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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며느리와 함께한 여섯 해

기사승인 2019.07.08  09: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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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넉넉하게 살고 있는 보름이에게 시아비가 보내는 보상의 마음

서하의 말이 늘어간다. 엊그제만 해도 더듬더듬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는데 하루하루 달라진다. “말도 안 된다. 흥!”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뒤 저녁밥상머리에서 이런저런 대화 끝에 서하가 불쑥 뱉은 말이다. 식구들이 빵 터졌다. 아내는 배를 잡고 뒹굴고 나도 입안 가득한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보름이와 휘근이도 자지러졌다. 특히 ‘흥!’이라는 말을 하면서 보인 서하의 표정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배워온 듯하다. 서하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다.

얼마 전 보름이와 휘근이 결혼기념일이었다. 벌써 여섯 해가 흘렀다. 예식장은 서울이었다. 제법 강한 더위가 찾아온 그날, 여름양복 차려입고 관광버스를 탔다. 흩어져 사는 일가붙이들과 주변지역 지인들이 하객으로 자처하여 전세버스를 냈었다. 정해진 절차대로 예식은 진행됐고, 마지막으로 폐백실에 앉아 보름이의 큰절을 받았다. 마침내 우리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살짝만 건드려도 눈두덩이 흠뻑 젖을 것 같았다.

▲ 김석봉 농부

어느 모로 보나 아들에게 보름이는 과분한 처자였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시가였다. 든든한 배경도 넉넉한 살림살이도 갖추지 못한 어버이였고, 게으르고 어리버리한 아들이었다. 아들만 보면 언제나 ‘각박한 세상, 저래서 어찌 사나.’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는 아들은 둘이 먹고 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할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있었다. 변변치 못한 농사와 남루한 집으로 민박을 치는 어버이는 며느리와 아들이 살 방 한 칸 제대로 장만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산골에 시집와서 함께 여섯 해를 살았다. 보름이는 슬기롭게 잘 살아주었다. 때로 행복에 겨워하면서, 가끔씩 한숨을 쉬기도 하면서.

바로 엊그제였다. “카페에도 점심으로 먹을 요기꺼리 팔지요?” 아침밥상을 물리고 숭늉을 마시며 민박 온 손님이 보름이께 물었다. “뭐, 토스트에 잼 발라먹는 거랑 텃밭채소샐러드국수랑 살구 케이크 정도는 있어요.” “그럼 됐네. 오늘은 카페에서 해먹도 타고 뒹굴뒹굴하면서 쉴래요.” “이 좋은 계절에 지리산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다니세요. 맛있는 것도 좀 드셔보시고.”

보름이는 주변에 있는 음식점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칠선산장 닭도리탕이나 닭백숙도 맛있다하고, 금계식육식당 흑돼지구이도 좋다하고, 살래국수집도 괜찮다하고, 인월에 가면 어탕집과 뼈다귀탕집과 장터순대국집도 빼놓지 않고 소개해 준다. 곁에서 식탁 위에 놓인 복숭아조각을 드는데 풋~ 웃음이 났다. 푼수도 아니고, 자기 카페에서 사먹겠다는데 굳이 저런 말을 다하나싶었다. 하루 서너너댓 테이블 채우기도 벅찬 산골마을 구석진 곳에 자리한 카페 아닌가. 저 가족들이 카페에 들면 그래도 꽤 큰 손님인 셈이었다.

“그럴까요?” “그러세요. 성삼재까지 차로 가서 노고단도 올라보시고.” 참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보름이를 힐끔 쳐다보는데 놀랍게도 넉넉하고 든든한 모습이었다.

보름이 카페는 잘 될 턱이 없었다. 읍내에서 넘어오는 고갯마루에 홍보현수막 하나 붙이래도 흘려들었고, 하다못해 마을 입구에라도 눈에 띄게 표식을 하면 좋겠다고 해도 빙긋 웃고 말았다. 기껏 지리산 둘레길 마을을 지나는 들머리에 합판조각으로 만든 안내판 두 개가 전부였다.

둘레길 손님이 들면 얼마나 들겠는가. 지리산 둘레길도 전과 같지 않아 여행자가 많이 줄었다. 산악회에서 관광버스 타고 와 줄지어 걷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걷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지나갈 뿐이었다. 어쩌다 텔레비전 연예프로그램에 지리산 둘레길이 소개되면 서너 주 반짝 여행자가 늘기도 하지만 그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 이 타르트 맛 좀 보시고 평가해 주세요.” 밭일을 하고 돌아오는 나를 보름이가 카페로 불러들였다. 카페엔 아내도 자리 잡고 앉아 무엇인가 낯선 음식을 앞에 놓고 있었다. “이게 뭔데?” “타르트요. 타르트. 새카만 이것은 오디타르트고 빨간 것은 산딸기타르트요. 제가 만들었어요.” “타르트는 또 뭐야?” “봐라. 아버지가 저렇다. 날 데리고 카페 같은데 한번 가본 적이 있어야지.”

순대국밥이나 선술집 들락거리느라 워낙 이런 음식은 대하지 못하며 살았었다. 나는 타르트 앞에서 멀뚱거렸다. 아내는 눈을 흘기며 빈정거렸고, 보름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우리 카페에서 팔아보려고 만든 거예요. 일단 맛을 봐주세요.”

타르트라는 것이 예쁘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내 앞에 놓였다. 포크를 집어 들고 한 조각 입에 넣는데 아,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싶었다. 우걱우걱 두 개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어때요? 맛이?” “좋다! 좋아! 그런데 누가 먹으러 오냐? 여기까지?” 이 대목에 이르면 아내나 보름이도 말문을 닫았다.

참 한심한 시아비였을 것이었다. 열심히 정성껏 만든 새로운 음식 앞에서 한다는 말이 이러하니 맥이 탁 풀릴 것이었다. 이런 시아비와 함께 여섯 해를 살았다. 카페에 손님이 많이 들기를 바라는 욕심쟁이 시아비를 보면서 여섯 해를 살았다.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어떻게든 팔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시아비와 여섯 해를 살았다. 입만 벙긋하면 ‘손님은 좀 있었냐?’는 말을 내뱉는 시아비와 여섯 해를 살아주었다.

밭일을 하다가도 건너편 둘레길에 여행자가 지나갈라치면 밭두렁에 쪼그려 앉아 그들이 카페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뒷모습을 바라보았었다. 그들이 멀리 카페 앞에 이르러 그냥 지나치면 한정 없이 서운했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보이면 다행이다 싶었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면 얼른 들어가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다. 이 마음이 어찌 욕심에서 비롯되었겠는가.

열심히 살고, 선하게 살고, 마음 넉넉하게 살고 있는 보름이에게 시아비가 보내는 보상의 마음이겠지.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보름이에게 시아비가 보내는 응원의 마음이겠지. 불편한 내색도 없이,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여기까지 와준 보름이에게 시아비가 보내는 위로와 격려와 찬사의 마음이겠지.

그렇다. 우리와 함께 살아준 지난 여섯 해를 돌아보면 보름이에게 보내는 이 마음이 결코 집착이나 욕심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도 많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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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 농부 ksb@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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