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세례 사건, 재벌총수 일가 갑질 다시 수면 위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세례 사건으로 재벌총수 일가의 '갑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현민은 한 달 전, 광고 관련 회의 도중 광고대행사 팀장에게 반말과 욕설을 퍼붓다가 급기야는 당사자에게 직접, 혹은 바닥에 물이 든 컵을 집어던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른바 ‘물벼락 갑질’ 파문이다.

2014년 12월, 조현아가 ‘땅콩 회항’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피는 못 속인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친동생이 다시 사고를 친 것이다. 언니 조현아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는 그 동생이다. 이렇게 되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갑질과 비리 의혹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언론에 제보를 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폭로 글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망나니 두 자매’만이 아니라 조양호 회장과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남자형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온 집안사람들이 대한항공 직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령, 이 가족을 위해 특별히 운용되는 VIP 전용승무원들은 개인별 맞춤 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움직여야 했는데 ‘두 번 물어보면 안 된다, 말대꾸하면 안 된다, 물이라고 하면 반드시 탄산수를 가져다줘야 한다, 짐은 꼭 먼저 받아서 올려줘야 한다, 누군가에겐 눈을 마주치면 안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눈을 마주쳐야 한다’ 등등을 지켜야 했고 만에 하나라도 이를 어겼을 때는 욕설과 폭행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재벌가’ 황제에 대한 예우와 서비스를 바쳐야 하는 노예가 바로 이 전용승무원들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과는 거리가 먼 재벌가의 ‘망나니 짓’이 어제오늘 나온 것도 아니다. 근래에 일어난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개 들어본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2009년, 당시 M&M 대표 최철원은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빠따’를 친 뒤 맷값을 던져줘 사회를 놀라게 했다. 회사 인수합병과정에서 계약을 해지당한 화물노동자 A씨가 고용승계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자, ‘빠따’ 1대 칠 때마다 1백만 원씩 주는 대가로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던 것이다.

아들이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조폭을 동원하여 쇠파이프를 휘두른 재벌도 있었다.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은 2007년, 자신의 차남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종업원들에게 폭행당하자 조폭들을 대동하고 종업원들을 불러오게 했다. 그리고는 한 밤 중에 청계산에서 이들을 직접 쇠파이프를 휘둘러 응징했다. 재벌 아들인 것을 모르고 주먹을 휘둘렀다가 호되게 당한 피해자들은 무려 9명이었다.

김승연의 삼남 김동선도 2007년 1월, 술집 종업원에게 폭언을 퍼부으면서 영업을 방해하고 출동한 경찰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집행유예 기간 동안 다시 변호사들에게 막말과 폭력을 일삼았다. 과연 부전자전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이 밖에도 자가용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사용하거나 끼어들기를 허용한다며 욕설을 일삼는 사장 등 재벌들의 갑질 행태는 양적으로 많고 질적으로도 다양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가 임금의 반대급부로 노동력을 제공할 뿐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시스템인데, 한국 재벌그룹의 회장일가는 마치 고대의 황제나 귀족이 생사여탈권을 가진 노예를 부리듯, 심지어 주인이 가축을 부리듯 제 멋대로 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제 부모가 재벌회사 직원들을 노예 부리듯 하는 걸 보고 큰 2세, 3세들이 직원과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할지는 불을 보듯 빤하다. 인성교육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예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대한 공감능력과 동정, 연민의 감정이 생겨나기 힘들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러니 자신의 가족을 제외한 주위사람들에게 안하무인이 되기 십상이며, 교만과 거드름이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와 전혀 상관없이 단지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부귀를 누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체제를 세습체제라고 하며, 한국의 현 재벌가의 경영행태는 세습으로 굳어진지 오래됐다. 북한의 김일성에서 김정은까지 3김 세습을 후진독재국가의 징표인양 비아냥대지만 사실 남한의 재벌기업, 즉 대기업들은 모두 이러한 세습체제를 처음부터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 중에는 회사가 마치 자신의 개인 재산인 것처럼 비자금을 만들어 회사 돈을 멋대로 배임·횡령하는 일이 많지만, 대부분은 10%에도 못 미치는 지분을 갖고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또 재벌 총수는 기업의 소유주가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지분을 가진 다른 주주들로부터 경영을 위임 받은 대리인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의미에서도 세습경영은 논리적 근거가 없는 관습적인 경영행태일 뿐이다.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사유재산권제도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경제도 발전했다는 논리로 경영권 세습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낡은 기득권 세력의 사유재산권 보호가 아니라 능력있고 활기찬 중소벤처 혁신 기업가의 자산이 기득권 세력의 독점적 횡포와 부패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경제도 발전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경영권 세습은 예외적인 현상이며 창업기업과 전문경영, 세습경영기업으로 구분했을 때 세습경영 기업성과가 가장 떨어진다. 유럽의 경우는 가족 대기업이 적지 않지만 직접 경영을 하기보다는 대주주로 이사회에서 경영 감시 통제권을 행사하는 형태가 다수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법대로 내면 2세, 3세의 지분율은 창업자보다 훨씬 낮아지기 때문에 후손들은 경영자를 감시하는 대주주 역할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재벌을 둘러싼 관료와 사법(검찰 포함), 언론 등의 적극적 협조가 있기 때문에 재벌 2세가 상속·증여 관련 탈세와 일감몰아주기 등의 불공정거래를 통해 일단 경영권을 세습하기만 하면 탈법적 배임·횡령으로 엄청난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니 재벌가는 더욱 경영권 세습을 포기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재벌개혁의 문제가 단순히 사회정의 구현을 넘어서 한국 경제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느냐는 생존의 문제이다. 그만큼 재벌들의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재벌가의 세습경영과 정관경언 유착을 뿌리 뽑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재벌기업에 대한 소유지배구조의 개혁은 이제 ‘강 건너 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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