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 선생에게 드리는 졸문

약산 김원봉 선생은 내가 존경하는 분 가운데 최상위에 위치하시는 분이다. 칼 같은 외모의 장엄한 기품도 그렇거니와 평생을 항일 항제 투쟁으로 일관하신 분. 일신을 초개같이 여겨 풍찬노숙을 수십 년 즐겨 하신 분. 일제로 하여금 최고액의 현상금을 내걸게 하시고 아울러 못 잡아 안달하게 하신 분. 그 거지(?) 같았던 중경 임시정부와 흔쾌히 좌우합작을 이뤄내고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드디어 맞아 이제는 민주 조국을 건설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며 고향(남한)으로 돌아오신 분.

하지만 고향에서는 걸맞은 대접을 전혀 받지 못 하신 분. 단지 선생의 형제자매였다는 이유로 학살되거나 굶어죽거나 가난한 쪽방에서 오랜 세월 라면 반 봉지로 끼니를 때우게 하신 분.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해방조국과 통일조국, 그러나 어느 순간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을 엉망으로 구기셨던 김원봉 선생. 그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 했던 남한. 그러한 결과로 당시로서는 투쟁의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북으로 가실 수밖에 없었던 김원봉 선생. 남한이 그냥 내쫓다시피 한 그 분.

▲ 박흥준 상임고문

오척단구인 나와는 외모도 상반되는 분이었고 어려서부터 시작된 우유부단한 삶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나로서는 무엇 하나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는 분이어서 나는, 맞아죽을까 두려워 유신독재 반대투쟁 대열의 중간어름에서 어정쩡하게 젊음을 보냈던 나는, 해고될까 두려워 마지막까지 파업 동참을 저어했던 나는, 김원봉 선생을 일생의 사표(師表)로서 존경해 왔다. 아아 저런 분도 우리의 역사에 계셨구나. 그 분이 계셔서 내가 나임을 수시로 깨닫는구나. 그 분에 비하면 나의 일생은 너무도 초라하구나.

선생의 존함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국사시간이었다. 교과서에 분명 나왔었다. 물론 유신치하의 국정교과서였다. 김원봉의 의열단. 김구의 애국단. 예비고사에 붙으려면 그냥 달달 외우는 게 장땡이던 시절. 그 엄혹했던 73년에 함자를 처음 접했던 김원봉 선생은 그러나 훗날 알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건조하게 외우던 것과는 훨씬 다르게 그야말로 위대한 분이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분이 2019년 현충일, 드디어 21세기로 뒤늦게 소환됐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또 한 번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훈장을 주려고 밑자락을 깔았다느니, 대통령이 빨갱이 커밍아웃을 했다느니. 주사파가 우주를 장악했다느니. 독립운동은 김일성도 했는데 그러면 김일성에게도 훈장을 줘야 앞뒤가 맞다느니, 한 없이 모자라는 인간군상의 망언과 허언, 그리고 희언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내년 이맘때까지는 분명 계속된다. 장담한다. 다른 쓸만한 횟감이 등장하기 전까지 김원봉 선생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인구에 회자되고 우롱당하고 정쟁의 소재로 싼 값에 소비될 전망이다. 인간이 아닌, 아니 인간에 가까운 그들에 의해.

훈장은 공동체에 헌신하신 분들에게 수여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공동체의 최대치는 현재로서는 국가이다. 그러니까 훈장 수여권은 국가가 갖는다. 동일언어 동일문화 동일역사를 갖고 있는 한 무리의 인간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유지하며 개선해 나가는 데 힘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어려운 시기는 분명히 닥쳐오고 모두들 살기 바빠서 마음은 있으나 공동체 사수 전선에 나아가지 못 할 즈음 분연히 앞으로 뛰쳐나가 비겁하고 비굴하게 남아있던 우리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하신 분들. 그 분들에게 진 빚 한 조각을 뒤늦게 갚으려 국가가 수여하는 게 훈장이다.

