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이 따로 없다. 나는 그렇게 본다"

어제 수요일 점심 때 학생 둘과 돼지국밥을 먹었다. 진눈깨비가 찬바람에 흩날리는 날씨여서 국밥 한 그릇 하기 딱 좋았던 것이다. <돼지랑순대랑>에 전화했더니 자리가 없단다. 전화기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줄 짐작했지만. <가마솥돼지국밥>으로 가서 국밥을 향한 애정을 풀어놓았다. 순대국밥에 든 시레기는 보들보들했고 순대는 말랑말랑했다. 낮술이 그리웠지만 용케 잘 참았다. 손님이 꽤 많았다.

오늘 목요일 점심으로 <돼지랑순대랑> 돼지국밥을 먹었다. 간밤의 숙취로 쓰라린 속을 풀어헤치기엔 돼지국밥만한 게 없다. 오늘은 혼자 갔다.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제처럼 붐비지는 않았다. 그래도 손님은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이 밀어닥쳤다. 학생들과 교직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 좀 먼 데 사는 사람들도 찾아오는 모양이다. 이 방 저 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왁자하다. 주인 아저씨는, 어제 왜 빈자리가 없었는지 설명했다. 단체 손님이 많은 모양이다. 앞문, 뒷문에 줄 서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냥 돌아간 손님도 제법 많았던 그런 날이었던가 보다.

▲ 돼지국밥

내일 금요일 점심 때는 혁신도시에 있는 <진국돼지국밥>으로 가기로 돼 있다. 이 집에 한번씩 가는 모임이 있는데, 내일이 그날이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가자마자 잽싸게 한 그릇 비우고 총알처럼 돌아와야 한다. 개업할 때부터 준단골급이다. 국물이 깊고 고기는 부드럽다. 순대 맛도 일품이다. 어쩌다가 주인 아저씨와 마주앉아 저녁술을 한 뒤 노래도 한두 곡 불렀다. 가수였다.

점심으로 돼지국밥이 으뜸이다. 값은 다들 7000원씩 한다. 해장국으로도 좋고 안주로도 괜찮다. 혼자 가도 괜찮고 여럿이 가도 좋다. 반찬으로 나오는 양파, 마늘도 몸에 좋고 부추, 김치도 조화롭다. 국수 사리를 주는 데도 있고 안 주는 데도 있다. 어디를 가든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음식이 돼지국밥인 듯하다. ‘광팬’이라고 할까, ‘마니아’라고 할까. 일주일에 잇따라 세 번씩이나 점심으로 돼지국밥을 먹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대부분 질린다고 할 것이다. 고개를 살래살래 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내도록 먹으라고 해도 싫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에게 어떤 집이 가장 맛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출근한 날 점심으로는 학교 앞 <돼지랑순대랑>, 호탄동 <진국돼지국밥>, 내동 <가마솥돼지국밥>을 찾는다. 내일처럼 작정하는 날엔 혁신도시 <진국돼지국밥>도 간다. 출근하지 않는 날엔 상봉서동 <마천돼지국밥>이나 <산청돼지국밥>을 간다. 그 외 칠암동에 있는 <K돼지국밥>, 상평동 <밀양돼지국밥>, 상봉서동 <소문난돼지국밥>, 신안동 <신안돼지국밥>, 신안동 <옛날돼지국밥>에도 가 봤다. 다들 비슷비슷하면서도 약간씩 차이가 있다. 필설로 설명하긴 어렵다.

국밥집들은 제각각 자기 집 국밥이 가장 좋다고 자랑한다. 육수를 어떻게 내는지 설명해 놓은 집도 있고 돼지국밥이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지 자랑해 놓은 집도 있다. 고기를 먼저 건져 먹고 나중에 밥을 말아 먹으라고 일러주는 집도 있다. 이런저런 설명 없이 그냥 맛있는 국밥을 내놓는 집도 있다. 어떤 집은 국밥 그 자체가 맛있고 어떤 집은 순대가 맛있고 어떤 집은 수육이 맛있다. 유별나게 전골이 맛있는 집도 있다. 넷 다 맛있는 집은 잘 없다. 내 기준으로 볼 땐 그렇다. 고기 건더기도, 앞뒤 다릿살을 쓰는 집이 있고 목살을 쓰는 집도 있고 머리고기를 조금 넣는 집도 있다. 나는 머리고기를 좀 좋아하는 편이다. 이 방송 저 신문에 소개된 집이라는 걸 자랑하는 곳도 많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도 비슷하면서 다르다. 부추를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는 집이 있는가 하면, 가볍게 양념을 해서 내놓는 집도 있다. 다진양념과 새우젓갈을 따로 주는 집이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이 둘을 섞은 양념을 주는 집도 있다. 밥상 귀퉁이에 소금과 들깨와 조미료를 놓은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다. 들깨를 듬뿍 넣어 먹는 이도 있지만 나는 이런 것은 잘 안 넣는 편이다.

국밥을 받자마자 매운고추, 다진양념, 새우젓갈, 부추를 넣고 국수 사리도 함께 넣는다. 잘 섞이도록 젓가락으로 몇 번 저은 뒤 숟가락으로 국물을 몇 번 떠 먹고 나서 국수부터 먹는다. 국수 사리는 꼭 아쉬울 만큼 준다. 그다음 고기와 부추, 콩나물 따위 건더기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다. 밥은 뚜껑을 열어놓는다. 좀 식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중간중간 양파와 마늘을 된장에 찍어 먹는다. 아삭한 배추김치와 깍두기는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건더기를 절반 이상 먹었다 싶을 때 밥을 만다. 밥알이 으깨어지거나 풀어지지 않고 알갱이가 살아 있다. 국물이 제법 식었으므로 뚝배기째 들고 몇 모금 후루룩 마시기도 한다. 옆 사람이 뭐라고 하건 말건. 숟가락에서 국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퍼서 한입에 부어넣고는 냠냠짭짭 먹어댄다. 배는 불러오고 콧등과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중간에 난데없이 트림이 나기도 한다. 뚝배기를 싹 비운 뒤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지고 머릿속도 맑아지며, 무엇보다 뱃속이 시원해진다.하도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다 보니 입 주변에 국물과 반찬이 묻기 일쑤다. 국밥 한 그릇 먹는 동안 휴지로 입을 서너 번은 닦는다.

보약이 따로 없다. 육수와 고기와 각종 반찬들이 죄다 조화로우니 이만한 한 끼 식사를 찾기 어렵다. 소고기국밥도 사양하지는 않으나 돼지국밥에 견주면 한두 등급 아래로 친다. 나는 그렇게 본다. 어릴 적 추억과, 어른이 되고 나서 돼지국밥 한 그릇 받아 놓고 정답게 이야기 나누던 사람들과의 추억도 입맛을 돋워준다. 경남일보 기자 시절 상평동 <밀양돼지국밥>을 배달시켜 놓고 회의를 했으며, 다행히 회의가 일찍 끝나면 우르르 몰려가서 수육과 국밥으로 우정을 나누기도 했었다. 국물에 담긴 고기만큼이나 맛난 추억들과 함께하는 돼지국밥은 나에게 살이고 피이고 뼈이다. 삶이고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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