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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빵생활5] 안녕, 440번

기사승인 2018.03.09  08: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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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숨소리와 비명에 가위눌린 청송교도소의 어둠이 진저리나게 싫었다."

“아이쿠, 아 아 아...” 440번이 정강이를 부여잡고 고통에 못 이겨 팔짝팔짝 까치발을 뛰었다. ‘툭’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난 걸로 봐서 이번엔 좀 세게 걷어차인 것 같았다. 그의 일그러진 표정이 익살스러워 모두가 히히덕거렸고, 440번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빙그레 웃어보였다

440번은 나의 따까리였다. 나이는 내 또래였는데 이마에 예닐곱 개의 별판을 달고 있었다. 키는 작았고, 눈은 부리부리했고, 몸집은 단단했다. 닳고 닳은 차돌멩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그가 나의 장난질과 푸념을 받아주는 따까리였다. 물을 찾으면 물그릇을, 땀이 맺히면 수건을 바치는 충실한 비서였다. 나는 따까리 440번의 정강이를 살짝살짝 걷어차는 장난질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군홧발로 그의 정강이를 툭 차면 정강이를 움켜쥐고 자지러지는 표정에 모두가 킬킬거리며 웃음보를 터뜨리곤 했다. 어쩌다 세게 걷어차일 때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다음부턴 이런 장난질을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하루 해는 너무 길고 무료했다.

▲ 김석봉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청송보호감호소로 들어가는 입구엔 반변천을 따라 드넓은 농장이 개발되어 있었다. 폭 300m에 길이 1km쯤 되는 편평한 농장 한복판엔 2층 시멘트집이 있었다. 1층은 농기구 창고로, 2층은 망루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감시에 장애가 된다며 나무라는 나무는 모두 잘라내어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원체 넓은 농장이어서 농사일에 동원되는 재소자들은 많았다. 1경운부터 5경운까지 5개 팀이 농장일을 나갔는데 나는 이곳으로 오자마자 5경운 담당이라는 꽤 마음에 드는 보직을 받았다. 하루 종일, 그리고 밤을 새우면서까지 높은 담장 안에서 재소자들과 지내는 것에 비하면 딴엔 괜찮은 보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경운담당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곳의 더위와 추위는 지독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외부 물품이 담장 안으로 유입되는 유일한 통로여서 자칫하면 무겁게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담배와, 흉기의 소재가 되는 쇳조각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봄볕은 따사롭게 내리고, 오랑캐꽃이 피는 계절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직원아파트 울 너머에 있는 하수처리장 청소일이 배정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철조망이 둘러쳐진 하수처리장엔 2명의 기사가 교대로 근무하는 숙직실이 딸린 조그만 부속건물이 있었다. 당직기사가 지인들을 불러와 화투판을 벌이거나 술을 마시며 지루한 밤을 보내는 곳이었다.

재소자들을 바깥에 세워두고 먼저 들어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당직실 귀퉁이엔 소주병이 뒹굴고 있고, 주변엔 많은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었다. 이슬에 젖었다 말라 누렇게 변해 쪼글쪼글해진 것도 있고, 반도 피우지 않고 버려진 긴 꽁초도 여럿 보였다. 순간 그들을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시켜놓고 딴전을 피우면 저들은 담배꽁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담배꽁초는 수제비와 함께 경운출역자의 생활밑천이었다. 가끔 작업과에서 밀가루를 공급했는데 그날이 되면 농장에서 수제비를 끓여먹었다. 출역하면서 취사장에 들러 다시멸치와 고춧가루, 식용유를 얻어와 커다란 식통에 수제비를 끓였다. 식용유가 둥둥 뜨고 고춧가루를 풀어 벌건 수제비는 나도 처음으로 만난 음식이었다.
수제비는 맛있었다. 경운출역부는 수제비 끓이는 날이면 커다란 주전자와 물통 등 그릇그릇 수제비를 담아 교도소 담장 안으로 가져갔고, 여느 경운담당들처럼 나도 그를 못 본 체 해주었다. 수제비는 사동 소지①에 의해 다른 사동 미출역수에게 암암리에 나누어졌고, 소지는 그들로부터 비누며 속옷 따위를 받아 경운출역부에게 전달해 주었다. 교도소에서 지급하는 생필품만으로는 경운출역으로 소비되는 생필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담배꽁초는 수제비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검방②을 하면 가끔 미출역수의 방에서 담배꽁초가 나오기도 했지만 검방담당자는 쉬쉬하며 숨겨주기 일쑤였다. 담배를 소지한 재소자는 징벌을 받겠지만 동료직원도 책임져야 할 몫이 크기 때문이었다. 직원식당과 간부이발소와 보안과 직원휴게실 청소일을 하는 재소자는 쉽게 담배꽁초를 만날 수 있었다. 사동 담당자가 담배를 소지한 채 근무했고, 관구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청소가 끝났다. 하수처리장 주변 검불도 다 걷었고, 숙직실 주변은 깨끗하게 변했다. 담배꽁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남아있는 게 없었다. 작업을 마친 재소자들은 하수처리장 앞 공터에 모였다. “호주머니 털어라. 들어가서 검신③에 걸리면 죽는다.” 독하게 한마디 뱉으며 하수처리장 마당에 모인 재소자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태연했다. “돌아서 있을 테니 털어라. 마지막 기회다.” 나는 반장에게 찌그러진 대야를 던져주며 휙 돌아섰다.

