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이런 침잠하는 음악들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 음반,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 O.S.T' (사진 = 유근종)

1993년 제대하고 진주 시내 어느 레코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그 시절 도동에 살았는데 근무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다 당시 단골 비디오가게에서 눈에 띄는 비디오 포스터를 하나 발견했다. 바로 프랑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의 포스터였다.

이 포스터가 눈길을 끈 가장 큰 이유는 은근히 야한 사진이었기 때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영화를 보고는 그 음악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사운드트랙 음반을 주문해서 사버렸다. 그 당시 17,000원이란 거금을 주고 샀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아는 바흐의 이전 시대에 활동한 음악가들이다. 영화는 쌩뜨 꼴롱브(Sainte Colombe)와 그의 제자 마렝 마래(Marin Marais)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 받은 쌩뜨 꼴롱브는 두 딸을 유일한 제자로 삼으며 궁정에서 제의하는 모든 부귀영화를 거절, 자연 속에 오두막을 짓고 생활한다. 비사교적이며 어두운 성격인 그는 비올이란 악기만을 다루며 지내게 된다.

난 첼로 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음악에 빨리 빠져들었는데 첼로와는 또 다른 아주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난 처음엔 첼로의 할아버지쯤 되는 악기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엄연히 다른 악기였다. 소리가 크게 나지 않는 것 때문에 첼로를 비롯한 바이올린 족 악기에 밀려 지금은 시대악기 연주에서나 볼 수 있지만 고풍스런 소리를 내는 이 비올족 악기의 음색은 정말 매력적이다.

바이올린족 악기가 음역에 따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있듯이 비올족도 세 종류의 음역을 담당하는 악기가 있다. 높은 음역의 악기인 트레블 비올(Treble viol)과 중간 음역의 테너 비올(Tenor viol), 낮은 음역의 베이스 비올(Bass viol)이 가장 많이 연주된다.

이 영화에선 거의 대부분의 음악이 베이스 비올로 연주된다. 베이스 비올은 흔히,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라 부른다. ‘감바’란 이탈리아어로 ‘다리’란 뜻인데 다리 사이에 끼워서 연주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비올의 음색에 한 번 빠져들면 그 부드러운 소리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그냥 고급 생맥주의 그 부드러운 거품 정도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이 음반에 수록된 것들 중 “회한의 무덤”, “눈물” 그리고 몽상가 등이 있는데 제목만으로도 음악 자체가 사색적일 거란 느낌까지 든다. 딱 비올라 다 감바에 맞는 곡들이다 싶다.

이 음반에 수록된 음악 중 가장 유명한 곡은 “La folia”란 곡인데 마렝 마래의 곡이다. 라 폴리아는 바로크 시대 이베리아 반도에서 유행했던 격렬한 춤곡을 의미하는데 그 시대 유명한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작곡했던 스타일의 곡이다. 심지어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도 라 폴리아를 썼다.

라 폴리아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아르칸젤로 코렐리란 작곡가의 곡인데 처음 듣는 사람들은 마렝 마래의 곡인가 생각할 정도로 비슷하다. 제미니아니란 작곡가와 비발디의 곡은 코렐리의 곡을 변주했을 만큼 라 폴리아의 인기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제 정말 뜨거운 여름이 거의 끝나가는 지도 모르겠다. 입추도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가을에 들어선 셈이다.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이런 침잠하는 음악들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유튜브에서 La folia를 검색 한 번 해본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조르디 사발이 연주한 라 폴리아 모음집도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 O.S.T – Jordi Savall – Alia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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