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나날이다"

오월

비 맞는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은 오월에 누리는 장관이다. 연이틀 비가 오던 지난주 진양호반에 앉아 본 것은 무심히 섰던 예전의 그 식물이 아니었다. 나무는 그 부드러운 세우를 온몸으로 소중히 받아 적시며 마치 열락에 빠진 듯 떨며 서 있다. 연둣빛은 한층 짙어지고 이파리는 더 넓어졌다.

시내 중심에 오랫동안 가로수로 심어졌던 플라타너스는 늘어나는 차와 길가 건물의 개 증축에 밀려 그 무성하던 몸피가 버혀지고, 남강 가녘의 수양버들도 새길을 내느라 솎아진지 이미 오래다. 이제 가로수는 은행나무 벚나무가 대종이 됐다. 그러구러 근 30년이나 자라 어른이 된 그것들은 묵묵히 미금을 마시고 섰다가 봄가을 한철 분홍빛 개화와 샛노란 낙화로 성가를 드러낸다. 엊그제 축동에서 나동으로 이르는 길에 가로수로 늘어선 ‘이팝나무’를 첨 봤다. 도열해 하얗게 웃고 있는 꽃길을 달리니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야트막한 산으로 옴폭 둘러싸인 도심에서 벗어나면 동서남북 어디로건 사방에 흰 꽃이다. 진양호 수자원공사를 지나 대평으로 이어지는 호반이거나 말띠 고개를 넘어 대곡의 골짜기로 들어가거나 가좌동에서 정촌으로 빠지기도 하며 비봉산 너머 집현으로 내달려본다. 이팝나무 조팝나무에 아카시아, 산딸나무, 등나무에 찔레꽃이 녹색과 더불어 지천에 만개한 것이 흰 꽃이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예전에도 흰 꽃이 이리 많았던가. 가근방의 봄소식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다압과 화개에서 매화와 벚꽃을 겨끔내기로 피우고 나면 악양으로 이르는 강변의 배꽃이 장관이었다. 그 흰빛을 보며 하나가 읊조리면 합창이 되어 차 안을 그득 채워 넘치는 것이 ‘이조년’의 노래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달빛 넘치는 섬진강 배 밭 언저리에 앉아 한잔 술을 마시자던 동무들과의 약조는 십수 년을 해마다 되풀이하는 허언이었다. 아직 진주까지 다가오기 전의 봄소식을 맞겠노라 달려가는 화개 벚꽃길은 차에 떠밀려 북새통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홍쌍리 매실 밭에서 다압에 이르는 매화와 쌍계사 십리길 벚꽃 구경에 두 차례의 몸살을 앓고 나면 세 번째 배꽃이 일어날 때엔 그만 지쳐 시르죽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대신 서발만 내디디면 닿는 문산이나 사촌리 골짜기를 돌며 배꽃에 이어 피는 복사꽃, 살구꽃 진달래가 그려내는 분홍에 흠씬 취해 보내는 것이 사월의 낙이었다.

 

사월.

파란 다리 위에 앉은 두 남자를 원경으로 지켜본 그 시각. 들리는 것은 오직 새소리였다. 꿩, 방울새, 청딱따구리, 되지빠귀, 소쩍새, 산솔새, 섬휘파람새, 오색딱따구리, 알락할미새, 박새, 직박구리, 멧비둘기, 붉은머리오목눈이.

지저귀는 소리 여럿 들려도 귀에 익은 두어 가지만 집히는 둔한 내 귀와 같을쏜가. 새소리 전문가인 ‘하정문’박사는 그 파란 다리의 40분 동안 흘러나오는 소리를 분석하니 확인할 수 있는 새는 모두 13종이었단다. 한반도의 여름을 대표하는 새는 모두 나왔다는 첨언이다.

 

시적 시간이었다. 이따금 두 사람의 손짓만 보이는 그 파란 다리 위의 정경을 우리는 숨을 죽이며 지켜봤고 그 침묵의 시간을 기점으로 그토록 완강하던 적대의 감정에 균열이 일어났다. 분단을 권세 유지의 수단으로 삼아 호의호식하던 무리가 그 기득권을 잃을까 한사코 손사래 치며 “속지 말라” 핏대 올리지만 무망한 일이다. 이미 도보다리의 풍경을 목도한 이들은 더 이상 그 분열의 아우성에 개의치 않는다.

바야흐로 한반도에 봄이 왔다. 반도를 에워싼 징한 열강들 또한 이 땅의 춘색을 경이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며 애써 상춘객을 자임한다.

 

봄은 더 아래 남으로부터 올라오고 가을은 저 백두대간을 타고 위로부터 내려온다. 이제 정녕 백석의 국수를 먹고 영변의 약산 진달래를 볼 날이 오는 것인가.

꿈같은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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