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없는 정부' 만드는 경남의 언론들

“지금 녹취하고 있는 거 아니죠?”

한국국제대 비리 의혹 취재 당시 반론을 듣기 위해 간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다. 반론의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은 이 말을 하며 녹취에 대한 두려움을 피력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이 드러날 때 그것이 기록에 남을까 봐 걱정한다. 기자는 기록을 남기는 자이니 기자와의 대화에서 녹취를 염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데 최근 경남 진주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창희 진주시장의 막말 녹취파일이 연이어 공개되고 있는데 녹취장소가 진주시청 기자실이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창희 시장은 권력 견제를 사명으로 해야 하는 기자들이 가득 모인 기자실에서 두려움 하나 없이 막말을 해댔다. 그리고 그의 막말에 대다수 기자들은 침묵했다. 권력을 견제하고 기록을 남기는 기자들 앞에서 공직자가 막말을 해대고, 기자들은 그에 침묵하는 상황.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일이다.

지난 4월5일 류재수 진주시의원은 이창희 시장이 지난 해 10월쯤 진주시청 기자실에서 막말을 한 기록이 담긴 녹취파일을 입수했다며, 이 내용 가운데 일부를 공개하고 이 시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 3월14일 이창희 진주시장은 진주시청 기자실에서 자신의 일과시간 중 목욕탕 수시 출입 기사를 쓴 모 언론사 기자에게 폭언을 내뱉었다.

이 시장의 막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장의 막말에 초점이 맞추어지다보니 더 큰 문제는 거론되지 않는다. 이창희 시장이 노회찬 국회의원을 ‘그 새끼’라고 지칭해도, 류재수 시의원을 ‘호x새기’라며 욕해도, 일부 시민들을 ‘미x놈’이라고 폄훼하며 '전두환처럼 해야 한다" 말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던 기자들의 행태 말이다. 기자가 권력을 견제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게 맞는다면 이들의 행태는 기자이길 거부한 것이다.

▲ 김순종 기자

그간의 행태를 돌아볼 때 앞으로 몇 개의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룰 지도 걱정이다. 하긴 진주시장이 막말을 하는 자리에서 함께 희희낙락거렸던 기자들이 적지 않으니 그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떠한 의미에서 공동정범이다.

지역언론은 이미 제기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권력과 자본에 빌붙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갈 수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 권력과 자본에 굴복한다. 지역언론 대다수는 관공서의 광고 등에 기대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일까. 언론의 날선 비판이 있어야 할 곳에 지금 존재하는 것은 ‘결탁’이라는 이름의 부패이다. 진주시가 지난 3년간 기자들의 밥값으로 사용한 예산이 1억 원에 달하는 작금의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이 같은 부패와 결탁은 온전히 시민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아 자신의 대리인을 선출해야 할 시민들은 부패와 결탁 끝에 생산된 왜곡된 정보를 제공받으며 잘못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은 온전히 ‘지역언론’에 있다. 언론을 두고 공적인 것들을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로 쓰이던 ‘공기’라는 말이 사라져 가는 것도 이들 언론의 책임이다.

일찍이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하라면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권력견제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지역은 어떠한가. <단디뉴스>가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이창희 진주시장이 모 언론사 A기자에게 폭언을 하던 날, 한 기자는 ‘사이비’ 기자를 운운하며 일부 기자들의 시청 기자실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이 시장의 발언에 동조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는 지역언론이 쓰고 있던 가면을 찢어발기고 그 민낯을 들추는 사건이었다.

토머스 제퍼슨의 말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정부만큼이나 중요하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드높이는 기제가 ‘언론’인 까닭이다. 이창희 시장의 막말에 기자들이 침묵하는 우리 지역의 모습은 ‘언론 없는 정부’ 에 가깝다. 바로 이들이 이창희 시장의 거듭된 막말을 조장하고 있는, 이 지역을 ‘언론 없는 정부’로 만들고 있는 장본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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