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언주와 대추리

김수영 선생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지난 76년이었다. 재수를 할 때였고 시인이라면 김영랑, 김소월, 박두진, 서정주, 그리고 강은교 정도만 알 때였다. 박목월 신동엽도 있었다. 김영랑 김소월 박두진 박목월 서정주 등등은 고3 국어시간에 알았고 강은교와 신동엽은 고3 말기 문예반 연합시화전에서 어떤 여학생이 얘기했다. "강은교 시의 서정적 자아는 절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거였다. 시인이 멋있어 보였지만 나 자신은 절대 시인이 될 수 없는 한계를 그 순간 그녀로부터 느꼈다.

▲ 박흥준 상임고문

기고만장은 재수시절부터였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시인을 지망하는 재수생들이 가끔은 보여서 50원짜리 콩국수를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게 일상이었다. “박 형. 김수영이라고 아요?” 뭐 하는 사람인데요?“ ”시인이요. 벌써 죽었소.“ ”신 형은 어찌 아는데?“ ”나도 대충은 들었는데 시가 장난이 아니요.“ 어리석다 보니 김수영 선생의 함자를 그 때는 대충 듣고 말았는데 며칠 후 그 함자가 반복되어 뇌리에 꽂히는 일이 학원에서 일어났고 그 함자는 아무리 시와 무관한 삶을 그 이후 살았기로서니 절대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니들 김수영 시 한 번 읽어봐라. 가슴이 뻥 뚫린다.” “하나만 예를 들어 주이소” “김일성 만세라고 있다” “예에?” 유신시절이었고 스트롱맨 박정희가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백성들의 추앙을 받던 시절이었으니 비록 재수생이라 하여도 까까머리에 호크 잠근 고3이나 다를 바 없었던 우리들은 잠시 섬찟 주변을 둘러보다 등사물(프린트) 교재에 코를 다시 박았다.

큰 일 날 일 아닌가. 국모(?) 육영수 여사께서 흉탄에 돌아가신 게 겨우 재작년인데, 울며불며 만인이 우러 옌 게 엊그제인데 이건 도대체 있을 수 없는 말씀이었다. 잠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잡혀 갈까 봐 나를 포함한 우리는 모두 전전긍긍했다. 안 들은 걸로 하는 게 좋을 듯싶었다. 조금은 무식하고 용감한 어떤 짜슥이 선생님을 대접해 한 번 더 질문했다. “... 그건 잘 모르겠고예. 딴 거 하나만 말씀해 주이소. 예비고사에 나오는 걸로.”

“그라모 ‘풀’이라고 있다. ‘풀이 눕는다.’로 시작한다. 참고서에는 나온다. 교과서에는 없고. 찾아봐라.” 용감한 짜슥이 계속 질문을 이었다. “바람이 불거나 언 놈이 짓밟으모 저절로 눕는 게 풀인데 그게 무슨 시인교? 셈예. 시라 카모 뭐 좀 그럴 듯 해야 하능 거 아임미꺼. 3.4조 3.5조 7.5조... ” 견디다 못 한 선생님은 한 발 물러서셨다. “됐다. 대학 가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마. 진도 나가자. '김일성 만세'나 '풀'은 예비고사에 절대 안 나오니까 안심하고.”

지난 76년. 19살 재수생 치고 김수영을 아는 ‘얼라’는 아무도 없었다. 신 형 덕분에 그 함자나마 알게 된 나 하나를 제외하고는. 먼 훗날 리모콘을 돌리다 엉겁결에 마주친 EBS 드라마 ‘명동백작’을 어쩌다 보면서 그냥 재수시절을 추억할 뿐. 나는 지금도 김수영을 모른다. 아니 김수영 시를 모른다. 그러면 진주가 낳은 불세출, 우리 대추리를 포함해 우리 모두 김수영 선생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고,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식해서 모르며, 설령 안다 해도 대충 넘어가기 바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게 되는데... 부산 영도의 언주가 “그냥 평양 가서 살아라” 눈 부릅뜨고 뇌까리며 살듯이...

시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시인이 위대하다는 건 안다.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한 세상을 언어로 창조하고 있으니. 시인은 아름다운 분이다. 우리가 절대 만들지 못 하는 집을 아름답게 짓고 꾸미는 분이니. 시인은 광야의 선지자이다. 무려 한 갑자 뒤의 세월을 시원스레 꿰뚫으며 대추리와 언주를 포함한 아둔한 우리의 머리를 주장자로 내리치시니. 할(喝)!!

언주와 대추리는 반성해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노땅 꼴통들의 표를 손바닥에 긁어모아 계약 연장 따위는 꿈꾸지 말고 그 손을 탈탈 털어 가슴에 얹어야 한다. 김수영 선생 영전에 통곡하며 엎드려 몸부림치며 참회하고 회개해야 한다. 구업(口業)을 더 이상 짓지 말아야 한다. 지장경(地藏經)에 어마무시하게 나와 있다. 구업을 지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무간지옥의 참상은 필설(筆舌)로 형언할 수 없다고. 언주와 대추리는 손 잡고 반성하라. 혹시 모르는 일이다.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하고 행형성적(行刑成績)이 우수하면 가석방도 가능할 지. 그건 먼 훗날의 일이고. 하여튼 더 이상 구업은 짓지 말기 바란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반공이 국시이고 ‘무장공비’가 수시로 침투하고 ‘간첩’이 은밀히 잠입해 암약하고 초등학생들이 받아쓰기 하다가 갑자기 운동장에 집결해 “무찌르고 말 테야 중공 오랑캐” 어쩌구 노래하며 줄넘기를 하던 시절에 이런 시를 쓰셨으니 김수영 선생은 우리가 영원토록 기억해야 할 시인이자 선지자임에 틀림없다. 그 분의 시, 김일성 만세 전문이다.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趙芝薰)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실패한 시인임에 분명한 그 분, 학원 선생님은 그 다음 해 대학에서 교양국어 선생님으로 다시 만났는데 공손히 인사를 드렸는데도 나를 모르시는 듯 했다. 아 참. 그리고 김수영 선생은 온갖 고생만 하시다 향년 49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외모가 비슷해서 그냥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고백한다. 지난 76년. 부산 경남학원에서 무식하면서 용감했던 그 짜슥은 바로 나이다. 그리고 나에게 김수영을 가르쳐 준 신 형은? 부산에서 초창기 전교조 하시다가 일찍 돌아가신 신용길 선생이다. 경남학원 재수동기. 나는 지금도 김수영 시는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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