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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의 산촌일기] 당선작이 가작으로 바뀌다.

기사승인 2019.10.07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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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상한 아들, 손녀가 살아갈 세상은 좀 더..

이른 새벽, 잠을 깨니 빗소리가 들린다. 서늘해진 공기, 마당에 내려서니 빗방울이 무겁고 차갑다. 손전등을 켜고 뒷마당으로 가 한뎃잠을 자는 닭을 닭장 안으로 들였다. 비를 맞으면 저체온으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여름 알 수 없을 동물들의 습격을 받아 많은 닭들이 물려 죽었는데 그날 이후 살아남은 닭들은 집에 들어가기를 꺼려 뒷마당 장작더미 위에서 한뎃잠을 잤다. 빗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사방은 적막하고, 골목 가로등 불빛이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가자마자 빠르게 어둠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보였다. 따지고 보면 세상은 온통 어둠인 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아들은 퍽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술제 백일장 문제로 꽤 떠들썩한 엊그제였다. 언론에선 취재차 연락이 이어졌고, 백일장 주최 측에선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 김석봉 농부

어제 아침, 그 도시의 문단을 주름잡는 늙은 시인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인 나와의 관계를 강조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내가 운영했던 음식점에 자주 찾아가기도 했었다는 사적 인연을 들먹였다고 했다. 오후엔 주최 측에서 직접 아들을 찾아와 사태확산을 막아달라고 부탁까지 하더라는 거였다.

당선작이 가작으로 뒤바뀌는 석연치 않은 일을 겪은 아들이었다. 마음이 많이 상할 일이었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가작상금을 더 얹어 주겠다는 말을 관계자로부터 들은 아들은 몹시 흥분해있었다. 돈으로 회유하려는 나쁜 모습에 부아가 난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무언가 구린내가 났고, 당선작이 뒤바뀐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나는 운이 없나봐.” 사흘이 되던 어제, 아들은 이 말을 툭 뱉었다. 어제 저녁, 우리 가족은 모처럼 읍내로 나갔다. “아버지, 오늘 저녁 밥값은 우리가 낼게요.” 보름이의 시원한 목소리였다. “주말에 카페 돈 많이 벌었나보네.” 아내의 목소리도 가벼웠다.

“나 예술제 그 가작상 안 받을라고.” 아들의 목소리도 가벼웠다. 우리는 침묵했다. 아들은 수상거부를 결심한 듯했다. 꼬장을 부리려거나 투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비춰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세상은 항상 그러했으므로.

지방 소도시 예술제 상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마음 상해야하나 싶다가도 한국 문단의 모습이 또한 이와 같으니 쉽게 가라앉지 않는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상한 마음이 쉽게 치유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아들도 나도 쉽게 잊을 수 있을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읍내 외진 곳에 자리 잡은 낙지전문식당은 사람들이 꽤 붐볐다. 서하가 특히 낙지를 좋아해 낙지집으로 든 것이었다. 서하가 살아갈 세상이나마 좋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가을비가 내리는 장날. 읍내 장에 나가 선술집에서 요 며칠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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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봉 농부 ksb@kfem.or.kr

<저작권자 © 단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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