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이웃과 술잔을 기울이며.. 폼 나게 살테다.

“이젠 술을 끊든지 해야겠어.” 그렇게 말해놓고 고작 사흘 만에 술독에 빠진 꼴을 보이기 일쑤였다. “얼마간이라도 술을 끊어야지.” 그렇게 다짐하건만 그 얼마간은 결코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몸이 전 같지 않아. 술을 좀 줄여야겠어.” 한 자리서 석 잔 더는 마시지 않을 거라는 약속은 하루에 무너졌다. 무엇을 탓해야할까. 아내는 내 의지 탓이라지만 열다섯 해 동안 피워오던 담배는 단박에 끊어버렸었다. 담배 끊는 사람은 독한 사람이니 가급적 피하라 하지 않던가. 그만큼 나는 독한 사람이었다.

술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 산골에선 어떻게 된 일인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쉽게 만들어지곤 했다. 물론 손사래치고 사양하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술을 마시다보니 생각도 둔해지고 몸도 쉽게 나른해져서 당분간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 김석봉 농부

그러나 술을 마셔야할 일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생겼다. 마을 안에 살면서 술을 마시지 않으며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웃과 만나지 않을 수 없고, 이런저런 일로 이웃을 찾아가면 술병을 내놓는 것이 버릇이요 관례였다.

“안 돼, 안 돼. 나 오늘 술 못 마셔.” 손목을 뿌리치지만 무엇에 홀린 것처럼 손목에 힘이 전해지지가 않았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내가 속이 상해 죽겠는데.” “아따, 속상한 거는 그쪽 사정이고.” 시끄러비아지매는 속사포 같은 말투로 농협 퇴비를 내리다 이웃 노샌댁과 다투었다는 이야기를 내질렀고, 나는 슬그머니 그 이야기를 들으며 시끄러비아지매를 편들어야 했고, 언제 채웠는지 내 술잔엔 넘치도록 술이 채워졌고, 부딪치는 술잔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그렇게 메마른 김부각을 씹으며 두어 병의 술을 비웠다.

고로쇠 물 팔 길이 막막하다는 하샌과 만나서 한탄하며 한 잔, 메주가 다 썩어버렸다며 투덜거리는 아랫말 아지매와 만나서 탄식하며 한 잔, 며칠 전 큰아들을 묻고 돌아온 유씨를 만나 슬픔에 겨워 한 잔, 그렇게 산골의 하루하루가 다 술이었다. 사랑방도 술이요, 경로당도 술이요, 마을회관도 술이었다.

가끔 내 모습을 돌아보며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살려고 이 산골에 들어온 것이 아닌데 어찌 이런 꼴을 하고 사는지 안타까운 생각에 스스로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노년을 맞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폼 잡고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름이면 새하얀 모시옷 빳빳하게 풀 먹여 다려 입고, 손부채 살랑거리면서 한량의 삶을 살 거라고 믿었었다. 겨울이면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아내가 따라주는 향긋한 차를 마시며 원고지나 만지작거리며 살 거라고 믿었었다. 지금의 이런 모습이 아닌 분명 무엇인가 고상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긴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 콘크리트를 가득 실은 레미콘 트럭이 마을 안길을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뿌옇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건축자재를 실은 차량이 줄을 이었다. 마을 뒤 머구밭골 먼당에 또 집을 짓는다고 했다. 외지 사람이 땅을 사서 들어온다고 했다. 마을 외곽 그나마 경관이 좋은 자리에 별장처럼 들어서는 귀촌자들의 집이 십 년 사이에 벌써 열여섯 채로 늘었다.

전직 교도소장 출신이 지은 집은 천장에 유리창까지 넣어 안방에 누워서도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지었고, 전직 학교장 출신이 지은 집은 기둥 두께가 한 아름이나 되는 대궐 같은 집이었다. 부산에서 온 사업가의 집은 주변 토지를 온통 잔디밭으로 가꾸어 마을 주민을 관리자로 두기까지 했다.

다들 폼 나게 살고 있었다. 주말이면 번쩍이는 자동차를 몰고 마을 안길을 거쳐 별장으로 들어가는 그들, 화사한 옷차림에 기름진 음식으로 주말을 즐기고, 도시의 문명 속으로 돌아가는 그들이었다. 하룻밤 방을 덥힐 땔감나무를 지게에 짊어지고 비탈길을 내려오다 만난 그 눈부신 승용차는 지친 내 무릎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내 삶의 모습만 처연할 뿐, 그처럼 폼 나게 사는 사람들은 지천에 널렸다. 거대한 집을 지어 부를 즐기는 사람, 머리카락과 수염을 길게 길러 자연에 파묻힌 사람, 이름 꽤나 날린 예술가가 되어 사람을 불러 모으는 사람, 보살들 수발에 기름기 좔좔 흐르는 중, 하루 일당 삼십만 원이나 되는 목수, 특급호텔처럼 으리으리한 펜션을 가진 사장, 공예가, 해설사, 요리사, 농부, 산꾼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폼 나게 살고 있었다.

