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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의 중딩관찰기 30] 자사고를 몰라도 괜찮아

기사승인 2019.07.15  15: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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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웃음이 나의 햇살이니까

뉴스에서 자사고 재지정 평가 탈락에 관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물었다. “엄마, 자사고가 뭐에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공부 잘 하는 애들이 가는 학교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근데 왜 평가를 해요?” “음, 그게 있잖아, 그러니까..” 헤매고 있을 때 아들이 또 물었다. “진주에도 자사고가 있어요?” “어? 진주에? 과학고 있지 않아?” “그건 특목고 아니에요?” 아, 그렇구나. 특목고는 자사고랑 다르지. 나는 서둘러 리모컨을 돌리는 것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순간 며칠 전 보았던 신문 만평이 떠올랐다. 자사고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엄마와 고등학생 딸이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장면. 엄마는 ‘돈이 없어서 미안해’, 딸은 ‘공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풍선을 달고 있었다. 내게 자사고는 그 만화 한 컷이었다. 돈이 없거나 공부를 못하면 가지 못하는 학교.

▲ 재인 초보엄마

내가 이토록 자사고에 깜깜무식인 이유는, 그 두 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평범한 성적에 뭣하나 내세울 것 없는 집안 환경. 초등학교 다음은 중학교, 고등학교. 다들 그렇게 가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도 무슨 자사고, 특목고, 특성화고, 자율고까지. 세상이 이토록 변해가는 동안 나는 뭘 하고 살았나. 하지만 고리타분한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정신 차리자. 여기는 대한민국. 나는 중3 엄마.

엊그제 본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수직하강한 아들은 친구가 다닌다는 학원을 다녀보겠다고 했다. 집에서 인터넷 강의만으로 공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성적이 모든 걸 말해주는 더러운 세상.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토요일 아침. 아들과 나란히 우산을 쓰고 새로운 학원을 찾아갔다. 원장님과 약속한 시간이 오전 9시 30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던 녀석인데 그날은 깨우자 바로 일어났다. 밥도 차려주는 대로 후딱 먹어치우고 외출 준비 완료. 드디어 절박함이 생긴 건가. 잠시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친구와 10시에 PC방을 갈 예정이란다. “학원은 한 10분 얘기하면 끝나겠죠?”

그렇게 우리는 낯선 원장님과 마주 앉았다. 원장님은 그 자리에서만 20년 넘게 입시학원을 운영하셨다며 자신의 교육철학과 최신 입시 트렌드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셨다. 일반계 고등학교를 목표로 한다면 정시보다는 수시를 노리는 편이 유리한데, 그러기 위해선 내신이 중요하다고. 성적 못지않게 봉사활동이나 교내 활동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자소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다고. 그래서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필수라고. 여기서 ‘아빠’의 존재가 빠져있는 건, 엄마가 여러 정보를 가져오는데 아빠까지 나서면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으니 아빠는 그저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고.

정보력이 제로에 가까운 엄마 입장에서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다. 묵묵히 원장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가 슬쩍 옆을 보았다. 아들이 잔뜩 굳은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팔짱을 저렇게 안쓰럽게 낄 수도 있나. 양팔로 어깨 아래를 꼭 붙들고 있는 것이 흡사 제 몸을 안아주는 것처럼 보였다. 속에서 애처로운 마음이 일었다. 공부 못하는 게 무슨 잘못도 아닌데. 너는 반성문 쓰는 사람처럼 풀죽은 얼굴로 ‘네, 네’만 하고 있구나. 나는 손을 뻗어 슬며시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앙상한 손바닥에 땀이 고여 있었다. 아들의 손등 위로 내 손바닥을 겹쳐 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토닥토닥 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말없는 말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때 아들의 전화벨이 울렸다. 녀석이 잠시 나가 전화를 받는 동안 나는 원장님께 말했다. “다른 것보다 아이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으며 아들과 학원 문을 나섰다. 그새 비가 그쳤다. 나는 걱정과 기대, 측은함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 건널목 앞에 섰을 때, 녀석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마치 비갠 하늘처럼 해사해진 얼굴. “엄마, 그 원장님 좀 괜찮은 거 같죠? 어? 친구랑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15분이나 지났네.” “그래?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괜찮아요, 아까 통화했어요. 지금 가면 돼요. 엄마 먼저 집에 가실래요?” “그럴까. 조심해서 잘 놀다 와.” “네, 엄마도 조심해서 가세요!”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아들이 겅중겅중 앞으로 뛰어갔다. 웃고 있다는 게 뒤에서도 보였다. 나는 우산에 묻은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며 집으로 걸었다. 다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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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초보엄마 lita23@hanmail.net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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