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사춘기 아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아침부터 사나운 드릴 소리에 잠이 깼다. 벌써 사흘째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위층은 아닌 것 같은데 대각선 방향인가? 옆 라인인가? 아파트 전체를 울려대는 진동에 소음발생 위치를 정확히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콘크리트 깨는 소리에 잠이 깬 걸 생각하니 슬며시 화가 일기도 했지만 소음은 소음일 뿐, 소중한 내 일상에는 잔금 하나 낼 수 없다고 마음먹으며, 명랑하게 밥상을 차리려 노력했다. 

잠시 후, 드릴은 망치로 교체되었다. 깡!깡!깡! 망치로 벽돌을 내려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화장실 타일을 하나씩 뜯어내는데 잘 안돼서 애를 먹고 있거나. 아무튼 망치 소리는 갈수록 또렷하고 명징하게 고막을 때렸다. 음악을 틀까 하다가 손을 멈추었다. 망치 부인이 모든 소리를 삼켜버릴 기세였으므로. 관심을 딴 데로 돌리자. 컴퓨터를 켰다. 몰입해라, 몰입해라. 주문을 외듯이 자판을 두드렸지만 그럴수록 망치 부인은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때 어디선가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딱따구리는 나를 쫓아다니며 따다다다 쉼없이 귀를 쪼아대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공사가 우리 집에서도 한창 진행 중이다. 사춘기 아들의 전두엽 리모델링 공사. 친절한 지식인에 따르면, 전두엽은 대뇌 앞쪽에 위치하면서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력 등을 주관하고 감정과 행동의 조절기능을 담당하고 있단다. ‘감정과 행동 조절’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 아닌가? 감정과 행동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낭패 보는 일들을 우린 얼마나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해왔나. 그것이 모두 전두엽의 조작이었다니. 거울 속의 내 이마를 힐끔 쳐다본다. 

▲ 재인 초보엄마

사춘기는 이 전두엽이 재정비 공사를 하는 기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충동적인 말이나 행동을 자제하기 어렵다고. 하긴 스스로 제어가 안 되니까 그렇게 어이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요즘 아들은 전두엽을 싹 갈아엎고 있는 건가. 대대적인 공사인 건 분명한데 벽돌 한 장 섣불리 얹을 수가 없다. 잘 마무리되길 기다리며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그날 우리는 망경동 굴다리에 진입하기 직전, 빨간 신호에 멈춰있었다. 나는 운전을 하고 아들은 어린 동생과 뒷좌석에서 티격태격 하는 중이었다. 룸미러를 보면서 좀 조용히 가자고 몇 번 말했지만 조용해지지 않았다. 사실 둘은 매일 눈만 마주치면 싸웠다. 그 때문에 그날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차문을 열고 내려버렸다. 곧 신호등이 바뀌었고 나는 일단 직진. 뒷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옆으로 방향을 틀만큼 운전이 능숙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반대방향으로 걸어간 아들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음에도. 

퇴근시간이라 도로에는 차들이 즐비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나는 앞만 보면서 운전하고 뒷좌석의 딸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오빠의 돌발 행동에 녀석도 많이 놀랐을텐데. 이럴 때 딸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할지, 혼을 내야할지, 엄마는 좌표를 정하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소용돌이를 헤치고 다만 앞으로 나아갈 뿐. 아들은 어디로, 어디쯤 가고 있을까? 

집에 도착하자 딸은 말없이 방에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한참 울려도 받지 않았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사춘기 소년이 충동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경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제발 받아라, 받아라. 한참 만에 들려온 아들의 목소리. 여보세요? 평온한 목소리를 확인하는 순간 반대로 내 안에서 화가 용암처럼 솟구쳤다. 이대로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침을 한번 삼켰다. 어디야? 길이요. 길? 어느 길? 할머니 집 가는 길. 눈물이 핑 돌았다. 그 길 위에 아들이 아무 탈 없이 있어줘서 고마웠다. 하지만 결코 잘했다고 칭찬할 일은 아니었다. 버스 타고 당장 집으로 와. 집에 가면 혼낼 거잖아요. 그래서 안 올 거야? 아니, 갈게요. 

현관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30여분? 그 시간이 30년 같았다. 그런데 정작 아들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밥을 차렸고 딸은 방에서 TV를 보았고 아들은 씻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씻고 나온 아들은 동생 옆에서 같이 TV를 보았다.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서 이미 식사를 마친 상황. 그날따라 남편은 회식이라 늦는다고 했다. 날 한번 기가 막히게 잡았네. 혼자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는데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들과 딸이 TV를 보며 웃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꿈결처럼 아득해졌다. 나는 잠시 주행연습을 했던 건가. 지옥과 천당 코스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동시에 내심 다행스러운,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로 밥을 삼켰다. 등으로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때 아들이 다가왔다. 엄마, 미안해요. 고개 돌려 잠깐 아들을 쳐다봤던 것 같다. 아들의 검은 눈동자가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가 동생 편만 들어서 화가 났어요. 내가? 그건 편드는 게 아니라 너는 중학생이고 쟤는 초등학생이니까. 그래도 동생이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릴 때는 나도 힘들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랬구나. 이제 엄마도 너한테만 참으라고 안할게. 근데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행동은 위험한 거야.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응, 미안해요, 이제 안 그럴게요. 나도 대답했다. 알겠어. 그리고 계속 밥을 먹었다. 맛을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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