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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원 칼럼]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기사승인 2018.03.06  15: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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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금에서야’가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인 것이다.

한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 진실을 말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의 ‘새로 고침’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또 터져 나오는 아픈 고백과 고발의 말들, 그에 따른 놀라움과 분노와 참담함을 추스르며 다시 무언가를 새로 고쳐 쓰는 과정이 여러 번 되풀이됐다.

“한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서 진실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터져 버릴 것이다”라고 했던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이 요즘처럼 꼭 맞는 때도 없었을 것 같다.

‘미투’ 운동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려던 어젯밤에는 JTBC ‘뉴스룸’에서 안희정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는 김지은 씨의 이야기를 아프게 지켜보았다. 정치판을 안팎으로 겪고 알 법 한 피해자가 그 어떤 국가기관도 아닌 ‘국민’들을 향해 자신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심정이 너무도 참담하고 슬펐다.

성폭력 피해자가 언론에 실명과 얼굴 다 밝히고 울면서 피해를 고발하고 진실을 요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게 너무 참혹하다.

한국 여성들 거의 대부분이 성추행,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기에 우리는 뉴스에 등장하는 피해자의 고통에 찬 얼굴을 볼 때마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자기검열에 빠진다. 우리가 지켜 주지 못 한 것 같아서. 가해자들은 제 살 궁리만 하는데 피해자끼리 서로 미안해 한다.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를 걱정하고 챙기며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면서도 어렵게 발언하고 있다. 인생의 많은 것을 걸고 ‘미투’에 동참하는 각계의 피해 여성분들에게 매일같이 빚을 지는 기분이다.

피해자들이 자기 얼굴과 실명을 다 내보이며 방송에 나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게 그 여성에게 어떤 결정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당신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그동안 힘없는 무수한 여자들이 고발을 시도했고, 역풍을 맞았고, 인생이 파탄 났고, 그 중 일부는 스스로 인생을 버렸다. 당신이 별일 없이 살아 온 동안, 그랬다.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은 고발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엄청난 무게를 안다.

그들에게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마라.

“왜 이제 와서?”라고 묻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오래 침묵했는지’를 묻는 것일 텐데, 답은 간단하다. 바로 그 질문을 하는 당신 때문이다.

침묵해야만 했던, 그 자명한 구조적 문제를 전혀 모른 채(또는 외면한 채) 살 수 있었던 당신 같은 사람들이 언제나 피해자 탓을 하며 2차 가해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짐작한 대로, 이제 피해자들은 끔찍하고도 익숙한 2차 가해의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내게는 존경스럽기만 한) 그분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와 “(너는 당했고 보았다지만, 나는 안 당했고 못 봤으니) 그런 일은 없었던 거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2차 가해 폭력들.

한 피해 고발자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제야 말하냐 묻지 마시고 이제라도 말해 줘서 다행이라고 말해 주세요. 주목 받고 싶었냐고 묻지 마십시오. 이런 일로 주목 받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미투’ 운동에 관심 갖고 피해 고발자들과 연대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게 있다.

뜨거운 마음으로 ‘옳은 의견’과 ‘정의로운 분노’를 표현하기 전에 반드시 꼭 먼저 한 번씩 ‘나의 이 발언이 고발자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회복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인가?’ 하는 자문을 해 보자는 것.

사람마다 그 자문에 대한 답은 다를 수 있겠지만, ‘피해자의 진정한 회복을 바라는 마음’ 없이, 고발되는 사안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에만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반응하다 보면, 악의 없는 사람도 부지불식간에 2차 가해를 저지르게 된다.

제발, ‘미투’ 고발자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지키자.

그들은 이제 와서 우리에게 동정받기 위해 자신의 피해사실을 전시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인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나선 사람들이 아니고, 피해자인 자기가 그때 어떤 현명한 대처를 했어야 했는지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나선 것도 아니다.

그들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모욕적인 그 순간을 소리 내어 말하는 이유는, 스스로 이제라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모욕 받았던 ‘과거’를 ‘고발’하는 것. 이제 앞으로는 내 삶에 그런 류의 모욕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용기 있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제야 ‘연대의 힘을 믿을 수 있기에’ 고발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미투’는 계속될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자에 대한 추가 ‘미투’도 있을 것이고, 동종 업계에 있는 다른 가해자에 대한 고발도 있을 것이며, 아직까지는 잠잠했던 업계에서 첫 번째 ‘미투’가 나올 수도 있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미투’의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더 늦기 전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독려할 것이다. 내가 좀 더 일찍 말했더라면 다른 피해자가 더 생기는 걸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자책도 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듣는 것뿐이다. 피해자가 광장에서 홀로 외치는 게 아니라고 믿게끔 지지할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 리오타르는 “정의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들어야 하고, 들으려면 수많은 여성들, 피해 당사자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로서 새로운 계기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왜 지금에서야’가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인 것이다. 피해자들은 고통을 이겨낸 생존자들이고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를 끌어 모아 소리를 내고 있다. 이 터져 나오는 소리들, 우리 사회 전반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있던 권력/위계의 성폭력을 직시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진심으로 2018년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분기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장원 칼럼니스트 winenbook@hanmail.net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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