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랑과 관심이었다.

주말에 남해의 한 사찰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를 했다. 중간고사를 마치자마자 곧장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중3 아들에게 약간의 쉼표를 주고 싶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부부와 16살 사춘기 아들과 천진난만 10살 딸아이. 우리에게 배정된 방에는 이불과 베개가 4개씩, 그리고 지난 여름 부지런히 공덕을 쌓았을 선풍기 1대가 놓여있었다. 무엇보다 TV가 없다는 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템플스테이라면 이 정도 부재는 기본이지. 도착했을 때 스님이 일정표를 보여주시면서 되도록 묵언수행을 시도해보라고 하셨다. 사실 그 미션은 식은 죽 먹기였다. TV는 없어도 스마트폰이 이리 잘 터지는데. 도시에서 늘 하던 게임? 무료한 산사에선 백만 배 더 재미있었다. 무서운 집중력이 발휘되었다.

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도착한 날 저녁을 먹고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대화의 시간. 이후 짧은 명상을 하고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4시 기상, 4시 30분 새벽 예불. 6시 아침식사, 10시에 오전 예불, 그리고 11시 점심공양 후 귀가.

▲ 재인 초보엄마

첫날 스님과 대화시간. 템플스테이 참가 인원은 모두 11명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속에서 조심스레 찻잔을 받아들었다. 쪼르륵 찻물 따르는 소리만 가득한 공간. 딸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스님도 라면 좋아하세요? 왜 스님은 머리카락이 짧아요? 스님도 화를 내봤어요? 스님도 결혼할 수 있어요?” 본인 앞에 놓인 찻잔을 응시하며 말을 삼키던 어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는 열쇠 같았다. 굳은 분위기를 단번에 푸는 열쇠. 스님도 근엄한 표정을 지우고 아이를 따라 웃어주셨다. 그리곤 차담이 끝날 무렵 말씀하셨다. “아이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나 봐요. 구김살이 없네요.”

다음 날 새벽 4시. 새벽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잤지만 눈뜨기가 힘들었다. 딸아이가 먼저 일어나 우리 부부를 깨웠다. “스님 만나러 가야지~” 약간 달뜬 목소리. 새벽예불이 놀러가는 건 줄 알고 있나? 반면 아들은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힌다며 킁킁 거리다가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다. 더 잔다고 했다. 아들에게 이불을 고루 덮어주고 우리 셋은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선뜩한 새벽 공기가 실크 스카프처럼 피부에 착 감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 쪽으로 오시더니 딸아이에게 “니가 새벽에 예불 드린 아이냐?” 물어보셨다. “나이도 어린데 절을 어찌나 잘하던지, 보는 내가 다 기분이 좋더라” 지그시 바라보는 할아버지 입가에 둥글게 주름이 잡혔다. 딸아이가 쑥쓰러운 듯 웃었다. 우리는 말없이 된장국의 두부를 건져먹었다.

짧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마음이 뿌듯하였다. 간만에 아이들과 바람직한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 노릇 좀 했다는 흡족함이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런데 곧 사달이 났다. 신문 기사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데 딸아이가 불쑥 말했다. “나도 저번에 동네 슈퍼 가다가 납치당할 뻔 했어. 어떤 아저씨가 따라왔어.”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 그래서?” “그 아저씨가 뒤에서 따라오는데 너무 무서웠어.” 그때 아들이 말했다. “야, 웃기지 마. 그 아저씨는 슈퍼에 뭐 사러 가는데 너 혼자 오바 치는 거 다 알고 있거든. 너 관종이잖아, 관종.” (‘관종’은 ‘관심 종자’의 줄임말. 남들에게 관심 받고 싶어서 일부러 튀는 행동이나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을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아들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너는 동생한테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스님이 뭐랬어? 생각이 현실이 된다고 했잖아. 좋은 생각, 좋은 말을 해야 바른 길로 간다고!” 아들도 지지 않았다. “엄마가 자꾸 편들어 주니까 쟤 버릇이 나빠지는 거예요. 스님이 말조심 하라고 했는데, 자기가 먼저 납치 어쩌고. 저게 다 유튜브 때문이라니까요. 무조건 따라하면 되는 줄 알고.” 불똥이 엉뚱하게 유튜브로 날아갔다. “유튜브는 너도 많이 보잖아!” 그러자 아들은 수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나는 5학년 때 겨우 폰 샀는데 쟤는 2학년 때 바로 사줬잖아요. 기종도 나보다 훨씬 좋은 거.” 이게 뭔 소린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을 여태 담아두고 있었다니. 뒤끝 작렬 같으니라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순간 아들의 마음이 보였다. 지난 1박 2일 동안 6살 어린 동생이 주변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동안 아들은?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아무튼 거의 무표정이었다. 그냥 조용히 있나보다 했는데 너도 관심이 받고 싶었구나. 그렇게 눌려 있던 진심이 뒤늦게 폭발했구나. 케케묵은 스마트폰 얘기를 다시 꺼낼 정도로.

녀석의 해묵은 불만에 주저리주저리 답을 하다가 말을 거두었다. 소용없다 싶었다. 어차피 본질은 스마트폰이 아니니까. 결국 사랑과 관심이었다. 사람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10살이나 16살, 심지어 100살이 넘어도 마찬가지 일텐데. 나는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혹시라도 사춘기 아들의 진지함을 마주하기보다 초딩 딸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게 더 쉽다고 생각했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에휴. 엄마 노릇 제대로 하려면 한참 멀었네.

차안에 침묵이 흘렀다. 묵언수행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이야. 도로에는 차가 제법 밀렸다. 사방 축제 기간이라 그런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앞자리에 앉은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아들, 엄마 폰으로 음악 들을까? 요즘 니가 좋은 노래 많이 알더라.” 아들이 유튜브를 찾아서 한곡 틀었다. ‘♬Sweet home Alabama~’ 경쾌한 리듬을 따라 녀석의 어깨가 조금 들썩였다. “되게 신난다. 역시 우리 아들 취향 인정. 이런 곡을 어떻게 알았어? 누구 노랜데?” “이거는요, 70년대 미국 남부에서 나온 건데...” 처음 들어보는 가수였지만 몰라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스위트 홈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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