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하고 모욕하는 학교 수업이 두렵다"

“저는 경남 진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성소수자 학생입니다. 성소수자인 저에게 학교는 불행한 공간입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에 숨 쉬듯 차별을 느낍니다. 학교는 모든 학생을 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저 같은 성소수자 학생을 비롯해 학교에서 차별받는 학생들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어주세요”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경남학생인권조례안을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 조례안을 수정할 수 있다고 밝힌 가운데 10일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학생이 박 교육감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 편지에서 “박 교육감은 교육감 이전에 교사이고, 교육자”라며 “학교가 모든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학생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조례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최근 박종훈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원안과 달리 수정할 수 있다고 암시한 기사를 읽고 난 뒤 걱정이 적지 않다고 했다. 특히 그는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삭제될 것을 염려한다.

그는 “처음 학생인권조례안을 접하고 조례안 제16조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더럽다는 말을 들어왔고, 학교 수업시간에 동성애는 정상이 아니라는 말도 들어온” 이유에서다.

또한 그는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모욕하는 모습이 무섭다”며 “마치 성소수자가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인 양 묘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간 겪어온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경남학생인권조례안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길 바란다.

그는 “학교는 저 같은 성소수자 학생을 비롯해 차별 받아온 학생들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며 박 교육감에게 “저의 정체성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조례안을 만들어달라. 약자인 소수자 학생 편에 서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이 담기면 저를 비롯해 차별 당하고 있는 성소수자 친구들의 학교생활이 조금 나아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종훈 교육감은 지난 6일 경남교육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인 생각은 (경남학생인권조례안 원안에) 동의하고 지지하지만 학부모들의 정서가, 대중적인 정서가 아닌데 원안대로 가져간다는 것이 선출직으로서, 정치행위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사진 = 전교조)

[박종훈 교육감에게 보내는 성소수자 학생의 편지 '전문']

박종훈 교육감님께

박종훈 교육감님 안녕하세요, 저는 경남 진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 OOO입니다. 교육감님께서 경남에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에게 학교는 춥고 불편하고, 불행한 공간입니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저희 학교는 한겨울에도 교칙때문에 춥고 불편한 교복과 스타킹을 착용해야만 합니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여러 시설들도 너무 열악합니다. 개수가 적어 늘 붐비는 학생 화장실은 문이 고장나서 잘 잠기지 않습니다. 성적에 따라 모든 것이 평가받는 공간은 또 어떤가요. 언제나 성적에 대한 크고 작은 압박을 받고 긴장을 해야하는 학교는 저를 슬프게 합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다는 게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이번에 올라온 학생인권조례안에 담긴 ‘개성을 실현할 권리’가 보장된다면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입을 수 있을 것이고,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면 더 나은 화장실과 학교 시설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교육감 님께서 학생인권조례에 논란이 되는 부분을 수정해야할 것 같다고 암시(?)하셨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경남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주로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삭제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마 교육감 님도 그 부분을 걱정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게 학생인권조례안에서 가장 저에게 크게 다가왔던 부분은 제16조의 ‘차별의 금지’ 였습니다. 처음 조례안이 발표되었을 때 제16조의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 라는 조항을 저는 몇 번이고 읽어 봤습니다. 교육청에서 직접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했고, 비록 한 줄의 문구지만 저에게는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소수자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성소수자인 저에게 학교는 늘 불행한 공간입니다. 친구들에게 성소수자라서 “더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N극과 N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동성도 서로를 밀어내야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할 때도 성소수자는 마치 보이지 않는 희귀한 사람인 것처럼 설명합니다. 이럴 때면 학교에 다니는 성소수자인 저의 존재는 없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렇듯 저는 학교 안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에 숨쉬듯 차별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 학생인권조례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담긴다면 저를 비롯해 일상적으로 차별을 당하며 살고 있는 경남 성소수자 친구들의 학교생활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왔습니다.

얼마 전엔 우연히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분들의 전단지를 보았습니다. 동성애를 질병인 것처럼, 성소수자들이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묘사한 글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전단지를 나누고 받아 읽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안의 차별금지 조항이 뜨거운 감자가 된 지금 상황은 저에게 제 삶과 정체성을 찬반으로 나누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사를 보니 교육감님께서는 ‘선출직’이기 때문에 조례안을 원안대로 가져가기 힘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육감님께서도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셨고, 선출직이기 이전에 교육자라는 걸 먼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학교는 모든 학생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저 같은 성소수자 학생을 비롯해 학교에서 차별받는 학생들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정체성, 저의 존재를 찬성과 반대로 나누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희의 안전을 지키는 조례안을 만들어 주세요. 교육자로서 인권을 침해당하는 학생들 편에, 특히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수자 학생들 편에 서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 70주년에,

학생 OO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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