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같이 마실모임] 이 칠 장이 서는 함양으로 나들이 가다

이 칠 장이 서는 함양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휴가철, 비 예보가 있었지만 참여자가 열 명이 넘었다. 비오는 날 마실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거기다 날이 뜨거운 때니 비가 오면 오히려 다니기에 수월하다. 함양 읍장 구경을 하고 상림을 들렀다가 지리산 오도재를 들를 것이다. 비오는 날의 상림공원을 기대한다.

읍장답게 규모 있게 장이 섰다. 때를 맞아 나온 물외, 고구마줄기, 콩잎, 여주, 다슬기 등이 눈을 즐겁게 하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었다. “아, 나 콩잎김치 진짜 좋아하는데.. 우리 엄마가 해주셨는데..” “저 다슬기 보래, 푹 삶아 국물 먹으면 간에 그리 좋다며?”

 

▲ 수북히 쌓여있는 콩잎(사진=이정옥)
▲ 다슬기(사진=이정옥)

장을 돌다가 여리디 여린 잔파를 다듬고 있는 아지매를 만났다. 나는, 며칠 전 텃밭에서 빼낸 잔파를 손을 못 보아 결국 밭고랑 수북한 풀더미 위에 깔아 버렸다. 내 손은 무엇을 한다고 그것을 버렸고 저 손은 무슨 연유로 저렇게 새까매져 까고 있는가? 깨끗이 다듬어진 저 잔파는 누군가의 손을 거쳐 입으로 들어가겠지. 한 두 번이라도 저것들을 까본 사람이 그 노동의 가치까지 담아 돈을 치르고 사가기를 바래본다.

 

▲ 잔파 다듬는 아지매(사진=이정옥)

올 가을이 끝나면 영영 문을 닫을 작정이라는 철물점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났다. 직접 칼을 만들어오셨는데 전국에서 식칼을 사러 온다 하였다. 그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여럿이 칼을 구입하였다.

 

▲ 철물점 앞 풍경(사진=이정옥)

어탕 국수 한 그릇들을 하고 가까이에 있는 상림으로 향했다.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이다. 가장 오래되고 보존이 잘 된 인공숲으로 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령군(함양군의 옛 명칭)의 태수로 있으면서 백성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당시에는 위천강이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었기에 홍수가 빈번하였다 한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강물을 돌리고 둑 옆에 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처음에는 대관림으로 불렀으나 이후 큰 홍수가 나서 중간부분이 유실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졌다 한다. 취락지 형성으로 하림은 훼손되었고 상림만이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그 이름을 상림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상림 숲길을 걷고 있는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들(사진=이정옥)

날은 흐리고 숲은 조용했다. 몇 사람은 맨발로 걸었다. 나도 같이 걸어 보았다.

 

▲ 맨날로 상림을 걷는 진주같이 마실모임 회원들(사진=이정옥)

상림은 연꽃으로도 유명한데 어찌된 일인 지 꽃은 거의 지고 없고 그 자리에 연밥이 맺혀 있다.

 

▲ 연밥이 맺혀 있다(사진=남여경)

편안함을 준 숲길 산책을 끝내고 우리는 오도재(휴천면)로 향했다. 옛날 내륙지방 사람들이 남쪽해안 사람들과의 물물교환을 위하여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변강쇠, 옹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고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최단거리 고개이다.

오도재는 안개에 가득 차 있었다.

오도(悟道)재

서산대사, 벽송대사, 사명대사 등이 지리산 가는 이 고개길을 오가며 깨달음을 얻었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만 그 깊은 뜻 끄트머리에도 가닿지 못하고 휴게소 입구 탁자에 앉아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만 부어 마시다 헤어진 게 못내 아쉽다.

 

▲ 오도재에서 바라본 안갯속 지리산(사진=이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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