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사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예사롭지 않다.

‘생활정치를 지향하는 네트워크 <진주같이>’의 소모임이었던 ‘마실’을 재건하기 위해 ‘장날 찾아가기’를 제안했다. 복잡한 속내는 이야기 하지 않고 그냥 ‘재미있지 않겠냐?’, ‘장에서 거래되는 상품, 동네의 유래, 특산물, 장의 특징,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를 알아보자’고 했다. '장터의 대표적인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반주로 동네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를 한 잔 걸치자면 더욱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바닥에는 ‘장날 펼쳐지는 경제적 논리만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정치, 문화, 문학 등을 느껴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 마실의 첫 행선지는 ‘완사장’이었다. 완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마실 모임을 무조건 부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실천하기 위해 첫 날짜를 10월 21일을 정했다. 이날 적당한 거리에서 열리는 장은 완사장뿐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완사장을 탐색했다.

▲ 정원각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

완사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예사롭지 않다. ‘완사’라는 지명의 유래와 장의 이름을 단 ‘완사’의 행정상 위치가 그것이다. 완사란 지명이 특이한 이유는 ‘완사(浣紗)’는 “빨래나 마전을 함”이라는 뜻의 일반 명사인데 그것이 그대로 지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전’은 ‘생베나 무명을 삶거나 빨아 볕에 말려서 희게 하는 일’이라 한다. 그래서 완사라는 지명은 빨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사천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완사라는 동네의 명칭은 “옥녀봉 전설에 따라 ‘비단’을 짜서 씻었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완사의 사전적 의미는 비단이 아니라 생베나 무명이라고 하니 차이가 있다. 추측컨대 옥녀봉 전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 ‘과거 급제한 양반 도령’인데 생베나 무명으로 옷을 짓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비단으로 바꾸지 않았을까?

‘옥녀봉 전설’은 민도령, 과거 급제, 사또의 나쁜 짓 등 다른 지역의 통속적인 전설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히어로인 민도령도 따라 죽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설에서는 권력자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여성만 죽는데 완사 옥녀봉 전설은 남자도 따라 죽었다고 하니... 페미니즘도 없을 시절의 매우 특이한 전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사장의 ‘완사’란 명칭이 특이한 것은 완사란 지명이 읍도 아니고 면도 아니며 심지어 리의 규모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동네이름이기 때문이다. 장날의 명칭에 붙는 것은 대부분 행정 구역이고 그 행정 구역은 기초자치단체의 명칭 또는 읍이나 면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설령 크게 양보해도 ‘리’ 정도는 된다. 이유는 장이 설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행정구역, 땅덩어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명이 붙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장날의 이름 중에 이렇게 작은 규모의 지명이 당당하게 자리한 경우는 없다.

이런 규모의 측면에서 보면 완사장날은 진즉에 사라졌어야 한다. 이미 작은 면에서 열리던 장들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진주만 하더라도 대평장을 비롯하여 많은 장들이 사라져 지금은 16개의 읍면 중에 금곡, 대곡, 일반성, 문산 등 네다섯 곳만 겨우 명맥을 유지되고 있다. 사천시도 비슷하다. 이유는 장날을 유지할 만한 인구가 없고 장날의 특산품, 특징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도시의 대형마트에 소비자를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완사장날이 유지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런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완사장에 갔다. 장터에는 적당한 크기의 주차장이 있는데 평소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장터 주차장은 꽉 찼을 것이라 여겼다. 장터 가까이에 있는 완사역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걸어갔다. 하루에 기차가 4번 서지만 역무원이 상근하지 않아 간이역이 된 완사역. 1968년 영업을 시작하여 2010년까지 40년 이상 역무원이 상주했으나 지금은 쇠락하여 간이역이 된 작은 역. 한때는 완사에서 생산된 삼베와 농산물을 진주, 사천 등 도시에 나르고 장에 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리라.

이제 간이역이 된 완사역은 완사장과 함께 완사의 번영과 쇠락을 상징하는 듯하다. 완사장은 그리 크지 않다. 장터는 전체 대지 3,893㎡(약 1천1백8십 평)에 46개의 점포가 상설로 있다. 그런데 상설 점포라고 해서 장이 열리지 않는 날에 늘 문을 열지는 않는다. 그래서 실제 상설 점포는 46개 보다 훨씬 적다. 장날 물건을 팔러 나온 사람들은 노점 할머니, 근처의 농민, 일부 떠돌이 상인 그리고 평소에는 열지 않는 가게를 여는 상인 등이다.

