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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안인득 사건에 대한 불편한 사실들

기사승인 2019.04.22  0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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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과 배제, 편견과 혐오라는 사회의 화약들

지난 17일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 살인 사건의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려움과 고통에 떨었을 피해자들과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절로 한숨과 함께 눈물이 난다.

사건의 전말은 경찰과 사법당국의 조사가 모두 끝나야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바로 차별과 배제, 편견과 혐오에 관한 문제 말이다.

사건이 발생한 17일 새벽, 화재가 나자 어른들은 계단 통로를 이용해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먼저 안전한 건물 아래로 대피시킨다. 하지만 2층 계단에는 살인마 안인득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단순한 화재 사건인줄 알고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던 아이들과 노인들은 흉기를 들고 기다리던 살인마에게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나 살아남은 유가족들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다.

▲ 서성룡 편집장

살인자 안인득은 ‘미리 계획한 범죄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불이익을 당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화가나서 그랬다”고 답했다. 계획범죄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도 가중처벌을 피하고 보자는 약삭빠른 계산을 한 것이다. 피의자는 불을 질러 놓고 2층 계단에서 미리 기다렸다가 화재 신호를 듣고 달려 나오는 이웃 주민들을 공격하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짤 정도로 인지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에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미안해 하거나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느낌은 없었다. 피해망상으로 인한 자신의 억울함만 중요하고,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서는 티끌만큼도 공감하지 못하는 이 ‘괴물’은 누가 만든 것일까.

나는 정신질환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범죄 또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병리현상이다. 이번 참극은 한국 사회의 각종 모순들이 중첩되어 일어난 매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다. 먼저, 피해자들의 절대다수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 살인자 안인득은 어린 아이와 여성만을 골라 범행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믿을 수 없다. 저항하기 힘든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들을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극심한 소득 격차는 차별을 만들고,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혐오와 배제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은 소득에 의한 차별, 학력에 의한 차별, 성 차별을 넘어 ‘거주지’에 따른 차별도 이미 심각한 나라다.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천박한 말이 아무 저항 없이 아파트 광고 문구로 쓰인다. 서울에 비해 지방이 차별 당하고, 대도시에 비해 소도시와 농촌이 차별 당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에 쓰이는 예산과 행정 서비스가 다르다. 그리고 같은 동네 안에서도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차별하고, 심지어 넘나들 수 없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거나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도록 민원을 넣기도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벌써부터 국민임대 아파트 거주자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의 천박한 인식 수준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불감증은 살인자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사건이 발생한 국민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올해에만 7차례 경찰과 관계기관에 신고하고 대책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하고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안인득의 위층에 살던 여고생은 수시로 범인에게 쫓기고 협박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고, 결국 범인에게 무참히 살해 당했다.

유가족 중 한 분이 절규하듯 한 말이 망치가 되어 가슴을 때린다. “만약 여기가 OO주공이 아니고 부자동네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어요? 서울 부자동네에서도 이런 사건이 일어나나요?”

불과 5년 전 하루 차이로 발생한 세월호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건 초기 한 유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다 물에 빠져도 똑같이 국가가 구하지 않았을까요?“

사회적인 참사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흔히 주범을 찾아 그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것에 집중한다. 어쩌면 충격에 대해 복수하고 싶은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건 재발을 막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안된다.

세월호 사건의 모든 책임을 배가 침몰된 후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은 선장과 선원들에게만 돌리는 사람은 없다. 그 뒤에는 성장이데올로기로 인한 규제 완화와 안전불감증,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 지방의 소외 등 우리사회의 약한 고리들이 화약처럼 누적돼 있었기 때문이다.

총을 쏘는 것은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이지만, 총알의 속도와 방향은 총의 구조와 화약의 양, 그리고 사람의 분노가 결정한다. 피의자 안인득은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차별과 배제, 혐오 등 고농도로 누적된 사회적인 화약들, 분노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범인과 범죄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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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룡 기자 whon7@hanmail.net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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