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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추억을 쌓다-5] “중앙시장,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

기사승인 2019.04.26  01: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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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기록단 인터뷰] 명신주단 강대훈 아재

[편집자 주] 진주지역 청년들(진주중앙유등시장 청년기록단)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말까지 진주중앙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 작은 책자를 펴냈다. 책자 이름은 ‘시장, 추억을 쌓다’이다. 총 8편의 기록을 단디뉴스가 기사화한다. 젊은 청년들의 눈에 중앙시장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남다른 한복을 만드는 계기? 발품 파는 게 최선

한복들이 멋스럽게 전시된 거리를 지나 명신주단이라고 적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한복집이라 생각하면 여 사장님을 예상하는데 푸근한 웃음으로 남자 사장님께서 반겨주신다.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정답게 인사를 건네고는 따뜻한 아랫목으로 들어오라며 이불을 덮어주신다. 따뜻한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앞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 명신주단 강대훈 아재

“안녕하세요. 저는 진주중앙시장에서 명신주단을 경영하는 강대훈입니다. 62살로, 29살인 86년부터 지금까지 33년째 운영 중입니다” 강대훈 아재는 군대 가기 전 2년 정도 양복이나 양장이 주류를 이루던 원단관련 일을 했다. 군대 전역 후 결혼을 하고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전망이 좋겠다는 생각에 창업은 한복 쪽으로 했다.

“이 일이 내 취향하고 맞고 전망이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상당히 고난의 연속이었지. 한복이 그렇게 많이 잘 되고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때는 한복을 우리가 원단을 구입해 디자인하면 제작은 기술팀에다가 임가공비를 주고 그렇게 판매를 한기라.”

주로 저고리를 잘하는 사람, 치마를 잘 만드는 사람 등 기술자의 특기를 살려 한복의 완성도를 높이고 때때로 기술의 한계에 부딪치면 서울이나 부산 등을 찾아다니며 희소성 있는 고급 기술을 적용해왔다.

“자꾸 해야 기술이 늘어나는데 진주 시장 바닥이 작다보니까 그런 거는 서울 같은 공방에 맡겨서 하고, 어디에 어떤 기술이 나은지 판단은 내가 발품 팔아서 알아내야 하는 거지. 기술에 관련된 것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그 결과 남다른 한복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애”

시련을 기회로

그렇게 좋은 염색과 원단을 찾아 열심히 발품을 팔러 다니던 어느날 시련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점포가 불에 다 타버린 것이다.

“꾸준히 사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한번 재난을 당했어. 2005년인가 6년인가에 불이 나가지고 이 점포를 확 다 태웠는데, 점포 수리를 위해 한 달 정도 어쩔 수 없이 장사를 못하게 되니까 일에 매여 있을 때보다 자유롭더라고. 시간 있을 때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보자 싶어가지고, 그때 천연 염색을 잘한다는 공방을 찾아서 경북 청도, 충청도, 그 다음 서울의 뭐 광장시장, 동대문 시장, 뭐 같은 광장시장이라도 진주에서도 실크를 많이 만들지마는 거기는 가면 진주에 없는 것도 모든 상품들이 몰려드는 곳이니까, 그때 그 화재가 난 이후 한 달 동안 막 다니면서 많은 견문을 넓힌 것 같애”

위기를 기회로 삼는 순간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 하지만 화재가 났을 때 시장에 계신 주변분들 뿐만 아니고 지인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위기를 겪고 나니까 주변사람들이 도와준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어서 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고, 그때 이제 시장에서 뭔가 역할을 해야겠구나 싶어서 번영회 임원으로 봉사를 결심했지. 나만 잘되는 것보다는 시장이 다 같이 잘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투신을 했었지. 그래서 상인교육 같은데도 신경을 썼고, 내가 가진 분야에서는 기술 선도도 조금 해가지고 한복 만드는 기술도 올리고, 대외적으로 중앙시장 한복에 대해서 알리자는 의미로 한복패션쇼를 기획했었지”

한복패션쇼는 15개 업체가 참여해 2점 이상의 한복을 출품, 지금의 공영주차장 1층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후 두 세 차례 더 진행하면서 업체들의 기술도 늘고 노하우도 생겨 유등축제 기간에도 한복패션쇼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하지만 요즘은 경제도 안 좋고 시대적 흐름도 한복을 맞추는 것보다는 대여 형식으로 소비구조가 바뀌어 한복이 힘든 업종으로 쇠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강대훈 아재가 만든 한복

한복 계량도 좋지만 전통 지키는 쪽으로 가야

아재는 최근 젊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관광지에서 한복을 입는 유행이 이는데, 유행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너무 전통을 무시하는 디자인과 소재는 지양해야한다고 했다.

