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미 그 ’순간’을 지나쳤다.

인지하다. 기억과 추억이 사라지고 있음을

사람의 기억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지난 27여 년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살아온 나조차 오래된 순간부터 하나씩 하나씩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인지한다.

오래전 슬피 울며 보내드려야 했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부모님이 아들 키우는 고생을 하기 전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처음 본 것은 무엇인지 이제는 기억하려 해도 기억해낼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지난날들이 지워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어설프게 떠오르는 기억과 추억의 조각을 다시금 끼워 맞추려 해도 맞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억과 추억이 사라졌음을 인지한다.

기록하다. 기록되다.

▲ 정종택 자유기고가

태어나는 순간의 울부짖음으로 시작한 한 사람의 인생이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느끼며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겪게 되고, 그 ’순간‘을 우리는 글, 사진을 비롯한 수많은 방법으로 스스로를, 또는 타인을 우리는 기록한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기록되고 있는 것조차 인지하고 못 할 때가 있으며, 누군가가 우리 스스로를 기록한다고 허락을 구할 때면 부담스러워할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히기”보다 “찍어주는” 일이 더 많았음을, 그리고 나 스스로를 기록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 또한 익숙지 않은 것임을.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주말이 가면 출근을 해야 하고, 출근을 하다보면 주말이 온다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우리는 ’기록‘할 시간을 낼 여유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기록‘하는 것이 때때로 어색한 것은 아닌가?

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기록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최근에 여러분이 기록된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기록. 그리고 회상.

’나’를 기록하기보다는 ‘누군가’를 기록하는 것이 익숙하여 나 스스로를 기록하는 것조차 게을리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나’를 그리고 ‘우리’를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통해서 보았을 때 ‘우리’는 다시 7년 전으로 돌아갔다.

“기차여행할 때네. 이때 우리 철길 옆에서 치킨이랑 맥주 먹고 그랬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지금이 훨씬 낫다.”

“허구한 날 동아리방에서 막걸리에 파전 먹고 그랬는데.”

우리는 그 누군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지만, 누군가의 휴대전화에 의해 또 하나의 ‘우리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은 누군가의 휴대폰 속에는 ’최근‘ 순으로 정렬되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휴대폰에는 저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 지난 사람의 기록들.

그리고 훗날 떠올리고 싶은 기억들.

우리는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지난 사람의 기억과 추억이 다시금 궁금해져 다시 열어보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때로는 휴대전화 속 앨범을 수없이 내리지 않으면 나 자신이 기록했는지조차 모르는 사진이, 음성이, 메모가 휴대전화 속에 저장되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그때, 그 기록은 이곳저곳에 분산되어버린 기억 조각들이 다시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어 지난 사람을 추억하고, ’우리‘의 소중한 기억을 소생시키고, 열 손가락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우리‘의 나이를 인식하게끔 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그 중요한 매개체를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게 된 것은 아닌지.

훗날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부모님의 얼굴을, 동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해줄 ’순간‘을 그저 지나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는 이미 그 ’순간’을 지나쳤으며, 기록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지도.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을 기록하자.

당신이 지금 열중하고 있는 일을 기록하자.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부모님을 기록하자.

그리고 당신의 가족이, 소중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잠시 바쁜 일을 뒤로하자.

또는,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이 다음과 같이 가족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말해보자.

“우리 가족사진 찍어요.”

“우리 사진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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