하지만 훈장은 사실 별 거 아니다. 그냥 명예일 뿐. 공동체가 당신의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조그마한 징표일 뿐. 훈장은 안락한 하루의 삶을 보장하지도 않으며 후손들의 앞날도 별로 기약해 주지 않는다. 그저 당대에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식비 약간과 여름과 겨울에 떠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전기요금 감면과 공원 무료입장권과 무상으로 지급되는 월 몇 장의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불과하다. 하나 더 있다. 보훈신문인가 뭔가가 매월 우편으로 배달돼 가끔 휴지가 떨어졌을 때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하나 더 있다. 1년에 한 번씩 후손들에게 역시 우편으로 배달되는 현충일 추념식 초대장 한 장이 그것이다. 거기에 가면 땡볕에 점심은 주는가 몰라. 일생을 바쳐 나라에 헌신하고 일생을 바치느라 처자식들에게 소홀한 후과는 생각해 보니 이렇듯 잔혹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여기에 더해서 훈장을 주느니 마느니. 쯧쯔...

그런데... 여기에서 잠깐. 그 따위 훈장 그냥 줘버리면 안 되나. 좋은 일 아닌가? 김일성이 남한에서 훈장을 받는다면 휴전선 너머 북한에서는 과연 흐뭇해할까. 그동안 아꼈던 미사일 허공에 연일 쏘며 그냥 쌩 난리 부르스를 출 터인데. 남북대화, 북미대화가 또 한 번 늦춰질 건데. 자존심을 구긴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아예 상상이 안 되는데. 그러면 오랜 세월 보수를 자칭, 아니 참칭(僭稱)해 온 ‘망언 그들’을 포함한 우리가 드디어 결국 우위에 의연히 서는 일이 될 터인데. 나라의 정통성을 되찾아오는 일인데. 북으로 내쫓았던 김원봉 선생을 뒤늦게라도 다시 모셔오는 일인데. 그 거 좋은 일 아닌가?

개근하면 주는 상이 개근상이다. 그 전 해에 결석을 자주 했든 뭐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 그 다음 해에 학교를 거의 빼먹고 놀기만 했더라도 개근상이 취소되지도 않는다. 공부 잘 하면 주는 상은 우등상이다. 그 전 해에 꼴등을 했더라도 그 다음 해에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게을렀더라도 일단 한 번 받은 우등상은 취소되지 않는다. 아울러 육신이 늙은 뒤 뒤늦게 도착하는 상도 더러 있다. 행정착오가 있었든 뭐든. 어쨌든 상은 수여된다. 그렇게 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다. 훈장도 상의 범주에 포함되니 포훈과 보훈, 포상 역시 그런 이치에 따라야 한다.

그래도 무언가 찜찜하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김원봉 선생이 8월 종파투쟁 이전이나 와중에 숙청됐다면 김일성 우상화와도 관련 없고 독재정권과도 관련 없다고 봐야 한다. 내가 아는 한 그 당시 북한에서는 수많은 민주주의자들이 미제간첩 등등의 이런저런 명분딱지가 붙어 떼거리로 숙청당했다. 그렇다면 말뿐인 훈장. 개인에게는 명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훈장. 그냥 흔쾌히 드리자.

그 분들의 헌신에 힘입어 천민자본을 키웠고 그 자본이 인자한 얼굴로 던져주는 편린의 삶을 고맙게 누리고 있는 후손들이 한 조각 마음빚을 뒤늦게 갚는 일. 바로 훈장수여이다. 알고 보면 그게 싸게 먹힌다. 보훈의 달 끝자락에 서서 노을에 눈물짓다가 몇 자 졸문을 급히 지어 일생의 사표 김원봉 선생에게 훈장 대신 엎드려 바친다. 올해도 어김없이 쓸쓸하게 마감되고 있는 이 보훈의 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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