“한복은 전통을 살려 가는 쪽으로 이끌어 가는 게 맞고 계량한복하고 전통한복을 입어야 될 곳에서 영 얼통당토 않은 한복을 입으면 자리에 어울림이 없거든. 요즘 과도한 드레스 풍이나 금박은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한복은 은은하면서도 단아한 멋이 있는데. 중국옷이 그렇게 기성제품으로 들어오면서 한복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

강대훈 아재의 기대와 우려가 느껴졌다. 예전 소비자와 요즘 소비자들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예전에는 주변사람들 예단 옷도 하니까 비용부담이 커서 고가의 옷을 못 했는데, 요즘은 딱 양가 어머님들, 신랑, 신부로 단출해지면서 고급화된 경향이 있었지. 한 벌을 해도 이쁘게 오래 갈 수 있게. 그런데 근래 5년 정도는 대여가 주도를 하면서 너무 고가의 옷으로는 못 만드니까 예전처럼 멋스러운 한복은 많이 사라졌지”

힘든 와중에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강대훈 아재는

“이 사업이 조금 장기적인 안목으로 되려면 한 벌 판 마진율이 얼마다 따지기보다는 그 소비자에게 적합한 것을, 자리에 맞는 디자인이나 이런 걸 권유해드려야 돼. 그러고 나면 그런 분들은 다음에 1이 100이 될 수 있고, 그런 어떤 포인트로 한복을 판매해야 돼. 한복은 조금 장기적인 싸움이라. 이건 주기가 보통 2년 3년, 몇 년 있다가 와야 되니까, 그런 사람 기억 속에 아 그 집에는 가니까 다른데 보다 확실히 한복이 낫더라. 디자인이고 원단이, 색감도 예쁘고, 가격 면에서도 좋더라는 인상을 심어놔야 자연스럽게 찾게 되지. 그만큼 어려운 싸움이라, 한복은”

최근의 관심은 둘째 녀석 사업

두 명의 자녀를 둔 강대훈 아재의 최근 관심사는 결혼해 서울에 있는 딸보다는 함께 살고 있는 둘째아들의 사업이다.

“처음에는 소고기 초밥인가 하다가 학교 앞 분위기하고 안 맞는지 지금은 돼지고기랑 소고기를 같이 하는데 4년 정도 하니까 자리를 잡은 것 같애. 이제 사업에 대한 개념이 생겼는지 하나 더 다른 아이템으로 할 건데 점포 수리도 얼추 끝났어”

수제 마카롱과 빵을 판매하는 카페를 준비 중인 아재의 둘째는 음식점을 하면서 주말이면 마카롱 기술을 배우기 위해 몇 개월을 진주와 대전을 오갔다. 집에서도 천연 향을 뽑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며 철저하게 준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재는 큰 걱정 없이 바라보고 있다.

“정밀저울을 두고 데이터를 내서 전부 노트에 적어 매뉴얼을 만들더라고, 그렇게 하니까 물끄러미 보고 큰 걱정 없이 놔두는데,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너무 장사꾼 속으로 하면 안 된다. 우선 안남아도 많은 사람에게 기억에 남는 그런 상품을 만들어 팔면 그 사람들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그게 바로 마진이 된다’ 내가 배우고 경험으로 아는 거는 그것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노력하라고 주의시키지. 좋은 재료 쓰고, 재료는 절대 싼 거 찾아가면 안 된다. 제품 싼 거 눈속임으로 하는 거는 장사 안하려면 그렇게 하고 이왕 이면 좋은 재료 써라. 그러니까 아들은 천연 재료만 쓰데. 내가 교육 잘 시킨 것 같애(웃음)”

지금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가는 아들을 보면 대견하지만 어릴 때 부모가 가게에만 매달려 학교 마치고 애들만 집에 있게 한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고 하는 아재는 구김 없이 잘 커준 자녀들이 고맙기만 하다. 지금은 오히려 너무 독립적이라 서운할 때도 있다고.

“그러니까 세상에 좋고 나쁨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 그때는 애들끼리만 두고 한 게 마음도 아프고 내가 너한테 참 이렇게 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다가도 어찌 저희들 세상이 되고 보니까 그때 좀 어렵고 어찌보면 무관심하게 키웠던 게 독립하는 데 도움이 됐던 거 같애. 자기 혼자 스스로하고 요즘도 부모는 아예 그때처럼 이런 거 저런 거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자기 스스로 찾아서 하고 나한테는 뭘 안 물어. 그런 거는 이제 우리가 서운하지(웃음)”

▲ 강대훈 아재와 아내

삶의 터전의 또 다른 이름 ‘창살 없는 감옥’

인터뷰 중간 밖에서 일을 하던 사모님이 잠시 들어 왔다 나간다. 질문은 자연스레 사모님 이야기로 넘어갔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 궁금했다.

