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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민의 먹고싸는 얘기] 몇 년 후, 우리는 바나나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기사승인 2019.06.24  10: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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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먹거리 역사 9-호모 사피엔스(4)

지금까지 인류 먹거리 확보 투쟁의 역사, 농업의 역사는 먹거리 다양성과 먹거리 유전자풀의 다양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의 역사였다.

내년에는 삼겹살 가격이 폭등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돼지고기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치사율 100%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중국 등 아시아로 확산되어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고 대처 방법은 오로지 살처분 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번지면 양돈업계는 초토화될 것이다. 현재는 이 바이러스에 취약한 돼지 품종만 사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에 저항할 수 있는 면역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품종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 황규민 약사

농업은 먹거리의 유전자풀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가는 과정이었다. 인간의 입맛에 맞고 생산량과 생산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재편집된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품종 개량과 육종 그리고 오늘날의 유전자 편집이 그 방법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유전자, 인간의 입맛에 맞는 산물을 생산하는 유전자만 남기고 나머지 유전자는 배제하고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환경적응이라는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유전자가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해 인위선택된 농작물과 가축의 유전자는 질병과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익에 맞게 품종개량, 육종, 유전자편집하여 유전자풀을 단순화시켜 놓았고, 대부분의 농가가 개량된 단일 품종으로 농사짓고 사육하므로, 기후가 변화거나 전염병이 돌면 국경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

멀리는 19세기 초 아일랜드 기근과 가까이는 조류독감과 구제역에 의한 닭과 오리 돼지의 살처분이 그러한 예이다. 아직 심각하게 와 닿지 않겠지만 바나나도 비슷한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바나나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생명은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자를 계속 섞어서 다양한 유전자풀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암수 양성을 발명하여 대처해 왔다. 이것이 생명진화 과정에서 암수 양성이 진화한 이유이다. 암수가 짝을 고르고 번식하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참으로 피곤하고 귀찮은 과정이다.

남녀의 연애와 밀당과 결혼이 그런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코끼리물범처럼 피 흘리는 사투를 벌이고, 수컷 사마귀처럼 교미 후 암컷에 잡아먹히기도 하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유전자풀을 다양화해서 변화된 환경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자연에서의 생존 경쟁력 확보 전략이다.

유대인이나 일본천황 친족처럼 선민의식이나 문화에 의해 자기민족끼리만 혼인하거나 족내혼을 하는 경우 유전병이나 기형아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은 유전자풀의 다양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재배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바나나는 땅속줄기 싹을 흙에 꽂아 자라게 하는 삽목으로 번식한다. 그래서 어미 유전자와 자손 유전자가 동일하다. 어미와 똑같은 형태와 맛을 지니는 바나나는 상업적으로 유리하지만 전염병이 퍼지면 꼼짝없이 멸종할 수밖에 없다. 바나나 기업들이 균일한 상품의 대량생산을 위해 바나나 품종을 '캐번디시'라는 품종으로 단일화했는데 이 종은 지금 '파나마병'이라는 바나나 전염병으로 급속히 죽어가고 있다. 인류는 아직 대체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체종을 빨리 찾지 못하면 인류는 앞으로 바나나를 먹지 못할 수도 있다. 단일 품종 재배는 이렇게 인류 식생활을 위협할 수도 있다.

감자는 열량이 높고 비타민이 풍부한 남아메리카 원산지 작물이다.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으로 넘어갔고 18세기 초반 무렵 유럽 전역에 보편화되었다. 19세기 초 아일랜드는 '럼퍼'라는 감자 품종을 주식으로 하고 있었다. 감자의 장점 중 하나는 땅에 심은 감자에서 바로 싹이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 이면에는 치명적 단점이 숨어 있었다.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는 유전적으로 동일했는데 이 품종에는 1845년 아일랜드에 발생한 감자 전염병의 원인 진균에 대한 면역 유전자가 없었다. 당시 아일랜드 감자는 완벽히 초토화 되었고 감자를 주식으로 하던 아일랜드인 중 100만 명 정도가 굶어 죽었다. 100만 명 정도는 영국이나 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비극의 배경에는,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일랜드를 착취하고 이웃 국가의 불행을 외면한 영국이 있었지만, 생물학적 생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전자풀이 단순한 단일 품종 재배가 있었다.

문화와 사상의 다양성이 그 사회를 건강하게 하듯 작물경작과 가축사육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도 다양한 종의 작물과 가축, 각각의 종중에서도 다양한 품종을 확보하여 유전자풀을 다양하게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아일랜드 기근과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고 인류 식량자원이 순식간에 초토화되는 것에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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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민 약사 pharmtop@hanmail.net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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