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선례 없고 모호하다”, 민족문제연구소 “공신력 있는 진주시가 안내판 다시 세워야”

뒤벼리에 이름이 음각된 민족반역자들의 악행을 알리기 위해 1999년 12월28일 시민들이 세운 ‘민족반역자 안내판’이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단디뉴스가 이같은 내용의 보도를 낸 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와 진주시가 면담을 갖기도 했지만, 훼손된 안내판 관리와 새로운 안내판 설치 문제에 두 단체가 합의하지 못하면서 사태는 장기화되고 있다.

 

▲ 훼손된 채 뒤벼리 벽면에 기울여져 방치돼 있는 반민족행위자 안내판

뒤벼리 아래에 설치된 ‘민족반역자 안내판'은 락커 등으로 훼손된 채 1년여 째 방치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이같은 상황을 발견하고 안내판 훼손사건을 경찰에 수사의뢰하고, 진주시에 안내판 관리주체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고, 진주시는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1일 “진주시는 이 문제를 풀어갈 의지가 없다는 것 같다. 다른 자치단체를 보더라도 이같은 안내판을 자치단체가 직접 처리하고 관리하는 사례가 없다는 건데,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의지가 없어 둘러대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친일 민족 반역자들의 행위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안내판이 필요하고, 안내판이 훼손되는 사건을 막으려면 공신력 있는 진주시가 새로운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진주시 관계자는 “친일단체 등과 관련된 업무를 직접적으로 맡고 있는 부서가 없고, 시에서 안내판을 만든 것도 아니라 모호한 상황”이라며 “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안내판을 세운 만큼 그 정신을 기리고 싶다고 해 자치단체보다는 다른 단체를 연결해주는 게 맞다고 봤다. 진주문화원에 상황을 이야기해뒀다. 이후 민족문제연구소 측이 연락을 해온 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진주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주시 관계자는 이어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뒤벼리 안내판보다 진주성 벽면에 새겨진 음각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했고, 이 건과는 관련해서는 문화재청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며 공문을 보내보라고 안내해줬다”고 덧붙였다. 민족연구소 측는 의암바위 내려가는 길 성벽에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의 이름이 음각돼 있어 그의 친일행적을 지적하는 안내판을 세우길 바랐지만, 시는 문화재청 허가 없이 사적지에 안내판을 세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적지 내에 안내판을 세우려면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 반민족행위자 안내판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돼 있다.

한편 진주성 벽면에 음각돼 있는 이지용과 뒤벼리 벽면에 음각돼 있는 이재현, 이재각, 성기운은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이들 가운데 세 사람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이지용은 을사오적 가운데 한 사람으로 흥선대원군의 형인 흥인군 이최응의 손자이다. 1910년 일진회의 합병성명서에 찬성을 표하고 지지여론 확산을 위해 조직된 국민동지찬성회 고문을 맡았다. 1911년 은사공채 10만원을 받았으며,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선 귀족들이 일왕의 성은에 감읍하고 ‘사회의 모범’이 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1911년 조직한 조선귀족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이재각은 고종과 같은 항렬의 조선왕실 종친으로 합병 직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다. 성기운도 합병 직후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이들 둘은 1915년 조선총독부 주도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시정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물산공진회 경성협찬회의 회원으로 기부금을 냈다. 이는 이지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들은 1910년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 일왕에게 사은의 뜻을 표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조직, 일본을 다녀온 조선귀족일본관광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재현과 성기운은 조선말 일어난 애국의병들을 회유하고 토벌한 주동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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