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평수보다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해

 ‘개꿀~’ 수능시험을 중딩 아들은 이렇게 불렀다. 예비 소집일에는 단축수업으로 일찍 마치고 수능 당일에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다니. 그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도 아들은 신이 나서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곤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느 PC방을 갈지. 마치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하는 직장인처럼 흔들리던 녀석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엄마! 안되겠어요. 친구들하고 그냥 집에서 놀게요, 그래도 괜찮죠?” 컴컴한 PC방을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나는 동네 슈퍼로 향했다. 녀석들이 집에 오면 라면이라도 끓여먹지 않을까. 말없이 과자와 음료수 등 간식거리를 준비해두는 제법 쿨한(?) 엄마가 여기 있었다.

▲ 재인 초보엄마

한데 아들이 친구들과 집에서 놀기로 한 날, 퇴근해보니 집안이 깨끗했다. 온갖 과자 부스러기가 너저분할 줄 알았는데. 설마 다 치웠나? 그 시간까지도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빠져있던 아들에게 물었다. “친구들은 어디 있어?” “집에 있는데요?” 알고 보니 아들은 우리 집에, 친구들은 각자의 집에서 게임에 동시 접속한 상황.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록 몸은 떨어져있어도 가상공간에서 녀석들은 함께 충분히 즐기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들이 말한 장소가 내가 아는 1차원의 공간이 아니었을 뿐. 생경한 장면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이 멀미를 극복해야 정말 쿨한 엄마가 될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아들은 손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쥐고, 눈은 화면을 주시하면서 쉴 새 없이 주절주절 말하고 있었다. 채팅창을 띄워놓고 친구와 이야기 하면서 단체 게임을 하는 중. 하마터면 너 지금 누구랑 말하냐고 물어볼 뻔 했다. 공간을 초월해 우정을 쌓아가는 중딩 세계의 낯선 풍경이었다.

어느 새 내 기억은 친구의 집 대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동네 앞뒤에 살면서 서로의 집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우리. 어느 집이나 대문을 열어두고 살았고 어느 집 마당이든 아이들이 모여들면 거기가 놀이터였다. 말타기, 공기놀이, 사방치기, 구슬치기... 다 놀자면 하루해가 짧았다. 찬바람에 콧물을 훔쳐가면서 골목을 누비던 그 시절, 큰 도시에서 전학생이 왔다. 양 갈래 땋은 머리에 원피스를 자주 입고 오던 그 아이는 한눈에도 우리 동네 코찔찔이들과는 차원이 달라 보였다. 한날은 우연히 그 아이 집에 가게 되었다. 거실에 놓인 피아노를 보는 순간, 자동으로 어깨가 내려갔다. 게다가 방에는 이층침대까지 있었다. 그 아이는 매일 밤 이층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아버지가 동화책을 읽어주신다고 했다. 우체국장의 외동딸이었다. 그날 나는 배보다는 발이 더 아팠다.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돌부리가 많았다. 발에 걸리는 대로 모조리 차주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친구 집에 가는 횟수도 줄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어느 겨울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 엄마가 떡볶이를 해주셨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떡볶이 한 접시는 그 자체가 진수성찬이었다. 친구 엄마는 우리가 떡볶이 먹는 걸 지켜보면서 물어보셨다. “너희 집은 무슨 보일러 쓰니?” 당시 가스보일러가 막 도입되던 시기였다. “혹시 가스 보일러 신청했어?” “아니요.” “아~ 기름보일러 쓰는구나?” “아닌데요. 저희 집 연탄 쓰는데요.” 친구와 나는 서로 말없이 떡볶이만 먹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의 자취방이 천국이었다. 그 친구는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일하러 가시고 빈 자취방에서 우리는 라면을 먹고 드러누워 만화책을 돌려봤다. 시시한 잡담을 하면서 계속 웃었던 것 같다. 그러곤 별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엄마한테 혼이 났다. 친구네 집에 전화가 없어 집에 미리 연락을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래도 뿌듯했다. 교실에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던 친구와 우리만의 공간에서 특별한 추억을 나눠 가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자취방의 뜨끈한 아랫목을 떠올리면 배가 따뜻해진다.

먼 기억 속의 친구네 집 대문을 닫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나는 니가 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줄 알았어. 근데 니 친구들은 집이 어디야?” “모르는데요.” “너는 친구가 어디 사는지도 몰라?” “엄마, 요즘 그런 거 물어보면 사생활 침해라고요.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아들과 대화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뒤통수가 얼얼해진다. “그게 왜 사생활 침해야? 물어볼 수도 있지.” “누구는 어디 살고 무슨 아파트 산다고, 그 말이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아들의 검은 눈이 잠깐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나는 좀 부끄러웠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집’이란 예전에 친구들과 내가 우루루 몰려가서 라면을 끓여먹던 그 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거나 사적인 대화를 처음 시작할 때, 대개 사람들은 나이가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집은 어디인지 물어본다. 나도 그랬다. 상대방이 어느 아파트, 몇 평에 사는지 알고 나면 제멋대로 판단해버린다. 이 사람은 이 정도 급이라고. 단지 아파트 이름만으로 그가 살아온 삶 전체를 함부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다니. 이런 몰염치가 강남의 집값을, 전국 노른자 땅의 시세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은 사는(living) 공간이지, 사는(buying) 공간이 아닐텐데.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며, 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해서 사고방식이 고급이 되는 것도 아닐텐데. 우리는 아니, 나는 왜 그 형편없는 틀에 갇혀 누군가를 질시하고 스스로 기죽어 살고 있나. 아파트 평수보다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더 집중해야지. 비루한 고정관념의 벽을 쿨하게 허물어준 아들이 새삼 고마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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