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아직은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루 한 끼를 먹네 마네 하다보면 어느 순간 어떤 지경에 이르는데 먹어도 살고 안 먹어도 숨은 붙어있는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 먹어도 하루가 가고, 말아도 하루가 가는데 조금만 더 가면 배고픔이 무엇인지 모르고, 거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내 몸에 위장이 과연 있었는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왜?

처음엔 쪼르륵 쫄쫄 위장이 온갖 몸부림을 치다가 그 소음이, 그 절규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적막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니까. 그러면 위장은 애초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데 이게 바로 열반이고 견성이 아닐까. 이 단계에 들어서면 우리는 드디어 온갖 고통과 혼란, 질시와 공경, 아울러 끝 모를 투쟁의 염에서조차 마침내 졸업하게 된다.

요즘은 조금 뜸한, 소설 쓰시는 이외수 선생은 뜰 앞의 잣나무 아래에서 좌선하다가 이런 해서는 안 될 말씀을 은연중에 내뱉으신 적 있다. “라면 한 개로 일주일을 버티는데, 일단 라면과 수프를 분리해. 면을 4등분해서 나흘을 견디고 수프를 물에 타서 하루 한 모금씩 마시면 사흘은 가더라고. 이렇게 살아도 숨이 멎지 않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별로 없는 게. 거 참...” 

▲ 박흥준 상임고문

못 가진 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고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내려 먹일 만 한 이 멘트를 그야말로 은연중에 하심으로써 이외수 선생은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노동자들, 그것도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이나 1년 상근계약직의 이름을 뒤집어쓴 노동자들을 오랫동안 본의 아니게 힘들게 했지만, 지금도 힘들게 하고 있지만, 과연 내가 실천해 보니 이외수 선생의 말씀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에 별로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었다.

과연 그랬다. 세 끼를 한 끼로 줄이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건너뛰고, 팬티 한 장으로 사철을 나고. 학원 끊어도 애새끼들은 잘 자라고, 인(in) 서울 안 하고 대학 안 보내도 애새끼들 안 죽고, 돈 안 벌어 와도 마누라 지청구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눈앞에 적멸의 벌판이 어슴푸레 펼쳐졌다.

과연 정말 그랬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최저임금도 별 문제가 아니었다. 차상위계층의 애매함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칵 죽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터였다. 그러고서 내뱉은 말. “드디어 나도 깨달았도다!!” 오도송(悟道頌)치고는 너무 짧은 게 흠이지만 그럴 듯 하지 않은가.

최저임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막장임금이다. 끝 모를 깊이를 곡괭이로 내리치고 삽으로 퍼내면서 두더지처럼 엎드려 기는데도 세상은 끝이 나지 않고, 먼지 가득한 동발아래에서 간드레(카바이드와 물을 이용한 조명기구) 불빛에 의지해 검은 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탄을 캐내도, 규폐와 진폐에 숨을 헐떡여도, 우리의 임금은 오르지 않거나 찔끔 오르는 듯 하거나, 그나마 다시 빼앗기거나 했다. 그 최저임금, 아니 막장임금이 저들의 타깃이 된 지 오래이더니 이제는 아예 경제를 해치는 악의 축으로까지 규정되고 있다.

계속 퍼부으면 거짓도 진실이 되고 분뇨도 황금과 젖과 꿀로 바뀐다. 괴벨스가 일찌감치 일갈한 대로 세상은 또다시 움직이고 있다. 괴벨스가 이 땅에 환생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는데 “이성이 요괴를 물리친 게 도대체 언제냐”고 모두들 장담하는 지금 이 순간, 21세기에도 괴벨스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이 땅을 뒤덮고 영남 전체가 환호작약(歡呼雀躍)할 기세를 갖추고 있다. 그들의 언어로는 ‘잃어버린 2년’. 드디어 우리 세상이 다시 열리는구나. 일각이 여삼추라더니 2년은 너무 길다. 홍준표의 일갈이 맞았구나.

한 없이 빨리기를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일인데 그럴 조짐이 어느 순간 벌써 보이고 있다. 조중동이 종편을 하나씩 나누어 갖더니 떡을 고맙게 나눠주신 서왕(鼠王, 쥐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려 날뛰고 있다. 그나마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 그 JTBC마저 손석희가 사라지면 어찌 될지 모른다는 오싹하고 불길한 생각이 가을바람과 함께 스멀스멀 들어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불길한 예감에 사람을 떨게 만든다. 그리고 촛불의 기억을 가물가물하게 한다.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최저임금, 아니 막장임금을 사수해야 한다. 그래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라면 한 개로 일주일을 살지 않으려면, 자식새끼 학원을 그나마 끊지 않으려면, 노동자가 더 이상 조선조의 노비로 살지 않으려면, 추노꾼에 쫓기다 잡혀오지 않으려면, 그리고 적막과 적멸을 외로이 맞지 않으려면.

거창하게 소득주도성장까지 언급할 계제가 아니다. 어렵지 않다. 최저임금, 아니 막장임금을 사수하는 것으로 소득주도성장은 조촐하게나마 시작될 터이니. 조현민이 잠시 물러나면서 이것저것 수십억을 가져가고 국회의원이라 이름하는 인간들 역시 수백억의 특활비를 예사로 나눠쓰면서 뻔뻔하게 활보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여력은 충분하다. 소득주도성장. 아직은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다. “사수하라. 최저임금. 아니 막장임금!!!” “당신들이 인간이듯 우리도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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