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지지한다

이른 봄 가지 끝에 올라오는 두릅순이나 엄나무순을 따다보면 가시에 찔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겨울동안 배곯은 산짐승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만들어 낸 식물의 작은 저항이다. 하지만 순을 훔치는 짐승이나 사람의 손길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간단히 목장갑만 끼고 훑어도 우두두 떨어지고 만다.

보드라운 새끼고양이 발톱도 그렇다. 약한 짐승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무기는 강자의 폭력 앞에서 보잘 것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대국의 일방적인 국경 선언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야 할 운명에 놓인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던지는 돌팔매도 그러하다.

트럼프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여러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겨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불렀다. 이스라엘 군대는 맨몸으로 저항하는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해 최소 55명이 사망하고 2천800여명이 부상을 입는 최악의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하지만 미국은 총을 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두둔하고, 유혈사태의 책임은 무장투장 세력인 하마스에게 돌렸다.

이스라엘 군대가 쏜 총탄에 아무 죄없는 어린 생명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모습을 보면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적진으로 잠행하는 그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그들은 강자가 폭력으로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에 목숨을 걸고 항전하고 있다. 

▲ 서성룡 편집장

지난 19일 오후 서울 혜화역 2번 출구에서는 주목할만한 집회가 열렸다. 여성 1만2000여명이 모여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 사건에 대한 경찰의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집단행동이었다. 당초 주최측은 경찰에 참가 인원을 2천명으로 신고했는데, 최종 참가자는 예상 인원의 여섯 배를 넘겼다.

무엇이 여성들을 이처럼 분노케 했을까.

여성들은 몰카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경찰이 유달리 발빠르게 수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남성혐오를 모토로 하는 커뮤니티 ‘워마드’에 몰카사진이 게재된지 12일 만에 가해자를 구속했다. 온라상에 떠도는 수많은 여성 몰카 영상에 대해 경찰이 입증 문제를 들어 제대로 수사에 착수하지도 않거나, 가해자가 잡혀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현실과는 분명 대조적이다.

시위대가 든 피켓에는 ‘동일사건 동일처벌’,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몰카 사건 피해자 대부분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붉은 색 옷을 입고 집회에 참가했다. 또한 머리에 모자를 쓰고 마스크와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해 철저히 얼굴을 가렸다. 여기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집회가 예고된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염산테러를 예고하는 여성혐오 글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집회 시작 전에는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남성이 집회 참가 여성들 사진을 찍으려다 경찰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촉발된 ‘워마드’의 성격에 대해 페미니즘으로 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과격한 워마드 유저들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와 같은 사회약자인 남성의 죽음 마저 조롱하고, 남성의 누드 사진을 두고 인격 살인을 저지른 일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피해 남성의 가난과 경제적 능력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분노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전히 여성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발생한 몰카 사건의 가해자 98%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또한 천신만고 끝에 가해자가 붙잡혀도 86%가 가벼운 처벌을 받아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다. 홍대 사건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경기도 한 여고에서 드론을 이용한 몰카 촬영 범죄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및 기초자치단체장 후보에 여성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얼마나 성차별적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전체 공무원 중에 여성 비율은 50%에 달하지만, 5급이상 고위직은 4.5%에 그치는 현실이 곧 우리사회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다. 

성폭력과 성매매 문화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 또는 ‘성매매가 성폭력을 상쇄한다’는 논리로 공격적인 남성성을 정당화한다. 이에 비해 여성이 저지른 미러링 범죄에 대해서는 세상이 망하기라도 할 듯 지나치게 분노하고 흥분한다.

힘과 폭력을 논하면서 약자 편을 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울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균형감각은 필요하다. 

강자들은 대개 세상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분노를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지만, 약자들의 분노는 종종 세상을 뒤집는 혁명의 불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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