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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신의 단디시론] 대숲으로 이르는 길

기사승인 2019.05.20  09: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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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도 진주성도 대숲도 온전히 보전할 책임은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에 있다"

그게 실개천이건 은모래 반짝이는 시내이건 각성바지가 모여 이룬 마을이란 대개 강을 끼고 양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생겨난 것인지라 그걸 탈 없이 건너 오가는 것이 항상 난제였다. 강안의 폭에 따라 징검다리론 턱도 없고 사공을 두기에도 애매한 곳에선 마주 보는 강기슭에 말뚝 세워 철삿줄로 이어 건너는 장력선이 그나마 생강시런 수단이라. 표 받아 벼슬 얻겠다는 출마자들은 응당 “이 몸을 뽑아주시기만 하면 몇 달음에 성큼 건널 ‘다리’를 득달같이 놔 드리겠다!”가 일등 공약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놓는 시늉만 하다 내버려 둔 다리 명색은 ‘뼈다귀’만 건사한 채 꼴사납게 방치되다가 또 다가온 선거의 공약집에 오른다. 그 정도의 뻔뻔함은 희귀할 것도 없는 것이 가근방 동네의 풍토였다. 남강이사 그중 큰 강이라 벼슬아치라고 허투루 그런 약은 공약으로 눙칠 수야 없었으니 복판에 걸친 철구다리 하나로 버틴 세월이 이십 수년이었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그렇게 놓고 보면 진주의 변천사는 다리의 축조사라 좁혀 말해도 될 듯하다. 촉석루 나루터와 호탄동의 범골나루터, 칠암동의 ‘모디기뱃가’에서 나룻배로 강을 건너던 진주 사람들은 1912년에 이르러 시쳇말로 신박한 발명품을 접한다. 통행수요가 늘어나니 새로운 도강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나룻배를 굴비처럼 엮어 수십 척을 띄운 위에 판지를 걸친 부교의 출현이니 이른바 ‘배다리’다. 칠암동이나 강남동 망경동을 ‘배건네’로 통칭하게 된 연원이다.

철골로 다리가 세워진 것은 일제에 의해서다. 이 땅이 천년만년 지네들 식민지일 것이라 추호의 의심도 없었던지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방침에 이전 반대에 앞장서던 왜인 하나가 자살까지 했다. 그 극렬함을 달래기 위한 반대급부로 약조한 것이 숙원이었던 ‘다리’건설이었으며 그래서 진주 최초의 다리 ‘진주교’가 축조된다. 1927년의 일이다.

6.25 때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한 미군의 맹폭으로 진주가 거덜 나는데 다리 또한 직격탄을 맞아 상판이 주저앉았다. 나무로 얼기설기 덮은 상판으로 다급한 보급품을 실어 나르던 인민군이 퇴각하고 진주한 국군 공병대가 교각을 손보면서 아치형 철교로 만들었는데 그때부터 붙은 이름이 철구다리다. ‘진주교’나 ‘남강 다리’란 명칭이 있었으나 ‘철구다리’는 1982년 논개 가락지가 감긴 오늘날의 ‘진주교’가 건설될 때까지 버텨 근 이십만 시민의 무게를 견뎠다.

차선이나 있었던가? 차보다는 자전거가 많았고 더러 ‘달구지’를 꽁무니에 매단 조랑말이 또각거리며 지나다녔다. 걷다 난관에 서서 좌우로 둘러보면 펼쳐지노니 진경산수다. 동으로는 뒤벼리가 선학산 아랫도리를 감아 강을 돗골로 흘려보내고 서로는 멀리 평거 벌판이 아슴한데 오른쪽에 촉석루 서장대가 보이고 왼편으로 늘어선 대밭이 망진산으로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면 강변은 좌우가 모두 대나무 숲이었다. 왼쪽 강가로 난 길이라곤 칠암성당서 구부러져 천전학교를 끼고 가는 좁은 길이 진주 초입인 새벼리까지 이어졌다. 다리 오른편은 촉석루를 마주 보며 열병식을 벌이듯 대밭이 늘어서 있었다. 그 곁엔 마치 브라스밴드 노릇이나 하듯 ‘남강카바레’가 각을 잡고 앉았었다.

“남강, 산홍, 대숲을 사랑한 진주사람 이었다.

천생 시인이고자 했고 ‘가을문예’를 만들고 헌신했다.

진주신문 발행인이었으며 신 형평운동에 앞장섰다.“

지난여름 세상을 놓은 시인 박노정 형의 묘비에 나는 그렇게 대숲을 새겼다. 촉석루가 그리 묵묵히 섰듯이 ‘대숲’ 또한 연년세세 항상 거기 있으려니 했다.

진주시가 ‘남가람공원 정비사업’이란 이름으로 촉석루 맞은편 대나무 숲의 일부를 잘라내 산책로를 새로 내고 관람석을 만들 계획을 했나 보다. 진주 환경운동연합이 외치지 않았다면 까마득히 몰랐을 일이다. 가당찮다. 모처럼 그 길을 걸었다. 너무 많이 솎아 성긴 대밭서 바라보는 오월의 진주성이 푸르다.

합세한 시민단체가 모여 성명을 내고 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단 소식은 들었으나 후속 조치에 관한 진주시의 입장이 궁금해 시청의 담당부서에 물었다. “대밭 훼손은 없을 것이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업을 추진할 것”이란 대답이다. ‘유등축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남강에 울타릴 쳤던 전임의 과오를 설마 되풀이하랴 싶지만 일단 지켜볼 일이다. 진주 환경운동연합이 어려운 운동 환경 속에서도 행정 감시의 소임을 늦추지 않음에 경의를 표한다. 남강도 진주성도 대숲도 온전히 보전할 책임은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에 있음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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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신 칼럼니스트 ggigdager@gmail.com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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