다시 돌아섰을 땐 대야에 제법 많은 담배꽁초가 담겨 있었다. 숙직실 주변에 널려있었던 것의 반도 되지 않는 양이었다. 눈여겨 봐두었던 긴 꽁초는 거기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돌아섰고, 담배꽁초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무더운 여름날 기나긴 하루 해에 시달리는 저들이 애처로워 아내를 시켜 삶아 먹인 국수가 생각났다. 지난 해 가을 재소자 운동회 때 인절미를 해다 먹였던 일도 떠올랐다. 어느새 나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빨을 뿌드득 갈고 있었다. 눈엔 시뻘겋게 핏발도 섰을 거였다.

외정문과 정문을 지나 보안과 앞마당에서 검신을 하고 목욕장에 들러 간단히 씻고 입방하는 일과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는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그들을 돼지떼 몰 듯 운동장으로 몰아갔다. 목공장 앞을 지나오면서 단단하고 굵은 몽둥이도 하나 찾아들었다. 사동과 담장 사이 운동장엔 푸석이는 흙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등을 돌리며 돌아섰다. 제발 더 많은 담배꽁초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가슴 속에서 울컥 뜨거운 그 무엇이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인내의 한계 속에서 ‘푸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담배꽁초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흙먼지 속을 기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기었다. 잔인한 교도관과 사악한 재소자는 함께 흙먼지 속을 기었다. 목표점을 나보다 늦게 돌아온 이들 엉덩이엔 내가 쥔 몽둥이가 불벼락처럼 떨어졌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흙먼지는 더욱 자욱하게 하늘을 덮었다. 한 바퀴 돌아올 때마다 등을 보이며 돌아서기를 반복했으나 담배꽁초는 나오지 않았다. 이어진 봉체조④는 자칫 그 무게에 깔려 팔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는 더 가혹한 형벌이었다.

어느새 태양은 담장 너머로 숨어버렸다. 누구도 그들을 편들어 주지 않는 시간만 남았을 뿐이었다. 기진맥진한 그들은 전봇대만한 나무등걸을 어깨에 메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팔꿈치가 따끔거렸고, 눈언저리가 조금씩 젖으면서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였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440번 그가 흙먼지 속을 고통스럽게 뒹구는 것이 보였다.

그가 다시 5경운에 합류하여 일터로 나온 것은 두 달이 흐른 뒤였다. 깁스를 했던 어깨죽지는 허옇다 못해 푸르스름하기까지 했다. 그는 한쪽 팔에 힘을 잃었다. 나는 몇 번이고 작업과에 발품을 팔았다. 경운출역 부적격 판정으로 미출역수 사동으로 돌아갔던 그를 다시 농장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담당님. 고맙습니다.” 다시 출역을 하면서 440번이 내개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가 미출역수 사동에서 몸을 회복하는 동안 수제비를 끓이면 꼭 그의 몫을 챙겨주었고, 사동 담당자에게 각별한 부탁도 했으나 그를 대하는 나의 부끄러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정강이 차는 장난질도 멈추었다. 이제는 그 특유의 익살스런 모습을 보며 웃을 일도 사라졌다. 그는 더욱 살갑게 따까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한 며칠이 지나고 얼핏 그를 쳐다봤을 때 나는 그의 표정에서 다시 그 정강이를 툭툭 차는 장난질을 해 주었으면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그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모진 형벌 속에서도 담배꽁초를 끝끝내 감추어야 하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은 흘렀고, 어느 겨울 청송교도소를 떠날 때까지 나는 그날을 기억에서 영영 지우고 싶었다. 그 알량한 국수 몇 그릇과 인절미 조각을 잊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관복 속에 감추어버린 나의 독한 폭력성이 너무 미웠다. 흙먼지 속의 표정들, 거친 숨소리와 비명에 가위눌린 청송교도소의 어둠이 진저리나게 싫었다.

 

주)

① 소지 : 사동에 배치되어 청소, 배식 등을 담당하는 재소자.
② 검방 : 사방의 상태를 점검하고 사물을 검사하여 불법소지물 등을 찾아내는 일.
③ 검신 : 출역재소자가 사방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검사하는 일.
④ 봉체조 : 전봇대처럼 생긴 무거운 나무덩이를 들고 행하는 체형.

김석봉 전 녹색당 운영위원장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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