들어가 두부를 찾았다.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아니까. 계산대에 선 분은 좀 낯설다. “아까 지나갈 때 상중이라고 쓰여 있던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예, 저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라고 짧게 답한다. 할머니 상중에도 가게 문을 닫아둘 수 없어서 한 명이 일부러 아침부터 달려온 것일 테다. ‘그러시구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여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두부를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 김치찌개는 뒤로 미루고 대충 밥을 때웠다.

 

펭귄유통은 유명하다. 진주시내에서 술 마신 뒤 택시를 타고서는 ‘국제아파트’로 가자고 하면 잘 모르는 기사가 간혹 있어도 ‘펭귄유통’이라고 하면 잘 알아듣는다. “국제아파트 갑시다.”라고 하면 “펭귄유통 있는데 맞죠?”라고 되묻는 기사도 많다. 펭귄유통은 우리가 이사하던 2004년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곳이고 앞으로도 우리 아파트보다 더 오랫동안 있을 것 같다.

 

퇴근길에 펭귄마트에 들러 귤도 사고 막걸리도 사고 두부도 사고 햇반도 사고 라면도 사고 과자도 사고 달걀도 산다. 여름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씩 산다. 면도기 칼날도 사고 건전지도 사고 노끈도 사고 유리테이프도 산다. 없는 게 없는 듯하고, 필요한 물건 대부분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잘 안다. 이런 펭귄유통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 좀 난감해진다. 어떤 때는 아주 불편할 것이다. 물론,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살 때는 차를 몰고 탑마트나 농협 하나로마트를 가기도 하지만 펭귄유통 없으면 아들이나 나는 늘 심부름 때문에 다툴지도 모른다. 5분 정도 더 걸어가면 편의점도 있지만, 한번 가자면 옷도 갖춰 입어야 할 것 같고 없는 것도 많을 것만 같다. 편의점은 나에겐 불편의점이다.

 

 

큰바위서점이 있었다. 진주교대에서 진양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편에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내가 찾는 책 대부분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시간이 남아서 들르기도 했고 도서상품권을 사기 위해 들르기도 했고 누구에게 책 선물을 하기 위해 들르기도 했다. 진주문고와 함께, 가끔 가던 곳이다. 그러던 큰바위서점이 문을 닫았다. 책이 잘 안 팔린 것이다. 서점 한 귀퉁이를 커피숍으로 내어주며 살길을 모색했지만 큰 도움은 안 되었던가 보다. 정확히 언제 문을 열었다가 언제 닫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서점이 없어지자 많이 불편해졌다. 서점 건너 학원에 다니던 아들은 교재를 사러 진주문고까지 무거운 가방 메고 걸어가야 했다. 약속이 있어 케이비에스 방송국 쪽으로 가던 나도 책이나 도서상품권을 사기 어려워졌다. 오며가며 잡지도 더러 사곤 했는데 없어지고 나니 불편했다.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은 때문인지 도서정가제를 한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느날 서점 문 앞에 붙여 놓은 ‘폐업 안내’ 글귀는 어쩐지 섭섭하고 쓸쓸하게 만들었고 그다음 마음은 당혹스럽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진주문고가 한창 공사를 벌이고 있다. 2월까지 끝내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좀 늦어지는가 보다. 1~3층 건물 가운데 우선 임시로 3층에서 책을 팔고는 있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1~3층이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날 것 같다. 진주문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그래도 서점은 책의 집이다. 그 집 주인공은 당연히 책이다. 아무리 독서 인구가 줄고 독서 경향이 편향되더라도 서가를 없애거나 특정 분야 책을 성급히 줄일 수 없다. 지금 장서량을 유지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늘려야 한다.”라고 해 놓았다. 그러면서 지역민의 동아리(공동체) 공간, 소프트웨어 사업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단장하겠다고 의지를 밝혀 놓았다. 기대가 크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면, 새 책은 바로 다음날 배달돼 온다. 헌책이나 구하기 어려운 책도 며칠 안으로 보내준다. 진주문고에 책 사러 가면 금방 척 찾아준다. 살 책만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책도 넘겨 보고 읽어 보게 된다. 지금 없는 책을 주문하면 다음날 연락 온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은 새학기가 되거가 학원 교재가 바뀌면 두말없이 진주문고로 달려간다. 어떤 땐 큰 가방을 메고 가 여남은 권을 사오기도 한다. 만약 진주문고가 없었더라면, 당장 저녁에 또는 내일 오전에 필요한 교재를 어디에서 사게 될까. 큰 서점이 가까이 있으니 덕 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까이 있어 귀한 줄 모르고 가까이 있어 하찮게 생각하는 일이 많다. 동네 고깃집, 이발소, 생활용품 가게, 중화요릿집, 칼국숫집, 목욕탕, 세탁소 따위가 그렇다. 보현갈비, 안고집, 보현이용원, 펭귄마트, 락영루, 함양식당, 동림탕, 새하얀새탁소, 유성크리닝 등의 간판을 달고 있는 이 집들은 우리 동네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런 집들이 모여 있기에 동네가 유지되고 사람들은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하나가 문을 닫으면 이래저래 불편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큰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우리 일상을 깨알같이 버티고 있던 무엇 하나가 툭 부러지는 느낌이 무척 클 것이다.