나도 폼 나게 살고 싶었다. 두툼한 방석을 깔고, 넓고 기다란 원목다탁 앞에 앉아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연분홍 코스모스 꽃무늬 블라우스를 차려 입은 아내와 함께 홍차를 마시고 싶었다. 삼천포 어시장에서 커다란 도미를 사고, 아내가 만드는 왕의 음식 도미면에 수정방 한 잔 기울이고 싶었다.

나도 정말 폼 나게 살고 싶었다. 파도처럼 우레처럼 때론 소슬바람처럼 그대 가슴을 흔드는 시를 쓰고 싶었다. 가슴을 뜨겁게 태워버릴 것 같은 시를 쓰고, 세상을 향해 한바탕 호쾌한 웃음을 날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간간이 찾아드는 동무와 바둑을 두며 곰팡내 나는 세상 등지고 싶었다.

그렇게 폼 잡고 살고 싶었다. 개량한복 차려 입고 텃밭을 둘러보며 살고 싶었다. 상추 몇 잎 따들고 들어와 신선한 아침밥상을 마주하고 싶었다. 툇마루에서 독서를 즐기고, 뒷짐 쥔 채 마을길을 거닐고, 해질녘 잘 가꾼 정원 벽오동나무 아래서 아내의 노래에 맞춰 금관악기를 불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폼 나게 살고 있지 못하다. 집은 보잘 것 없이 낡은 농가, 나의 하루 시간은 한가롭지 못하다. 살림살이는 남루하고, 아내의 옷도 많이 낡았다. 생각이 무뎌 시를 쓴지 참 오래 되었다. 인공지능이 삼삼을 선호한다는 바둑은 함께 둘 동무가 없다. 세상은 여전히 어지러워 향기도 곰팡내도 분간할 수 없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먼 꿈으로만 남아버렸다.

아내는 민박손님 밥 짓고 청소하느라 언제나 바쁘고 고단하다. 그 고운 얼굴 손볼 틈도 없어 거칠게 흐른 세월의 자국이 선명하다. 장롱 속은 빛이 바래고 얼룩이 번진 옷만 가득하다.

나는 나대로 힘들게 산다. 밭 들머리에 쌓인 이백 포 농협부산물퇴비를 밭으로 날라야 한다. 집 뒤 공터에 부려둔 화목 스무 트럭을 집으로 날라 쌓고 덮어두어야 한다. 내일쯤 도착할 닭똥거름 이백 포도 감자 고추 심을 밭으로 날라야 한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돌아와 아내의 밥상을 마주할 것이고, 불에 덴 듯 믹스커피 한 잔 마시고,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채우고, 혼곤히 잠들어버릴 것이다. 일에 치어 가위눌리는 꿈이나마 꾸지 않기를 바라면서 새벽을 맞이할 것이다. 폼 나게 사는 일은 요원하고, 이 시대 곤궁한 농촌 농부의 모습으로 한 해 한해 나이를 더해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이웃과 술을 마실 것이다. 정신이 무뎌지고 몸이 쳐지더라도, 마을이 야속하고 이웃이 가끔 핍박을 주더라도 이 집은 우리 집이니까. 이 마을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니까. 폼 나게 살지는 못할망정 여기 사는 모두들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어제는 이웃이 우리 화목 자르는 것을 도와주었고, 나는 그 집 사립문 만드는 걸 도와주었다. 대나무 문살을 해달면서 예뻐라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일을 마치고 술을 나누었다. 아내는 홍합을 다져넣은 부추전을 구웠다. 폼 나는 술상이었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사랑방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거라는 기별이 왔다. 지난 설날 딸이 친정 오면서 가져온 쇠고기등심이 남아있다고 했다. 건넌 마을 하샌과 이웃 김형이 모일 거라고 했다. 얼마 전 큰아들을 묻은 유씨도 불렀으면 좋겠다했다. 유씨를 다독여드리고 하샌 고로쇠 물 걱정을 나누어야겠다.

약속처럼 비가 내린다. 새벽 빗소리가 그윽하다. 날이 밝으면 엊그제 지인들이 민박하고 떠나면서 남겨준 금정산성막걸리와 참이슬 몇 병 챙겨 들고 이웃들이 기다리는 사랑방으로 갈 것이다.

눈부신 승용차를 타고 주말이면 별장을 찾는 이가 폼 잡고 지나다니지만 이런 산골에서 쇠고기등심을 두고 불러주는 이웃이 있으니. 외지에서 흘러온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호강을 누리며 살고 있으니. 이 삶도 제법 폼 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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