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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시천면 덕산 장을 가다

기사승인 2019.06.10  10: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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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면은 지리산 천왕봉이 위치한 지역이다. 중산리, 내대계곡이 있으며 남명 조식 선생이 말년에 제자들을 길렀던 곳이기도 하다. 사리에는 조식 선생의 산천재가 있고 외공리는 1951년 2~3월 무렵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2008년과 2015년을 합쳐 700 여구의 유해를 발견하였다 한다.

비가 제법 주룩거리는 일요일, 장터 마실의 목적지는 시천면 덕산장이다. 덕산장은 4, 9장이다. 비오면 나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며 취향도 변한다. 못 먹던 음식을 먹게 되는 것처럼 예전에는 말도 섞지 않던 사람이랑 친교를 맺기도 하는 것처럼..

 

▲ 덕천장 (사진 = 이정옥)

삶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시간이 지나니 변할 수밖에 없는 것들의 범벅이다. 빗속의 지리산은 바라보기에 좋았다. 운무와 적당한 고요.

덕산은 산청군 시천면 면소재지에 있는 동네이다. 곶감으로 유명한 곳이다. 깊은 산을 품고 있는 특성상 약초시장이라는 간판이 장 입구에 서있고 가게 서넛도 보인다. 비가 꽤 내리니 번잡하지 않다. 장마실은 원래 설렘과 들뜸을 동반한다. 어른, 아이 구분 없다.

가능한 번잡한 것이 좋다. 번잡하지 않는 장, 파장의 쓸쓸함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만.

문득 아이 생각이 났다. 진주에는 개천(예술제)장이 있고 매년마다 똑같은 풍물시장이 열리는데 사람들한테 밀려다니는 그 번잡하고 시끄러움에 진저리를 치며 가지 않았더니 한 해는 큰애가 왜 개천장에 안가냐고 자기는 가고 싶다 주장하여 놀랐던 적이 있다.

아주 어린 애기들도 그런다. 방 안에 있는 것보다는 밖을 나가는 걸 좋아한다. 엄마에게 안겨서 밖으로 나와 콧바람을 쐬면 발을 움쭐움쭐거리며 좋아라 한다. 바람과 소리가 다른가 보더라.

 

▲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들과 막걸리 한잔 (사진 = 이정옥)

면단위 장이지만 덕산 장은 꽤 크다. 바다와는 거리가 멀지만 생선 난전도 제법 있다. 모종을 내는 때라 고구마, 부추 묘들, 약초 묘와 목화 모종까지 보인다. 서부경남 어느 장이든 요즘은 시장 전체에 지붕을 씌우고 간판을 새로 달아 정비를 해놓았다. 깨끗하게 차려진 시장 안 작은 가게에서 땡초전을 시켜놓고 막걸리를 돌렸다.

다음 목적지는 삼장면 내원사. 마실 모임의 한 회원이 자주 드나드는 절이라 공양도 해결하고 차도 얻어 마실 목적이다. 6.25 때 절은 불타고 탑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1961년, 내원사 주지 원경스님에 의해 복원된 절이다. 내원사 삼층석탑은 보물 제1113호, 657년(신라 태종무열왕 4년)에 세워진 탑이다. 비로자나불 좌상도 있다. 2016년, 국보 제233-1호로 지정되었다.

 

▲ (사진 = 이정옥)

이 불상은 원래 지리산 중턱 석남암 사지에 있었으나 현재 내원사로 옮겨 놓았다. 불상의 높이 108센티미터로 비바람에 마모돼 세부적인 조각의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조형미, 단아하고 은은한 미소가 눈길을 붙잡는다.

점심 공양을 하고 아이들까지 꽉 메운 다실에 앉아 차를 여러 잔 마셨다. 스님이 곧고 단정하시다. 사리로 내려와 마근담 문수암에 들러 주지로 계시는 기영스님께 차 공양을 받았다. 기영스님은 여성농민회 전국 회장을 하다가 병으로 급히 돌아가신 김덕윤 회장의 동생이다. 그 인연으로 일 년에 한두 번 들른다. 단정하고 고운 절이고 같이 가니 좋았다.

 

▲ (사진 = 이정옥)
▲ (사진 = 이정옥)

사리 산천재는 남명 조식 선생이 고향 창녕, 한양생활, 처가 김해 생활을 정리하고 말년에 조용히 들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경상좌도에 이황이 있으면 경상우도에는 조식이 있다 했다(궁성에서 내려다본 좌우 개념).

조식 선생은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끈질긴 부름이 있었다 한다. 그가 출사를 거부하고 은신한 것에 대해 후일 유홍준은 ‘남명의 이러한 은거와 불출사는 결코 죽림칠현 같은 은일자의 모습도 아니고 공자의 제자 안회와 같은 고고함의 경지도 아니었다. 그는 결코 세상을 외면해버린 은둔자가 아니었다. 그가 세상에 나아가지 않음은 시세가 발이나 씻고 있음이 낫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평하였다.

단성현감 사직 시 올린 '단성소' 또는 '을묘사직소'라 불리는 소의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중략) 전하의 정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해버렸습니다. 하늘의 뜻은 이미 가버렸고 인심도 떠났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백 년 동안이나 벌레가 속을 파먹고 진액도 다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언제 닥쳐올지 까마득히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까지 이른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중략) 자전(紫殿)께서 생각이 깊으시다고 해도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나이 어려 선왕의 고아일 뿐입니다. 천가지, 백가지나 되는 천재(天災), 억만 갈래의 인심을 대체 무엇으로 감당하고 무엇으로 수습하시렵니까?

글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듯한 기개와 충심을 가지고 있던 분이다 싶다.

조식 선생의 학문과 생애, 처세는 진주의 자랑, 전국 마당극놀이패 큰들의 “남명”으로 새롭게 살아났고 6월 29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하니 모두가 가서 볼 일이다.

 

▲ (사진 = 이정옥)

어쩌다 보니 장나들이에 절을 두 군데나 들렀다. 나는 엉터리 불교신자이지만 부처님이 주신, 생명과 생명의 연관성에 대한 가르침을 귀하고 고맙게 여긴다. 내원사 다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찬란히 쓰여 있었다.

자비 광명

 

나는 사랑입니다.

나는 사랑의 빛입니다.

나는 창조의 빛입니다.

나의 의식은 영원한 빛입니다.

나는 위대한 빛의 실체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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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 sinnaget12@hanmail.net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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