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은 4월은 슬픔으로 시작되었다.

4월이 오면 누군가에게서 한 번 쯤은 듣게 되는 토머스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 황무지의 구절은 역설적으로 4월의 생명력을 드러낸다. 또한 4월이면 한 번 쯤은 듣게 되는 박목월 시인의 시를 가곡으로 만든 4월의 노래도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라고 4월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긴 겨울을 지나고 맞이한 계절로서의 4월은 찬란한 벚꽃과 형형색색의 꽃으로 우리를 봄의 한가운데로 인도한다. 게다가 올해는 6·13 지방선거가 있어 예비후보들의 움직임이 4월의 찬란함만큼이나 활발하다.

그러나 우리가 맞은 4월은 슬픔으로 시작되었다. 벌서 70년의 세월이 흘러가 버렸지만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제주도 4·3사건으로 시작한 4월은 중반쯤에서 세월호 4주기를 만났다. 4월의 눈부신 찬란함 때문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슬픔과 고통이 더욱 선명해지는 듯하다. 말 그대로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이다.

이런 4월을 살아내면서,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 4월의 역설을 황폐한 땅에서도 생명이 자라는 황무지의 역설로 바꾸어낼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저 예비후보들은 이 참사들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 참사들에서 받은 교훈을 어떻게 도정과 시정에 녹여낼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 강문순 칼럼리스트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이 참사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참사들이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먼저 이 참사들은 1947년 3·1절 기념대회 때의 시위 군중에 대한 발포 혹은 1048년 4월 3일의 남로당의 무장봉기라는 시작점, 2014년 세월호의 침몰이라는 시작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작점이 된 사건 자체가 참사의 근본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사건이 참사로 이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근본원인에 대해서 많은 원인들이 제시되어 있고 아직도 그 원인을 찾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이 이 사건들이 참사로 이어진 본질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는 ‘내 편, 네 편의 편 가르기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차별의식이 아닐까 한다. 위의 두 참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참사로 이루어지는 데에는 이 차별의식의 작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위나 위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 짓고 배제하는 차별의식은 어느 때나 어디서도 불쑥 나타나 최초의 문제를 왜곡시키고 그에 대한 대처를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권력자들의 마음 안에서 차별의식이 작동하게 되면 사건이 참사로 이어지게 된다고 본다.

그런데 이 차별의식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너무나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어서 어떤 문제에 맞닥뜨리면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대다수에게 문제라고 인식되지도 못할 만큼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어 하나의 문화처럼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부른다. 최초의 하나의 사건이 참사로 이어지는 데에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바탕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월의 두 참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중의 하나는 이러한 차별의식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특히 도지사나, 시장, 도의원, 시의원이 되어 지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예비후보들은 자신 속에 내면화된 차별의식을 자각하고 자신과 우리 시민들의 차별의식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 법적 제도적 노력을 포함하여 의식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4월을 보내면서, 그리고 6·13 지방선거를 맞이하면서 갖게 되는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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