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千辛萬苦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다. 일제의 폭압과 분단, 골육상쟁과 기진맥진, 마지막 냉전과 산업화의 그늘을 거쳐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여쁜 생령들이 쉬임 없이 스러져 갔고 잉여농산물이 강토를 초토화 시켰으며 독재와 시달림의 긴 세월을 거쳐 비록 일그러진 형상이나마 우리는 근대화를 보게 되었다. 그동안 흘린 눈물이 얼마였던가. 더 이상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이 남북에 공히 생기면서 우리는 드디어 ‘도보다리’를 보게 되었다.

立志

모든 일에는 뜻이 필요하다. 뜻을 세우려면 지난 날을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뜻은 뜻일 수 있다. 옳은 뜻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힘을 얻는다. 이제는 행동이다. 화평한 세상을 이루려는 뜻을 세웠다면 행동해야 한다. 분석과 평가의 결과를 신뢰해야 한다.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내지를 수 있다.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니, 지금 나아가고 있다.

▲ 박흥준

艱難辛苦

뜻도 세웠고 발걸음도 힘차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다면 인생이 아니다. 덫도 있고 지뢰도 있고 거미줄이 얼굴을 휘감고 칡넝쿨이 온 몸을 얽어맨다. 그게 인생이다. 뱃가죽이 달라붙고 목이 타고 모기가 물고 뱀이 혓바닥을 내밀어 위협한다. 그래도 허위허위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저 멀리 보이는 등불. 그 이름은 평화이다.

戰戰兢兢

가끔은 망설이기도 한다. 지치기도 한다. 이게 최선일까. 뜻이 바로 세워진 것은 맞는가. 이 길이 그 길인가. 나쁜 놈은 나쁜 놈 아닐까.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다 보니 와락 의심이 든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벌벌 떨린다. 거 봐. 내 말이 맞았지? 악마의 속삭임이 때를 만난 듯 창궐한다. 절대 그럴 놈들이 아니라니까. 정신 차려. 속삭임은 계속되고 망설임과 의심을 넘어 그 옛날의 익숙한 곳으로 다시 데려가려는 악마의 의도에 솔깃해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머리를 거칠게 흔든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天路歷程

어려움은 계속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홍 모 두더지, 저 멀리 볼 모 두더지.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오랜 세월의 매몰비용을 감당하지 못 한다. 오랜 세월 힘들었던 역정을 무위로 돌리게 된다. 두더지의 머리를 망치로 하나씩 내리쳐야 한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조심스레 나아간다. 힘겹지만 조금씩 나아간다. 드디어 도착한다. 평화라는 고지에.

和平盛代

이제 더 이상 동족상잔은 없다. 무기를 터무니없는 값에 들여 올 이유도 없다. 사드가 해체되고 미군은 사시사철 극동의 낭만을 즐기며 막걸리를 들이켜는, 군복만 걸쳤지 군인이 아닌 이웃 인간이다. 경제의 물꼬가 남북으로 트이고 사람들이 오고가니 그게 바로 통일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섬에 갇힌 생쥐가 아니다. 이제부터 유라시아는 우리 모두의 무대이다. 모오든 쇠붙이는 용광로에 넣어져 쟁기와 보습으로 되살아나고 거기만을 수줍게 가린 아사달과 아사녀가, 남남과 북녀가 중립의 초례청에서 다소곳이 맞절한다.

同居同樂

자아.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필연일 터. 조금만 더 가자.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그들을 어르고 달래어 평화를 가져오자. 악마는 이제 속삭임을 멈추라. 우리는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조금은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자. 악마 너도 같이 가자. 처음부터 악마였을 리는 없으니 ‘개전의 정’만 뚜렷하다면 너도 함께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세세연년 화평한 세상, 자손만대 행복한 세상, 주야장천 풍악이 울리고, 풍부한 물산을 서로 나누고, 시를 짓고, 잰 체 하며 그림을 그리자. 그런 세상이 눈앞이다. 조금만 힘을 내자.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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