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가 현 정권에 남긴 과제

1. 지난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약 2개월여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은 이른바 ‘조국 사태’가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직에 임명된 뒤 35일이 지난 시점이다. 조국을 둘러싼 집권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은 이 기간 동안 정치, 경제, 안보 등 한국 사회 모든 분야의 이슈들을 빨아들인 ‘메가톤급 블랙홀’이었다.

조국을 교두보로 삼아 검찰개혁을 추진하려는 집권세력-대통령 문재인과 민주당 등 당정청-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주로 조국의 가족과 지인들을 약한 고리로 반격을 전개한 자유한국당(이하 자한당)과 일부 야당 등 반대세력은 첨예하게 맞붙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의 대상인 검찰은 새로 임명된 검찰총장 윤석열을 필두로 청문회를 앞두고 조국과 관련된 70여 곳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함으로써 ‘과잉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국의 5촌 조카가 구속되고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가 하면, 부인인 정경심 교수가 5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딸(나중에는 아들도)에 대한 대학입시용 스펙으로 제출된 논문의 적격성과 불투명한 장학금 수혜에 대한 논란이 증폭됐고, 조국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도덕적인 강남 좌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말로는 사회 정의와 공정성을 외치면서 불의와는 담을 쌓고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자기 실속을 철저하게 챙겨온 사실이 드러나고 이 사회 소수 특권층의 이중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이면서, 그 위선에 배신감을 느낀 대중들의 환멸과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 최용익 전 MBC논설위원

조국 정국은 외견상 검찰과 주류언론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지난 8월 9일 법무부장관에 내정된 지 66일 만에, 취임한 지는 35일 만의 퇴진이다. ‘조국 장관은 안 된다’며 거취를 걸었던 것으로 알려진 검찰총장 윤석열은 목표를 달성했다. 검찰과 합작해 유례없는 검증의 칼날을 들이댄 언론도 그의 사퇴를 이끌었다.

조국은 법무부 장관 사퇴의 변으로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에 만족한다”고 했지만 기록적인 단기 중도 퇴진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부인이 뇌종양과 뇌경색 진단을 받는 불행을 떠안게 됐고, 자연인으로서 추후 검찰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도 임명 전부터 적절성에 의문부호가 붙었던 조국의 장관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검찰개혁의 전도가 불투명해졌을 뿐 아니라, 정권에 대한 지지자들의 이탈로 반사이익을 얻게 된 자한당을 부활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자한당은 그간 퇴행적, 극우적 행태로 박근혜 탄핵 이후 떨어졌던 지지율이 좀체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조국사태’를 계기로 반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 조국의 중도 퇴진을 주도한 세력은 뭐니뭐니해도 검찰과 조중동을 비롯한 주류언론이다.

우선, 검찰은 여야가 밀당 끝에 인사청문회를 하기로 합의한 다음날,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치적으로 풀 수 있으며, 풀기 위한 단초가 마련됐음에도 검찰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게 되자 즉각적으로 칼을 빼 든 것이다. 이는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경찰청 국감에서 참고인 진술을 통해 “검찰이 자녀 입시 의혹 등 관련 자기소개서 등을 압수수색하고 부인 정경심을 피의자 조사 없이 기소한 것은 ‘정치와 장관 인사에 대한 개입’”이라고 규정한 데서도 입증된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인사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조국의 부인을 기소한 데 이어, 전례없는 장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11시간이나 벌이기도 했다. 검찰 수사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이례적인’ 언론 플레이도 뒤따랐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은 검찰의 총수인 윤석열을 겨냥해 “총칼은 안 들었지만 검찰의 난이자, 윤석열의 난”이라며 “신군부와 비슷한 정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검은 부인했지만 조국의 법무부 장관 지명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윤석열은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자, 8월 27일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드러난 성과는 미미하다. 국정농단 때보다 더 많은 특수부 검사 등 다수 인력을 투입해서 조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유시민은 검찰이 조국의 자녀들을 불러 수사한 것이 ‘2차 가족인질극’이라며 “조국 장관을 바로 입건할 수는 없으니까 배우자를 입건해서 주저앉히려고 했는데 정경심 교수를 사문서 위조로는 영장 청구를 못하고, 그나마 할 수 있다면 펀드 관련 횡령인데 그게 잘 안 묶이니까 ‘뭐 하나라도 인정해라, 아니면 딸‧아들 기소할 거다’라는 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검찰의 강압수사를 맹비난했다.

“바꿔 생각해보자. 경우는 다르지만 ‘검찰총장 후보자 윤석열’의 국회 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뉴스타파> 녹취 사건이나 가족들의 주식 등 금융거래를 파헤치겠다며 특수부 검사(혹은 공수처 검사) 수십 명이 달려들었다면? 그래서 취임 뒤까지 두 달여 아내 사업체, 녹취록 속 검사·변호사 사무실, 총장 집까지 탈탈 털었다면? 무엇보다 특수부 칼을, 대학생 자기소개서에 한 줄 등장하는 이들까지 줄줄이 불러대는 데 쓴 건 ‘비례와 균형’ 수사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 청와대·국회의 검증과 여론을 거치며 ‘정치’가 해결해야 할 영역에 칼 찬 검찰이 뛰어든 원죄가 크다.”(<이제는 ‘윤석열의 시간’>, [김이택 칼럼] 중, 한겨레 2019년 10월 16일자)

