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등장에 사라지는 슈퍼와 지역 자영업자들

4캔에 만원 맥주 얘기를 또 한 번 해보려 한다. 지난번에 4캔에 만원인 수입 맥주 얘기를 했으면서 또 그 얘기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지난번에는 4캔에 만원이 가능한 구조와 주세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맥주 4캔을 만 원에 판매하고 있는 주력 판매처, 편의점에 대한 우려를 여러분께 들려드린다.

수입 맥주가 4캔에 만원, 5캔에 만원으로 판매된 최초의 사례는 홈플러스나 이마트 등의 대형마트가 아닐까 싶다. 웬만한 규모의 대형마트에 가면 와인을 위주로 한 수입 주류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는 와인을 비롯한 각종 위스키와 수입 맥주들이 위풍당당하게 늘어서 있다. 저가 와인이나 대용량 와인은 대부분 대형마트에서 판매와 소비가 이루어진다. 거기에 더해 제품군의 다양화를 위해 수입 맥주를 들여와 묶음 상품으로 할인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색다르게 아니면 좀 더 저렴하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 백승대 450 대표

호가든 기네스 아사히 등의 이름값 좀 있다는 유명 수입 맥주들 사이에 남미나 스페인 맥주 등 인지도와 수입원가가 낮은 '듣보잡' 맥주를 끼워 넣어 유명 맥주 판매에서 발생하는 판매이익 감소를 저가의 수입 맥주로 만회한다. 한정된 가격에 4캔, 5캔을 고르라고 하면 소비자는 으레 평소 즐겨 마시던 수입 맥주 몇 개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다른 맥주 하나쯤은 집어 들게 된다. 처음 보는 맥주인데 이건 어떤 맛일까 하는 기대와 함께. 처음 보는 제3세계 맥주를 집어 드는 순간 당신은 대형마트 주류 담당자의 함정에 그대로 빠져드는 순진한 사냥감이자 친절한 ‘호갱’이 되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수입 캔맥주 할인 행사가 성공하자 편의점 업체들이 이를 따라한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4캔 만원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가진 자본력을 기반으로 한다. 아무리 싸게 들여오는 수입 캔맥주라도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으면 원가를 낮추기 힘들다. 재고를 떠안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입사와 협력해 대량 구매해야만 입고 원가를 낮춰 더 싸게 판매 할 수 있다. 일반 소매업자나 소규모 마트에선 해보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수입 맥주 수입사에서 만원에 4, 5캔에 파는 것이 아니라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그렇게 파는 것이니 수입 맥주를 할인 판매해 시장을 교란하는 주체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이다. 개인적으로 수입 캔맥주 할인행사의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편의점이라 생각한다. 대형마트에 들린 김에 주류코너에서 할인 판매하는 캔맥주를 사는 것이지 캔맥주 몇 캔 사자고 차 몰고 대형마트에 가지는 않으니까. 

웬만한 규모의 편의점에 가보면 주류용 쇼케이스 냉장고가 몇 대씩이나 늘어서 있고 그 안에는 세계 맥주 전문점과 펍(pub)을 기죽일 만큼의 다양한 술들이 가득 줄을 맞춰 서 있다. 냉장고 밖에는 각종 수입 와인들과 위스키 보드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용량과 비교하면 턱없이 비싼 미니어처 술병들도 앙증맞은 크기와 포장으로 어서 자기를 집어 들라고 유혹한다. 이 정도면 세계 주류 백화점이다.

집 앞 몇 백 미터 안에 밀집해 있는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 하는 수입 캔맥주를 사고, 간 김에 그에 어울리는 안주도 같이 집어 든다. 예전이야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술안주라고 해봐야 냉동만두, 족발, 편육, 소시지 정도였지만 수입 맥주가 잘 팔리기 시작하면서 편의점들은 앞 다투어 그에 어울리는 안주들을 출시했다. 파스타, 피자, 막창, 난자완스, 닭발, 치킨, 김치찜... 심지어 얼마 전에는 1인용 스테이크 생고기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집에서 혼자 마실 테니 스테이크를 굽는 수고로움 정도는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렇듯 편의점이 주류 판매의 신흥 강자가 되면서 염려되는 것은 사라지는 동네 슈퍼와 지역 자영업자들이다. 혼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이 유행하는 요즘 골목 상권과 동네 술집 사장을 걱정하는 것이 고리타분할 수는 있겠다. 1인 가구의 증가, 경제 침체 등의 다양한 이유로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편리성과 다양성, 24시간 영업이라는 것을 무기로 동네슈퍼보다 몇백 원 비싼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편의점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

편의점만큼 다양한 주류를 판매할 수도 없고 술안주나 도시락 샌드위치도 못 파는 동네 슈퍼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장 논리인가. 편의점보다 맥주를 비싸게 팔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닌 동네 술집들은 다 망해 나가도 어쩔 수 없는 건가.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 제품 개발로 그들과 경쟁하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긴 그 맥주 안 팔아요? 편의점에는 팔던데..” 혹은 맥주 한 병을 주문하면서도 “왜 편의점보다 이렇게나 비싸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기운이 쭉 빠져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같은 제품이라면 1원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현명한 소비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동네 슈퍼가 사라지고 그곳에 편의점이 들어서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다. 편의점으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하는 것도 아주 불편하다. XX연쇄점, XX상회라는 간판의 동네 슈퍼에서 아버지 담배 심부름 막걸리 심부름을 하던 때도 그립고 내가 피우는 담배가 무엇인지 알고 ‘담배 주세요’란 말에 묻지 않고 담배를 꺼내주던 슈퍼 아줌마도 그립다. 옛날이 그리우면 꼰대라는데 장황하게 쓰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요 아저씨인가 보다.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