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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양파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농부의 땀과 정성

기사승인 2019.06.24  10: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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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제값받기 투쟁을 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감자와 양파 주문이 전과 같지 않다. 그래도 내가 가꾼 감자와 양파는 우리 먹을 것만 남기고 다 팔리곤 했는데 올해는 주문량이 한참 못 미친다. 감자도 풍작이고 양파 값도 폭락했다는 뉴스 때문인가 보다. 팔리고 남는 것은 저온창고에 보관해야겠다며 아내는 저온창고에 양파 쌓을 자리 마련하느라 바쁘다.

양파를 갈아엎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캐는 인건비조차 맞추기 어렵다고 한다. 양파상인이 함양군에 들어와 20kg들이 한 망을 오천오백 원에 흥정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는 만 원을 넘겼고, 지지난해는 만칠천 원까지 받았던 양파였다.

감자 값도 신통치 않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감자는 금자였다. 아이들 주먹만 한 감자 한 톨이 천 원을 웃돌았다. 감자를 수확할 때까지 감자 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올해는 달랐다. 감자 값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쳤다. 노지감자가 쏟아지면 양파 값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든다.

“아버지, 올해는 감자를 기계로 캐요. 감자 캐는 기계 임대해 주잖아요.” “기계로? 감자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도 고생 안 하고 쉽게 캘 수 있잖아요. 어머니 허리도 안 좋은데.” “아이구, 그런 말 마라. 캐는 재미도 있어야지.”

▲ 김석봉 농부

아침밥상머리에서 보름이와 나눈 대화였다. 아들놈은 제 마누라 편을 들어 기계로 캐는 것에 찬성, 아내는 미적지근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무엇이든 수확하는 재미는 농사의 백미였다. 탱글탱글 윤이 나는 가지를 따거나 무성한 호박덩굴 속에 숨은 부드러운 애호박을 따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였다.

싱그러운 파를 뽑아 겉잎을 손질했을 때 드러나는 그 새하얀 속살을 보면 신비롭기까지 했다. 흙을 털어냈을 때의 주황색 당근, 오동통한 콩깍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연둣빛 완두콩, 한 꺼풀 한 꺼풀 껍질을 까 들어가면 거기 수줍게 살결을 드러내는 알록달록 옥수수. 바구니 가득 담아 집으로 들어올 때의 발걸음은 개선문을 지나는 영웅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재미에 아내는 감자나 양파 캐는 일은 더없이 좋아했다. 감자나 양파를 캘 때면 이른 아침부터 전을 부치고, 달걀도 삶아 마치 나들이 나가는 아이처럼 들뜨곤 했다. 맨발로 밭이랑에 주저앉아 흙장난까지 하면서 감자를 캐는 아내를 볼 때는 내 기분도 한없이 맑아지곤 했다.

보름이가 감자를 기계로 캐자고 했을 때 흘끔 아내를 쳐다보았는데 아내는 퍽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감자는 캐기가 수월하고 얼마 심지 않았으니 손으로 캐자.”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보름이의 걱정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럼 가을에 고구마 캘 때는 꼭 기계 빌려와서 캐는 거예요.”

올해 너 마지기, 팔백 평 농사가 늘었지만 나는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기계로 한 것은 밭갈이가 전부였다. 밭갈이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백 평짜리 큰 밭은 트랙터를 불러서 썼고, 나머지 밭은 경운기를 빌려와 내가 직접 밭갈이를 마쳤다.

이후 모든 농사일은 내가 괭이 한 자루로 다 일궜다. 모든 밭뙈기 밭이랑을 만들었고, 비닐멀칭이 필요한 작물에는 비닐멀칭도 직접 했다. “관리기 하나 장만해. 무슨 일을 다 손으로 한다고 그래?” “건너 박샌께 맡겨요. 한 마지기에 사만 원이면 되드마.” 지나가는 이웃들은 나만 만나면 측은지심에 한 마디씩 던졌다.

내가 모든 일을 손으로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손으로 만든 밭이랑이 마음에 들었다. 내손으로 만든 밭이랑이 예뻤다. 내손으로 만든 밭이랑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내 손으로 만든 밭이랑이기에 씨앗을 묻을 때도 정성이 더했다. 내손으로 만든 밭이랑이기에 언제나 깨끗해야했다. 내손으로 만든 밭이랑이기에 거기 화학비료나 농약을 뿌릴 수가 없었다. 내손으로 만든 밭이랑이기에 거기 자라는 것들이 아름다웠다.