“이런저런 전문적인 부분들을 같이 공유한 지 오래됐으니까 안사람도 잘할 수 있게 되고 원단이나 디자인 같은 거를 내가 위주로 하다가 30년 넘게 하니까 같은 생각을 하는 수준으로 된 것 같애. 내가 굳이 말을 안 해도 잘해”

시장에서 보내온 30년이 넘는 세월을 사모님은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먹고사는 문제와 고객과의 약속으로 자유가 줄어든 고단함의 표현일 것이다. 이를 풀어주기 위해 아재는 40대 후반부터 매년 해외여행을 같이 다녀온다고 했다.

“한해에 한 번씩 해외여행은 갔다 오는 걸로. 40대 말부터 인자 목표를 그렇게, 너무 나이 들어서는 어려우니까. 한 50대 때는 한 해에 한 번씩 해외여행은 간다. 그것을 잘 실행 했고, 지금 60넘어서 보니까 그것은 한 번도 안 어기고 같이 여행도 가고하니까 집사람이 크게 불만은 없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을 미리 실천하고 있는 강대훈 아재였다.

고객들에게 고마움을 보답 할 때

꾸준히 자기 개발을 하면서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가 됐다.

“글쎄, 지금 하던 업을 평생 업으로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평생 업이라는 게 정말 고객들에게 내 의지나 생각대로 좋은 옷을 공급할 수 없는 정신이 흐려지는 그런 연령대까지 끌고 갈수는 없고. 앞으로 한 5년 내에 소비자들에게 내가 창의적으로 주도해서 추천 할 수 없는 그런 나이가 되면 당연히 접어야지. 그냥 들고 있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이지. 딱 내가 소비자에게 좋은 옷을 추천할 수 없는 연령이 되면 깨끗이 물러날 그 생각하고 있어”

그 준비의 일환일까. 강대훈 아재는 올해의 목표를 가게를 찾아 주는 고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한복 품질에 더 신경쓰면서 마진을 줄여 이익을 고객들에게 돌려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실천 중이다.

“이제 고마움의 보답으로 좀 더 싸게 해주고 만드는 것은 그동안의 노하우가 있으니까 그대로 하고, 마진 중에 20~30%라도 줄여서 돌려주는 쪽으로 그렇게 몇 년 해보고 정리하자고 집사람한테 제안을 해놨어”

나아가 평생을 바쳐 살아온 중앙시장에 대한 애정으로 시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걱정하는 아재는 시설의 현대화로 중앙시장이 옛 명성을 넘어서 도약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30년 40년 이렇게 장터에서 여러 가지 생활을 영위하고 자식을 키우고, 일가를 건사해왔던 생업의 터전인데 정말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현대화라든지 시민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줄 수 있는 그런 터전을 만드는 게 꿈인데, 그것을 위해서 일부 몸을 던져 봤었는데, 구성원들의 생각이 달랐던 것에 아쉬움이 많고, 지금부터라도 혹시 같이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을 위해서 노력할 생각이 있어”

 

▲ 강대훈 아재의 작품

같이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연대감

최근의 중앙시장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청년몰일 것이다. 청춘다락에 이어 비단길 청년몰이 새로 들어와 시장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누구보다 청년몰의 성공을 바라는 강대훈 아재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비단길 청년몰도 성공하려면 굉장한 노력들이 있어야 되는데 저 사업을 시작하는 번영회나 시 관계자랑 기존회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 하는 것이 새로 들어온 청년 상인들하고 연대감, 같이 시장을 살려야한다는 연대감이 형성이 되게끔 우리 번영회도 노력을 하고 새로 온 청년들도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하는 방법에는 기존 베테랑 회원들한테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장사해서 밥 한 끼 팔고 커피한잔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상승효과를 보려면 기존 상인들과 교류를 해야 돼. 정말 밑에 있는 상인들은 열심히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 외부사람 열 사람 보다 장 내의 한 명이 중요하다고”

이렇게 항상 시장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강대훈 아재에게 중앙시장은 어떤 존재일까.

“삶의 전부지. 하여튼 다른 변화 없이 여기서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아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전부지. 전부”

시장이 삶의 터전 그 이상의 의미로 진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정호윤 중앙시장 청년기록단원 dandi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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