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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저 작은 생명체들에 조금만 더 마음을 열자.

기사승인 2019.05.17  11: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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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디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을 녹여주렴”

파랑새가 왔다. 여름 철새인 파랑새는 4월말이면 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녀석들의 짹짹거리는 소리가 봄 하늘을 가득 채운다. 우리 마을이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았고, 고목들이 많아 서식환경이 좋은 것 같다.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샛노란 깃털로 치장한 꾀꼬리가 찾아오고, 다랑이논에 물을 잡기 시작하면 왜가리와 쇠백로도 나타나 그 좋은 경치에 화룡정점을 찍어준다.

이 산골에 들어와 처음으로 파랑새를 보았었다. 조그맣고 예쁘장하고 유순할 것 같았던 파랑새에 대한 상상은 그러나 무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파랑새는 거칠었다. 사나웠고, 비둘기만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울음소리도 시끄러웠다.

파랑새가 나타나면 마을 하늘에선 한바탕 전쟁이 일어나는 분위기였다. 터줏대감인 까치와 때까치와 까마귀도 파랑새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거처인 고목을 차지하려고 파랑새는 그들과 한바탕 전투를 벌이는 듯했다. 한동안 티격대는 소리가 가라앉고 나면 커다란 나무들은 대개 파랑새들 차지가 되어있었다.

▲ 김석봉 농부

봄이 오면 피는 꽃도 꽃이지만 동물들의 세상이 되기도 한다. 마당엔 벌써 고양이가 새끼를 데리고 나왔다. 보일러실 모퉁이 종이상자에서 예삐와 다롱이가 새끼를 낳아 보살피더니 어느새 아이 주먹만큼이나 자랐다.

“아버지, 아기고양이가 눈을 못 떠요. 눈병인가 봐요.” 보름이가 꽃밭 가를 몰려다니는 새끼고양이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다섯 마리 가운데 두 마리가 눈곱이 끼어 눈을 못 떴다. 소독물약으로 씻어 눈 눈곱을 떼어내고 안약을 넣어주었다. 이 녀석들 가운데 몇이 살아남을지 모를 일이었다.

새끼를 가져 배가 불룩한 암코양이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몇몇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필시 이웃집 헛간이나 뒷마당 장작더미 사이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이 분명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집 마당은 또 새끼고양이들이 어지러이 뛰어다닐 것이다.

“고양이가 너무 많지요? 싫어하시면 다른 집을 소개해 드릴게요.” 민박손님이 도착하면 아내는 습관처럼 이 말을 던졌다. “아녀요. 이런 거 다 알고 왔는 걸요.” “아이고, 알러지가 있어서...... 미안해요.” 손님들은 대개 이렇게 두 방향으로 갈렸고, 떠나는 손님에게도 환하게 배웅을 해주는 아내였다.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누구나 고양이를 만나야한다. 바깥마당 장작더미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뽀송이와 노랭이, 지붕 위를 서성대며 내려다보고 있는 억울이, 장독대 담장에서 눈을 마주치는 코점이와 회색이, 꽃밭 사이에서 빼꼼히 내다보는 예삐와 아롱이, 현관 옆 신발장 위에서 머리를 주억거리는 쏘리.

고양이에 밀릴세라 마당 귀퉁이서 낮잠에 빠져있던 강아지들은 아예 온몸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꼬리가 빠지도록 흔들며 뛰어와 바지가랑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고미, 허리춤까지 뛰어오르며 환영의 몸부림이 격한 꽃분이,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행운이.

행운이는 4년 전 이맘때 자기 발로 걸어 우리집에 왔었다. 온몸에 털이 길어 눈도 보이지 않았다. 긴 털은 빗자루처럼 땅바닥을 쓸고 다녀 엉겨붙어있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아내는 털이라도 깎아줘야겠다며 녀석을 붙잡았다. 순간 아내는 화들짝 놀랐다. 녀석의 배에 야구공만한 종양이 돋아있었고, 커다란 종양은 땅에 끌려 짓물러져 농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는 녀석을 동물병원으로 데려갔고, 5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수술을 받았다.