말이 쉬워 내손으로 한다는 거지 얼마나 힘든 노동이던가. 창이 뿌옇게 밝아오면 밭으로 나가 하염없이 괭이질을 했다. 뿌리작물 심을 밭은 이랑 간격을 좁게 하고 두둑은 살지게 만들었다. 열매작물 심을 밭은 이랑간격을 넓게 하고 두둑도 살지게 만들었다. 덩굴작물 심을 밭은 두둑을 넓적하고 편평하게 만들었다.

망종 무렵, 콩을 마지막으로 모든 밭이랑에 씨앗을 다 묻었다. 내 밭은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초벌 김매기가 끝난 나의 밭을 바라보는 이웃들은 혀를 내둘렀다. 어찌 손으로 그 많은 농사를 다하느냐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다. 내가 봐도 내 밭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양파와 마늘을 캤다. 평상에 모이는 두부박샌댁과 영남아지매와 교회 앞 성샌이 도와준다고 왔다. 아내는 가끔 출몰하는 지네는 아랑곳없이 맨발로 펑퍼짐 주저앉아 양파를 캔다. 무더운 날씨에 팥죽 같은 땀이 흘렀고, 보름이는 팥빙수를 쉴참으로 내와 더위를 식혀주었다.

양파는 좋았다. 예쁘게 커주었다. 잔챙이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마흔 망쯤으로 예상했는데 쉰다섯 망이나 캤다.

“이 양파는 약일세. 비료도 안 하고 농약도 안하고 어찌 이렇게 클 수가 있는가.” 타는 날씨에 얼굴이 벌겋게 단 성샌이 양파망을 추스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요. 휘그이 아부지는 기술자래요. 농사기술자.” 두부박샌댁이 말을 받았다. 양파밭 언저리엔 농약 없이 가꿀 수 없다는 브로콜리와 양배추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확실히 농사기술자였다. 어쩜 이렇게 예쁘고 실하게 양파를 가꿀 수 있단 말인가. 어쩜 이렇게 잘 여문 육쪽마늘을 두 포대씩이나 캐낼 수 있단 말인가.

지난해 가을 양파모종을 옮겨 심어두고 지금껏 이 밭에 오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폭설에 뒤덮였을 때는 혹시라도 냉해를 입지나 않을까, 봄비가 잦을 때는 혹시라도 습해를 보지나 않을까 밭두렁에 쪼그려 앉아 조바심을 댔었다. 몇 번이나 김매기를 했고, 마침내 이렇듯 아름다운 양파를 거두었다.

양파를 갈아엎는다고 한다. 양파를 갈아엎으면 보상금을 준다는 말도 들린다. 조금이라도 캐면 보상금을 못 받는다고 자기 먹을 것도 남기지 못하고 모조리 갈아엎어야 한단다. 참 가관이고 꼴불견이다. 뭐 이런 세상이 있나싶다.

어찌 지은 농사인데 갈아엎을 수 있는가. 어찌 함부로 갈아엎어버린단 말인가. 제 손으로 밭을 일구고, 하루도 빠짐없이 밭으로 나가 돌봐온 농부라면 잔챙이 하나라도 함부로 버릴 수 있겠는가.

우루과이라운드에 맞서 ‘우리 쌀 지키기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진주지역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었다. 농민단체는 강했고, 열성적이었다. 그해 가을 함께 하던 농민단체는 황금빛으로 물든 논을 갈아엎어버렸다. 저항의 모습이 이랬다.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고, 환경운동을 선택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이후 걸핏하면 갈아엎어버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배추밭 갈아엎는 일은 진저리나게 자주 봐온 모습이었다. 파 가격이 폭락하면 파밭을, 양배추 가격이 바닥을 치면 양배추밭을 갈아엎어버리곤 했다. 올해는 양파가 그 무지막지한 투쟁의 방법에 희생되었다.

해마다 양파를 백 마지기 넘게 심는 농사투기꾼들이 있다고 한다. 돈으로 돈 벌자고 농업을 하는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망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양파가격이 한두 해 폭락해도 한 해만 맞춰주면 거금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한다. 올해처럼 폭락하면 갈아엎어 기본비용을 건진다고도 한다. 그러니 밑질래야 밑질 수 없는 것이 그들 농사업자들 아닌가.

농정당국이란 곳을 나는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국은 농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업자들을 위해 만든 기구일 뿐이다. 나는 소농이요, 자작농이요, 자립농이기에 딱히 당국이 필요치도 않았다. 농사일로 면사무소도 농협도 한번 찾아간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일구며 살았다.

양파제값받기 투쟁을 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저 잔챙이 양파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농부의 땀과 정성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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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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