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가 사태로 바라본 전국최대 미분양지역 경남... 부동산 대책은 과연 없는가

“시행사가 (공정률이 조작된)서류를 만들어 왔고, 감리는 도장만 찍었습니다. 우리도 가정이 있는지라...”

보증사고를 막기 위해 시행사와 감리단이 공모해 공정률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에르가 2차 아파트. 하지만 부정한 사태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통사고에 대비해 자동차 보험을 드는 것처럼, 아파트분양계약에도 ‘분양보증제도’라는 안전장치가 있다. 아파트 분양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 공공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계약자들의 권리를 보상해주는 제도다.

에르가 사태는 건설사의 갑작스런 부도로 공사가 장기간 중단돼 아파트 분양계약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보증사고에 이른 사례다. 결국 보증공사는 시행사를 대신해 계약자들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주는 환급이행 조치를 했다.

이러한 결정은 지난 2009년 이후 경남에서 10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례적인 사건인 만큼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장도 컸다. 분양 계약시점부터 환급이행이 이뤄지는 순간까지 각종 불법과 편법이 난무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나왔다.

 

▲ 이은상 기자

에르가 사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당사자가 피해자라는 것이다. 계약자들은 환급이행 결정으로 계약금과 중도금은 돌려받겠지만, 그동안 허비한 시간과 정신적 피해는 보상받지 못했다. 현재는 시행사로부터 위약금을 받지 못해 위약금 반환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하도급 업체도 시행사로부터 대급을 받지 못했다. 보증공사도 이번 결정으로 400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게 된다.

심지어 시행사도 피해자다. 건설사의 갑작스런 부도로 사업에 차질을 빚었고, 결국엔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됐다. 구상권 청구가 들어온다면 부도를 막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공정률 조작에 대한 책임소재는 밝혀지지 않고, 제도상 보완할 점도 남아있다. 무엇보다 공정률 조작사건이 가장 큰 화두였다. 감리단이 사천시에 제출한 자료와 보증공사에 제출한 자료가 달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예정공정률(예정된 공정률)은 72.52%P였다. 감리단이 지난 1월 4일, 사천시에 제출한 자료에는 실행공정률(실제로 지어진 공정률)이 44.53%P, 예정공정률과 실행공정률의 편차는 27.99%P로 보증사고로 결정될 예정이었다. 예정공정률과 실행공정률의 편차가 25%P 이상 발생하면, 아파트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월 15일, 보증공사에 제출된 자료에는 실행공정률이 47.55%P로 며칠 만에 3%P 가량 증가했다. 골조를 제외한 전기·소방·통신 분야에서 한 달 만에 공정률이 급증한 것이다. 이 자료에는 예정공정률과 실행공정률과 실행공정률의 편차가 로 24.97%P로 보증사고 요건이 아닌 것으로 바뀌어있었다.

감리단은 “시행사의 압박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고, 시행사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사천시는 “시에 제출한 자료에 문제가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고, 보증공사는 “감리를 제제할 권한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에르가 사태는 이렇게 종결됐지만 우리사회가 풀어야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후에도 이런 사건이 재발하게 되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인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 지침에 따르면 공정률 조작이 일어나도 제제조치는 단지 감리의 입찰과정에 벌점을 주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시행사는 공정률 조작에 대해 “감리를 압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감리는 시에서 입찰로 지정한다. 하지만 감리는 시행사로부터 감리비를 지급 받는다. 결국 시행사로부터 감리가 구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감리를 지정한 시가 감리비를 지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번 에르가 사태를 통해 사천시가 시행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분양 당시 시유지인 유수지가 시행사의 아파트 수변공원으로 둔갑했다는 것. 이에 사천시가 시행사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또한 사천시는 계약자와 보증공사의 요청에는 비협조적이었지만 시행사의 요청에는 우호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특히 시행사가 요청한 계약자 설명회는 송도근 사천시장이 직접 참관, 사천대강당을 대관해 긴급으로 열리기도 했다. 이에 모든 사업의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시는 집행과정에 투명성을 높이고, 계약자들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증공사는 감리가 제출한 자료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보증공사의 관리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혈세가 낭비될 우려가 있는 만큼 보증공사는 아파트 분양계약과 시공 과정에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보다 강화된 기준을 사업주체에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분양보증제가 보완해야할 부분도 보인다. 보증약관상 보증범위는 단지 계약금과 중도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계약자들은 환급이행 조치로 계약금과 중도금은 돌려받지만 위약금과 보상금은 받지 못했다.

또한 분양이행을 원했던 일부 계약자들은 자신의 선택권을 존중받지 못한 채 새로운 아파트를 찾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게 됐다.

사천의 랜드마크인 KAI 옆에 흉물로 남게될 아파트 부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숙제로 남았다. 실제로 사천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건설사의 부도로 보증사고가 나서, 사천 대동다숲아파트가 사천 엘크루아파트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3~4년 정도 걸렸다. 에르가 아파트는 이 곳의 2배 정도 규모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보증공사는 현재 이 사업장의 처리여부를 결정하기위해 사업적정성 검토를 거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공매도 또는 분양이행을 하게 된다.

선분양제도의 문제점도 보완해야할 것이다. 선분양제는 부동산 투기를 과열시키고, 하자발생 등 추후에 발생하는 문제점 등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후분양을 하게 되면, 아파트 실물도 확인할 수 있고, 투기과열현상도 잠식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행사가 초기 자금을 모두 조달해야하고, 계약자도 분양대금을 한 번에 납부해야하는 단점이 있어 현실적으로 시행되기가 힘들다. 정부에서는 후분양제를 실시하는 곳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결국 선분양제와 후분양제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에르가 사태를 통해 바라본 경남은 전국최대 미분양지역으로 이미 부동산 경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미분양 주택수가 500호 이상인 지역은 미분양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이러한 지역은 전국에 41곳이 있고, 특히 경남은 6곳을 차지한다. 미분양지역으로 분류되면, 보증공사로부터 분양보증을 받기 위한 사전심사 규제가 강화된다.

사천은 이미 미분양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만큼 사천의 부동산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의미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정부와 지자체가 적절한 부동산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지자체가 지역 인구 추이와 주택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중장기적인 부동산 플랜을 짜는 것이 핵심이다.

분양계약 당시, 사천시의 항공산업 호재와 함께 지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에르가 2차 아파트. 하지만 지금 남은 것은 피해로 얼룩진 상처뿐이다. 앞서 제시한 보완책으로 아문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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