털을 깎은 녀석의 몸뚱이는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피부병으로 얼룩져 있었다. 심장사상충에도 감염되어 호흡이 거칠었다. 종양수술이 회복되면서 심장사상충치료를 해주기로 하고 창원시에 있는 한 동물병원을 예약했다. 또 50만원이 들었다. 매달 한번씩 4번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고, 행운이는 비로소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는 사이 떠돌던 시기에 잉태한 생명을 낳았다.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 새끼는 사흘만에 죽었고, 양호한 상태로 태어난 새끼는 지금 마당에서 천진스럽게 뛰노는 고미. 우리는 행운이의 청력이 완전 마비되었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행운이는 처음부터 애물덩어리였다. 종양수술에 심장사상충치료에 피부병치료까지 어려운 살림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여야 했는데 그해 가을 또 발정이 찾아와 중성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40만원을 썼다. 그것도 모자랐다. 떠돌던 시기에 영양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이빨이 썩기 시작하면서 입냄새가 말이 아니었다. 손가락에 끼워 쓰는 개칫솔을 쓰고, 입안에 뿌리는 세제를 써도 입냄새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입안에 염증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판단에 동물병원에서 소염제를 사왔다. 과연 입냄새가 가셨다. 그러나 그것도 한동안일 뿐이었다. 다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자 동물병원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염증치료에 33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입속에 종양이 있다는 거였다. 윗입술 안쪽에 구슬만한 종양이 있었고, 가끔 입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했다. 동물병원에선 염증이 나으면 종양수술을 하자고 했다. 또 기십만 원이 들어갈 거였다.

“어떡해.” 아내가 한숨을 토했다. 나도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수술은 해줘야지 뭐.” “어떻게 저것들 좀 정리가 안 될까.” 아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참다 참다 처음으로 보인 아내의 반응에 나도 머리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앞으론 사료를 조금씩만 줘볼까 해. 배고프면 떠나는 놈들도 생기겠지.” “그런다고......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글쎄......”

마당을 뛰어가는 고양이 무리를 보면서 말끝을 사렸다. 고양이들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시기여서 가끔 먹일 요량으로 사둔 꽁치통조림이 생각났다. 저녁엔 그 통조림으로 특식을 차려줄 생각이었다. 염증치료를 받고 돌아온 행운이는 그 와중에서도 음식찌꺼기를 모아두는 통 앞에서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행운이를 들인 뒤로 나는 가끔 녀석을 끌어다 품에 안고 잤다. 녀석은 품속에서 잘 잤다. ‘부디 너를 버린 옛 주인에 대한 나쁜 감정은 버리렴.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단다. 여기서 살다 죽을 때까지 사람을 나빠하지 마라. 혹시라도 응어리진 게 있다면 살아가면서 다 녹여주렴.’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행운이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곤 했다.

산골에 산다는 것은 이처럼 많은 새로운 생명을 만나 함께 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을 거부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높다랗게 담을 쌓고 그 안으로 아무런 생명도 들여놓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적막한가. 얼마나 팍팍한가.

파랑새가 온다고 신기해하고, 꾀꼬리 그 샛노란 깃털을 눈부셔하고, 고라니 발자국을 보면서 청정함을 느낀다면 조금만 담을 낮추시고 길고양이 한두 마리 맞이하시라. 떠돌이로 지친 강아지 한 마리쯤은 거두어 보시라. 양계장에서 2년 살다 도축장으로 팽개쳐지는 닭도 서너 마리 풀어 놓으시라.

자연이 좋다고, 신선한 공기가 좋다고, 맑은 물이 좋고, 새소리가 아름답다고 귀농하고 귀촌하는 사람들이시여. 아주 조금만이라도 저 생명들에게 마음을 열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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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 농부 ksb@kfem.or.kr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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