먼곳에 있는 탑마트나 지에스마트나 이마트 가서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고 사는 것을 말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식당이 그렇고 이발소도 그렇고 목욕탕도 다르지 않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멋진 곳에 가서 최신 유행 머리 모양을 따라 하고 으리으리한 목욕탕에 가서 때를 벗기는 건 자유다. 그렇다 하더라도 몇 발짝만 나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하게 해주는 가게들의 필요성과 고마움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되겠다.

조용필 노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가사 가운데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이라는 부분이 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 꼭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새겨봄 직한 말이다.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것과 더 먼데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것은 같은 크기이고 같은 무게이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마트들이 지방 중소도시에 지점을 차리는 것에 반대하는 데는 차고 넘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만 더 끌고 가 본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도 아주 중요하다. 그렇다면 도지사, 교육감, 도의원, 시장, 군수, 시의원, 군의원 뽑는 선거는 얼마나 중요할까. 다른 나라와 친하게 지낼 것이냐 원수로 지낼 것이냐 하는 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네 시내버스 요금을 얼마로 할지, 그 시내버스 노선을 어떻게 정할지, 상하수도 요금을 얼마로 할지, 아이들 학교 밥먹는 것 즉 학교급식을 어떻게 할지 따위는 도지사, 시장, 군수들이 결정하고 도의원, 시의원들이 감시한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한 만큼 도지사, 교육감, 시장, 군수 뽑는 선거도 중요하다. 이웃 간의 소통과 연대를 비롯해, 아이 키우고 학교 보내는 일, 어버이 모시고 밥 먹는 일, 어버이 아플 때 병원 모시고 가서 진료하고 입원하는 일, 사업 하고 세금 내는 일, 은행 가서 대출하고 저금하는 일, 전셋집 얻고 집 사는 일, 골목에 전봇대 세우고 가로등 다는 일, 찻길에 인도 내는 일, 쓰레기 분리하여 내다 버리는 일, 장례식장 만들고 화장터 만드는 일, 학교 졸업하는 아이들 진학시키고 취업시키는 일 따위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일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만, 도지사, 시장, 군수 같은 사람에 따라서도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고 탄탄대로를 걷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두부를 펭귄마트에서 살 것이냐 탑마트에서 살 것이냐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고 훨씬 더 큰 문제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해 놓고 잊은 듯이 있다가 택배가 오면 놀랍고 반갑게 받아들 것이냐, 진주문고에 가서 이 책 저 책 뒤져 보고 읽어 보고 만져 보고 비교해 보면서 읽을 책을 고를 것이냐 하는 일보다도 훨씬 크고 무거운 문제이다.

이우기 칼럼니스트 yiwoog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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