장에 나온 사람들은 세 부류로 구분된다. 먼저 팔러온 사람들인데 이들은 또 다시 구분된다.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팔러온 사람들이 있고 도매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다시 팔러 온 사람들이 있다. 다음으로는 사러온 사람들이다. 사러온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나 가족이 직접 소비하기 위해 산다. 물론 과거 큰 장에는 동네 전방 주인들이 전방에서 팔 물건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장의 규모도 작아졌고 동네 전방도 사라지고 있어 도매를 위해 온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소매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다. 간혹 아이쇼핑 즉, 구경을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구경 온 사람들도 거의 없다. 장이 커서 각종 행사를 하는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이제 5일 장에서 정치 행사, 문화 행사는 거의 사라졌다. 선거가 있을 때에나 장날은 유세와 선거 운동을 위해 복작거릴 뿐이다. 일상의 장터는 이제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상거래 기능만 남은 셈이다.

10월 21일 열린 완사장에서 삼베는 볼 수 없었다.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완사장에서 삼베가 사라진지 꽤 됐고 인근에서 삼베 농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장에 나온 물건 중 주류는 농산물로 텃밭 정도에 심을 소규모 종자들과 말린 나물 등이었다. 그리고 수산물과 건어물이 좀 있고 엄마, 아빠가 장에 가면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신발, 옷이 있었다.

물론 이제 농촌에서도 아이들은 신발을 세계적인 메이커 제품 매장에서 사고 옷은 도시의 대형 매장에서 산다. 장에 나온 신발, 옷은 촌의 할매, 할배들이 쉽게 사고 막 신고 입는 것들이 중심이다. 잡곡의 이물질을 날리는 키 등이 죽세품으로 있는데 “메드 인 차이나”. 비단, 죽세품 뿐만 아니라 장날 단골 공산품인 운동화, 옷, 그릇 등 대부분이 중국산... 시골 장날에도 중국 제품이 아닌 것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다행히 호미와 칼 등 몇 가지 농기구, 주방기구가 국내 이름 모를 대장간에서 만든 것으로 반갑게 눈에 띄였다. 그렇다. 장날이 농민들에게마저 주요 경제 수단이 되지 않은지는 꽤 됐다.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 대부분은 농협을 통해 출하하거나 밴더라고 부르는 중간상인들에게 거래된다. 그러므로 장터에 나오는 농산물은 주요 생산물이 아니라 부수적인 농산물이 거래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비해 거래하는 상품이 다양하지도 많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사장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데리고 나온 가축들... 중병아리, 강아지 그리고 오골계, 칠면조 등등이다. 강아지 중에서 호피 무늬를 한 진돗개는 강아지 티를 막 벗어나서 따로 분류...

어찌 보면 팔려나온 이 아이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주인을 만나 더 재미있게 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파는 병아리, 오골계, 칠면조들이 불로장생하지는 않지만 죽기 전까지는 분명 어느 농촌의 앞마당에서 뛰어놀며 자랄 것이다. 아무리 농촌 앞마당 조건이 열악해도 공장형 사육 닭장이나 개 사육장 같은 곳보다는 좋을 것이다.

한편 장에 나온 오골계들은 전에 보던 것들과 다른 흰 색이었다. 오골계는 뼈가 까맣다고 해서 오골계인데 대부분 겉의 깃털도 검은색이나 짙은 회색이 대부분이다. 겉의 깃털이 눈처럼 하얀 오골계를 백봉오골계라고 하고 효능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더 값이 나간다고 한다.

완사장에서는 유명한 피순대를 먹을 수 있다. 피순대는 돼지 내장과 돼지피를 이용해 만든 순대 원래의 모습이다. 요즘 흔히 파는 순대의 껍데기는 콜라겐 케이싱에 돼지피 대신 색소를 사용한다. 피순대는 이와 다르다.

한편 점심을 먹으러간 장터 옆 ‘영래밀면’에서는 ‘덕천강에서 잡는다’는 다슬기를 넣은 수제비를 한다. 완사장 대표 음식으로 완사와 관계 없는 피순대 보다는 덕천강 다슬기라는 특징을 살린 수제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식당에서 나온 막걸리는 완사에서 가까운 수곡 막걸리... 원부재료가 모두 미국과 호주라서 아쉬움이 크지만 그나마 수곡면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완사장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완사 근처에 사는 곤명면 사람들... 때로는 수곡에서도 온다. 우리처럼 진주에서 오는 사람들도 가끔 있고 전국을 여행하며 찾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조카나 며느리가 오랜만에 들렸다가 장터에 와서 여러 농산물을 선물로 받아가기도 한다.

장터에는 드문드문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보인다.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농촌에서 어려운 밭일, 비닐하우스 일 등을 한다. 이제 농촌에서 한국인 일꾼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 이주 노동자들을 고용한 농민들도, 고용된 동남아시아 일꾼들도 서로 협력하고 존중하는 일터가 되어 서로의 목적을 이루는 관계가 되길 기원하며 완사장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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