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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대의 술딴지] ‘겸손은 힘들어’

기사승인 2018.10.01  17: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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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앞에서 만큼은 잘 익은 벼처럼 겸손해져보라.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 내가 최고지.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리쌍의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래의 일부분이다. 술 칼럼에서 무슨 겸손 얘기를 하나 싶으시겠지만 술 앞에서 겸손만큼이나 중요한 덕목도 없을 거라 생각하기에 이번에는 술과 겸손을 얘기해 본다.

90년대엔 블렌디드 위스키가, 2000년대엔 와인이 주류시장을 주도하며 위세를 떨쳤었다. 위스키 좀 안다는 소리를 하려면 ‘발렌타인 30년산’, ‘조니워커블루’, ‘로얄샬루트’ 정도는 마셔봐야 했고, 집안 장식장에 한 두병쯤은 세워놔야 어깨가 으쓱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의 선물용으로 저들 이상 가는 술 선물은 없다. 하지만 밀레니엄이 되며 폭탄주 문화가 시들해지고 와인 광풍이 불었다. 언제나 그렇듯 일본에서 넘어온 와인문화는 기형적으로 성장하면서 와인을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고 공부하며 외워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대기업 사장님들은 소믈리에를 초청하여 와인 과외를 받았으며, 와인을 배우려는 와인동호회가 우후죽순 생겼났다. “난 이것도 마셔봤어!” 가 자랑이던 수상한 시절이었다.

▲ 백승대 450 대표

당시 대단한 위세를 자랑하던 블렌디드 위스키와 와인은 지금 어찌 되었나? 식지 않고 영원할 것 같던 인기는 시들해지고 이제 술집에서 ‘발렌타인’, ‘조니워커’, ‘로얄샬루트’를 주문하는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르도’가 최고니 ‘부르고뉴’가 최고니 칭송하던 사람들은 다들 자취를 감추고 지금의 와인은 여러 대륙의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된다. 가격은 점점 낮아져 소위 말하는 가성비 전쟁을 하고 있다. 싸고 맛있는 와인이 대세가 되었고 더 이상 와인에 대해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 애초에 와인문화는 이렇게 시작되어야 했지만 처음 와인 시장의 분위기는 배우고 외워야하는, 더군다나 고가라는 진입 장벽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제 와인시장은 예전처럼 성장하지 않은 채 고만고만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렸다.

위와 같은 현상을 보며 아쉬운 점이 바로 겸손이다. 현재의 종가세 상태에서 고가의 위스키나 와인은 국내 소비자가격이 무시무시할 수밖에 없다. 21년 숙성이건 30년 숙성이건 숙성년도가 길다고 해서 다 훌륭한 위스키는 아닌데도 우리는 숫자에, 가격에 집착하며 내가 이렇게 비싼 술을 마신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와인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도 바(bar) 혹은 레스토랑에서 제일 마진율이 높은 주종은 와인이다. 아직도 허풍과 허세의 상징으로 좋은 자리에서 척 하고 와인 한 병을 비트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병에 10만원이 훌쩍 넘는 와인 한 병을 주문하고는 직원을 불러 비싼 와인 주문했는데 서비스 왜 안주냐고 따지는 진상 손님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제 사정이 좋아 고가의 술을 마실 형편이 된다면 유난 떨지 말고 겸손하게 마시길 바란다. 어떤 술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난 OO이 입에 맞고 좋던데’ 정도면 충분하다. ‘역시 위스키는 OO위스키 XX년산이지’ 하는 바보 같은 대답은 본인의 격을 스스로 떨어트리는 일이다. 비싼 와인을 주문했다면 직원을 불러 서비스안주를 달라고 떼를 쓸게 아니라 그 자리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애쓴 직원에게 팁이라도 얼마 주고 나오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술과 겸손의 관계에서 다른 종류의 겸손은 바로 주량이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는 아마 대한민국에만 있는 질문이 아닐까? 나도 손님에게 술을 추천해줄 때 자주 하는 질문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남자라면 으레 본인의 주량을 실제보다 높여 부르는 경향이 있다. “위스키 두병은 거뜬히 마셔요“ 라면서 두병 다 마시기 전에 테이블 위로 쓰러지거나 잠드는 분들을 숱하게 보아 왔다. 남자니까 술 약하다는 소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약점이나 흉이 될까봐 주량을 늘려 부르고는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은 허세가 아닌 그 무엇도 아니다. 자신의 몸을 혹사하고 망가트려가며 마시는 술은 독이다. 술도 약하고 잘 못 마시는데 자꾸 술을 강권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을 멀리하고 그 조직을 떠나는 것이 무병장수의 지름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마셔보고 잘 아는 술에 대해서는 과시가 아니라 추천 정도면 족하고 100세 시대 내 몸과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내 주량을 정확히 알고 절제하며 적당히 마시는 겸손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무엇보다 힘든 것이 겸손이지만 술 앞에서 만큼은 잘 익은 벼처럼 겸손해져보라. 어제까지 늘 마시던 술과는 다른 술이 당신을 맞을 것이다.

백승대 450 대표 rickbaek@naver.com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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