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는 맥주 제조 공법의 차이를 교묘한 말장난으로 풀어왔다"

글을 쓰기 전에 항상 인터넷을 통해 자료조사와 사실 확인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내 기억력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는 우리보다 늘 빠르게 변하고 발전한다. 매주 주제를 결정하고 나면 글의 흐름을 잡고 그것에 맞게 사실 확인을 하는 식이라 어느 것이든 몇 시간만 뒤지다 보면 글은 얼추 완성된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 롯데주류를 알아보기 위해 롯데주류의 홈페이지를 며칠이나 바라보고 있는 것은 꽤 고역이었다. 워낙 롯데라는 브랜드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롯데주류의 양아치 근성에 대해 이야기 해기로 한다. 하이트진로와 카스맥주도 다뤘으니 롯데 맥주가 빠지면 섭섭할 것 아닌가?

롯데맥주는 진입장벽이 철옹성이자 통곡의 벽 수준인 국내 맥주 시장에 세 번째로 등장한 기업이다. 두산그룹이 주류 사업 분야를 정리 매각하는 과정에서 맥주를 제외한 다른 주류 분야를 롯데에 매각했다. 롯데는 그룹의 숙원사업이던 주류업계 진출을 두산주류BG를 인수 하면서 마침내 이루게 된다. 이후 롯데칠성과 롯데주류가 합병하고 2014년에 클라우드 맥주를 출시했다.

대일본맥주와 소화기린맥주가 하이트진로와 카스맥주가 되는 그것만큼 부침이 심한 주류시장에서 롯데가 두산주류를 인수해 롯데주류가 되는 것을 누가 뭐라 할 것인가만 롯데주류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09년에 출발한 롯데주류의 역사를 1926년 강릉합동주조의 시작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강릉합동주조는 백화양조 경월주조로 이름을 바꾸어왔고 경월 그린 소주로 대중에게 익숙하다. 두산과 합병 후 사라진 주조회사다. 그 외에도 두산주류 시절 생산 판매해오던 청하, 설중매, 백화수복, 마주앙 등도 모두 롯데주류의 역사 안에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다.

▲ 백승대 '450' 대표

가만있어보자.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이 기시감은 무엇일까. 그래! 대륙의 냄새다. 내 역사도 우리 역사, 너희 역사도 우리 역사라는 뻔뻔한 ‘동북공정’의 냄새. 창업 한지 십 년에 불과한 빈약한 역사성과 정통성이 롯데에는 콤플렉스였을까? 굳이 합병한 회사와 그 전전 회사의 이력까지 끌어와 자랑스레 연혁에 표기를 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실 지금도 예전의 마주앙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 마주앙을 찾아보다 롯데주류에서 친절히 바로 가기를 걸어둔 롯데와인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마주앙은 롯데와인의 잘 나가는 수입 와인에 좋은 자리를 내어주고 저 아래 조그만 박스에 처량하게 소개돼 있다. 롯데주류에선 자랑스러운 국내 최고의 한국 와인이라 소개하고는 와인 사업 부분에서 수입와인보다 돈이 안 되니 푸대접을 하는 건가?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롯데의 첫 번째 양아치 기질이다. 우리는 돈 되는 거 위주로 판다고 말하는 듯한 저렴한 장사치 기질. 사주가 일본인이라는 건 말하기도 귀찮다.

두 번째는 롯데의 클라우드 맥주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국내 제3의 후발업체였던 롯데의 조급함과 롯데 특유의 기질이 만나 출시 직후부터 “100% 발효원액에 추가로 물을 타지 않은 오리지널 그래비티 공법”이라는 기가 찬 카피를 뽑아냈다. 온갖 매체에 물 타지 않은 진짜 맥주라는 카피를 도배하며 시장 진입 효과에 꽤 득을 봤지만 나는 이 카피 문구 때문에 클라우드 출시 이후 지금도 업장에서 클라우드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클라우드는 맥주 제조 공법의 차이를 교묘한 말장난으로 풀어 그동안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던 모든 맥주를 물 탄 맥주, 싸구려 맥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이트와 카스를 잡기 위해 우리는 맥주에 물 타는 너희와 다르다고 말하면서 처음부터 물 많이 넣고 만든 내가 진짜 맥주고 너흰 가짜 맥주라는 뉘앙스로 말 해버렸다. 그러면 다른 국내산 맥주는 뭐가 되나. 그걸 수십 년 마셔온 우리는 뭐가 되는가? 이건 경쟁업체를 무시하고 소비자마저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저급한 판매 전략이다.

롯데가 말하는 오리지널 그래비티(Original Gravity) 공법이란 맥아즙을 만들 때부터 물의 양을 많이 잡아 발효 후에도 원하는 알콜 도수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하이트와 카스, 대부분의 미국 라거들은 물의 양을 적게 잡고 맥아즙을 발효시켜 높은 도수의 맥주를 만든 다음 정제수를 첨가해 원하는 도수를 얻는 방법(High Gravity)을 쓴다. 버드와이저, 칼스버그, 하이네켄, 기네스도 이런 공정으로 맥주를 만든다.

내 비록 종교는 없으나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소리는 들어 봤어도 물 타지 않고 맥주를 만들었단 소리는 롯데한테 처음 듣는다. 맥주의 원료인 보리는 자체에 수분이 거의 없어서 적정량의 물 없이는 발효되지 않는다. 집에서 담그는 간장이나 엑기스 효소 따위를 생각해 보라. 처음부터 진하게 발효하여 나중에 희석을 시킬 수도 있고 처음부터 희석이 필요 없을 만큼의 용액에 재료를 넣어 발효시킬 수도 있다. 다를 바가 없다. 처음부터 수분(물)이 많으면 발효과정에서 잡균이 끼거나 발효가 더디 진행되기도 하고 매번 같은 양을 투여해도 발효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롯데는 지금도 꾸준히 정상급 연예인들을 모델로 내세워 클라우드 맥주에 물을 타지 않았음을 부각하고 있지만 (전지현, 설현, 김혜수님 마저...)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상대를 높이는 방법은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나를 낮추어야 비로소 상대가 높아진다. 경기장에 먼저 나와 있던 두 형님에게 “너흰 틀렸어 이 꼰대들아” 하고 외치는 것만 같다. 막내라면 막내답게 패기 넘치고 재기발랄한 다양한 방법으로 두 형님과 멋진 승부를 겨뤄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안타깝게도 롯데맥주는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이 5%도 안 된다. 클라우드 출시 당시 롯데주류의 공식 입장이던 하이트 카스가 아니라 수입 맥주들과 당당히 경쟁하겠다던 출사표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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