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중학교 성적표는 서서 보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뒤로 넘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방에 앉아서 열어봐야 된다고. 실제로 아들의 1학년 첫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을 때, 나는 소파에 앉아있었는데도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지난 6년 동안 받아본 초등학교 성적표는 일종의 신경안정제였음을. 빼곡히 적혀있던 우쭈쭈의 말들은 ‘우리 아들이 집에서는 다소 빈틈이 있어도 나가서는 제 몫을 다하고 있구나’ 부모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작용을 했다. 하지만 중학교 성적표는 냉정했다. 입에 발린 칭찬 한마디가 없었다. 인정머리 없는 수치들은 그 자체로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각성제였다. 눈이 번쩍 떠졌다.

1학년 2학기에 자유학기제가 시행되었다.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녀석은 좋아했지만 나는 왠지 불안했다. 시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면 뒤처질 텐데. 아들을 꾸역꾸역 학원에 보냈다.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그리고 2학년이 되었다. 3월초 학교에서 열린 교과과정 설명회에서 담임 선생님의 당부에 다시 한 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학부모님들이 반드시 알아두셔야 할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시험이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을 쳐보고 아이가 공부에 소질이 있는지, 적성에 맞는지 파악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굳이 공부 적성이 아닌데도 억지로 책상 앞에 붙들어 두기보다 미래를 위해서 용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더불어 인문계, 특목고, 특성화고등학교의 취업률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고등학교라고 다 같은 게 아니었구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의 적성은 무엇일까?

▲ 재인 초보엄마

그 무렵, 동네 미용실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에도 귀가 팔랑거렸다. 미용실 원장님 아들이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입학에 유리한 자격증도 1년 전에 미리 따게 했다고. 적성을 일찍 발견해서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할 때, 확신에 찬 원장님의 눈에서 형광등 100개가 반짝거렸다. 순간 거울 속의 내 눈이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내가 너무 손을 놓고 있었나? 조바심이 일었다. 다들 네비게이션 켜고 달리는데 우리 아들만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너의 적성을 발견해주마.

하지만 네비게이션도 어디서부터 켜야 할 지, 출발지 입력부터가 막막했다. 다양한 경험으로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을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국영수만 지루하게 욱여넣고 있는 상황에서 적성을 어떻게 찾으라는 말인지. 물론 확실한 것도 있었다. 아들이 싫어하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공부라는 것. 잘 놀다가도 공부하라고 하면 녀석은 인상을 쓰면서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러고 나면 또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렸다. 한창 클 나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간식을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책상 앞에 바로 앉기가 곤란하다며, 소화가 될 때까지 게임을 했다. 지켜보던 내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 녀석은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 일상 코스. 공부도 기분이 좋아야 잘 될 텐데. 그럼 놀기가 적성인가? 문득 의문이 생긴다. 세상에 공부 적성이 있기나 한가? 새순처럼 여린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땅에서 공부가 적성인 중학생이 몇이나 된다고? 팔랑귀 엄마의 마음은 또다시 ‘갈 지(之)’ 자를 그리며 경로를 이탈했다.

어영부영 하는 사이,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날짜를 확인하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동그라미가 아들의 시험지에도 그대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작 시험 치르는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갔다가 학원 숙제를 하고 틈날 때마다 게임을 한다. 평소와 똑같이. 저 놀라운 평정심의 정체가 실로 감탄스럽다. 아마도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틀림없이 ‘전자’일 거라고 굳게 믿으며 나는 정성껏 간식거리를 준비한다. 방금 전까지 동생과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잔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간 아들. 굳게 닫힌 저 방안에서 아들은 지금 열심히 공부 중일 것이다. 굳이 이 시점에 간식을 들고 들어가려는 이유는? 공부를 진짜 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믿는다. 사람이 희망을 가져야지. 그런데 꼭 공부를 잘해야만 희망이 생기나? 글쎄. 그건 정말 답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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