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로잡은 뒤 이제부터 시작이다.

‘보수’가 ‘몰락’했다고 한다. ‘궤멸’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자유당이 ‘자멸’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TK지역과, 경남의 TK라 일컫는 진주와 서부경남을 제외하고 모든 선거구에서 ‘참패’했으니 ‘몰락’이 맞다. ‘참패’는 싸움의 결과이다. ‘참패’ 뒤에 ‘궤멸’이 이어진다. 드디어 역사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이를 ‘몰락’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들(바른미래 포함)이 싸움을 하지 않고 그냥 무너진 데 있다. 따라서 ‘참패’가 아니라 ‘자멸’이다.

그들이 보수였다면 애초에 몰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느 국면에서 패배하고 권토중래하고 어느 시점에서 다시 승리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패배하는 사이클은 있을지언정 보수가 몰락하는 일은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이비 보수, 그들을 지지하는 한 줌의 세력은 ‘샤이 보수’가 아닌 ‘사이비 샤이 보수’라고 불러야 한다. 따라서 ‘보수의 몰락’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 박흥준

이번 선거결과를 그들의 자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박근혜 탄핵국면을 그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행동했다. 이해를 제대로 했다면 1년여의 준비기간이 있었으니 이번에 제대로 싸웠을 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철저히 반성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보수’가 아니다 보니 그들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경남을 엉망으로 만든 홍 씨를 불러들여 세상을 되돌리려 했다. 막말과 트집 잡기로 일관한 홍 씨의 행태는 유권자들의 거대한 반발을 불러왔다. 내후년 총선까지 홍 씨가 기죽지 않고 여전히 맹활약해 주기를 바라는 여론(국민청원)까지 있을 정도이니 이번 선거결과는 그들이 헛발질 끝에 자멸한 것이지 민주당이 잘 해서 나온 게 절대 아니다.

그들은 시대정신도 외면했다. ‘평화’라는 시대정신 말이다. 전 세계가 24시간 눈을 돌리지 못 하고 숨죽여 바라본 싱가포르, 그 싱가포르의 합의문을 헐뜯고 폄훼하기에 바빴으니 그들이 TK와 서부경남만 빼고 모든 유권자의 외면을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랜 세월 그들이 큰형님으로 모셨던 트럼프(미국)가 C(완전한)에 V(검증 가능한)와 I(불가역적인)가 들어 있다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는데도 V와 I는 어디에 있느냐고 울부짖었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국군을 모독하는 일이다. 오랜 세월 분단에 기생해 정치생명을 유지하고 전쟁위기를 부추겨 밥을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평화가 오는 게 두려운 그들이니 이제는 그들이 저절로 CVID(disappear)할 차례이다. 그들이 보수였다면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땅의 보수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보수이기에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는 지적을 받는가. 보수의 지향점은 평화이다. 전쟁을 사랑하는 보수는 없다. 보수의 주요 대상은 민족이다. 민족이 아닌 외세(제국주의)를 숭앙하는 보수는 없다. 보수의 이데올로기는 진보도 그렇지만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보수는 없다. 보수의 가치는 도덕이다. 아울러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외면하는 보수는 없다. 이제 그들은 무슨 이름을 얻어야 할까. 바로 ‘극우’이다. 이번 선거에서 극우는 자멸했다. 민주당은 손 안 대고 코를 풀었다.

공자의 정명(正名)사상은 “이름에 부합하는 실제가 있어야만 그 이름이 성립하며 이름이 성립해야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에 이름을 바로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름부터 바로잡자. 그들을 극우로, 민주당을 보수로, 그렇다면 진보는? 보수인 민주당이 극우인 자유당과 짝짜꿍해 4인 선거구를 없애는 바람에 일정한 표를 얻고도 의회진출이 또 한 번 좌절된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 노동당이 현 단계에서는 이 땅의 진정한 진보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들(극우, 또는 극우가 보수를 참칭하는 일)은 곧 사라질 터이니 민주당은 보수라는 이름을 되찾아가기 바란다. 그리고 빌려온 이름(진보)은 정의당 민중당 녹색당 노동당에게 돌려주기 바란다. 보수와 진보가 머리를 맞대고 국사를 의논하기 바란다. 민의를 왜곡하는 선거제도부터 대선거구 도입과 함께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으로 바꾸고 최저임금법부터 되돌려놓기 바란다. 아울러 어떻게 하면 남북교류가 활성화돼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지 그 방식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기 바란다.

시대의 참스승 이영희 선생은 일찌감치 “새는 좌 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민주주의라는 새는 진보라는 좌와 보수라는 우의 날개를 동시에 가져야만 평형을 유지하며 세상을 조망하고, 솟구쳐 올라 희망의 내일을 꿈꾸고, 급강하하며 먹이를 낚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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