임은정 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조국의 사퇴를 두고 “검찰이 죽을 때까지 찌르니 죽을 수밖에” 없다며 “타깃을 향해 치고 들어가는 검찰의 속도와 강도를 그 누가 견뎌낼 수 있을까”라고 검찰의 수사행태를 개탄했다. 또 “검사가 사냥꾼이 되면 수사가 얼마나 위험해 지는가를 더러 봐왔다”며 “(조국 딸이 받은) 표창장 위조 혐의에조차 사냥꾼들이 저렇게 풀리는걸 보며 황당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직 검사로는 이례적으로 경찰청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임은정은 “검찰권이 거대한 권력에 영합해 오남용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검찰 공화국’을 방어하는 데에 수사권을 사용하며, 이런 오남용 사태가 너무 많아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며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업보가 너무 많다. 내가 아는 것을 국민이 다 안다면 검찰이 없어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국민이 ‘더는 너희를 믿지 못하겠다’고 권한을 회수해 간다면 마땅히 우리는 내놓을 수밖에 없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3. 조국은 장관 후보 지명을 받기 전부터 언론의 매서운 검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정작 후보인 조국이 아니라 그의 가족에 대한 문제가 주로 검증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소한 일들조차 ‘단독’이라고 붙여 보도하는 언론들의 무분별한 경마중계식 단독 경쟁 속에서 의혹은 사실인 것처럼 유포됐다.

조국 가족 자산 관리인 김 차장의 녹취록을 둘러싼 KBS의 내홍은 검찰과 언론의 오래된 유착관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조 장관이) 고맙다고 했다”는 진술이 ‘컴퓨터를 교체해줘서 고맙다’로 왜곡되더라는 폭로는 KBS 등 주류언론의 보도행태를 까발렸다. 일부 언론이 검찰이 알려준 대로 “김차장이 후회한다고 했다”고 보도한 뒤, 유시민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 김차장이 보내온 ‘후회 없고 매우 만족한다’는 문자는 검찰과 주류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움직였음을 웅변한다.

KBS에서 있었던 기자들과 사장 등 고위 간부들 사이에 일었던 내부 분란의 원인은 검찰수사에 대한 언론의 왜곡된 보도 관행에 있다. ‘거악 척결’을 한다는 검찰과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언론의 결탁은 피의자의 인권을 무시해왔으며, 특종 경쟁을 악용한 검찰의 우월적 지위는 언론의 비판 기능을 무디게 했다. 다른 출입처와 달리 검찰 출입기자는 특히 감시‧견제보다는 수사 진척상황을 1분이라도 먼저 보도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 언론사에 이른바 ‘단독’을 빼앗기게 되니까 말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취재원인 검사들과 협조관계로 시작됐지만 결국은 검찰에 종속되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이런 구조는 현직 출입기자만이 아니라 소속 언론사의 전 출입기자였던 간부들과 연결되어 법조카르텔을 형성하게 돼, 지금같은 검찰과 정권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기자들은 ‘검찰의 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피의자의 인권보다 검찰이 불러주는 혐의사실을 먼저 써야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는 풍토가 만들어졌고, 이는 검찰출입 기자들을 ‘기레기’로 만드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검찰이 필요에 따라 입맛에 맞는 언론사에게 선별적으로 기사거리를 나눠주는 현실에서 알 권리를 내세운 ‘피의사실 공표’ 관행이 설 자리는 없다. 그래서 피의사실 공표와 알 권리 문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특수부 축소보다 더 중요한 검찰개혁 과제인 셈이다.

검찰은 사실 여부를 판정하는 심판관이 아니라 의혹을 주장하는 일방의 선수일 뿐이며, 검찰의 반대쪽에는 변호인이라는 또 다른 입장의 선수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법조카르텔에 묶여있는 언론들이 검찰이 흘리는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반복해서 보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민은 검찰 수사를 의혹 제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사실로 여기게 될 수밖에 없다.

조국 사태는 또한 우리가 확증 편향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가 지난 7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 청문회 말미에 위증을 뒷받침하는 윤석열 통화녹음 파일을 공개했을 때 후원자 3,000명이 후원을 해지했다. 이는 전체 후원자의 8~9%에 달하는 비율로 광고 없이 후원만으로 운영되는 뉴스타파로선 혹독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이런 상황은 조국사태 이후 급반전된다. 즉, 검찰이 조국의 부인을 기소하고 수사를 본격화하자 “뉴스타파에 사과한다” “내가 어리석었다”며 뉴스타파에 ‘댓글 사과’를 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언론사 못지않게 언론 수용자들도 각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다.

 

4. ‘조국 사태’는 2019년,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척도이다.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수많은 말이 오갔다. ‘검찰개혁을 위해 조국을 응원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집권당이 됐을 때마다 달라지는 여야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내로남불’ 논쟁, 또 ‘조국이 최순실이나 우병우와 다른 게 뭐냐’고 꼬집는 사람 등등. 학벌에 따른 자원배분의 격차 해소를 위해 ‘대학 입시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가 하면 입바른 소리를 하던 ‘구(舊)조국’과 장관이 된 ‘신(新)조국’이 다른 사람이라거나, 조국이 자신의 앞날을 예언한 ‘조스트라다무스’였다는 식으로 조롱하는 소리도 나왔다.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실망이 커진 것도 이번 사태가 불러온 결과 중 하나다. 구조국과 신조국의 현격한 차이에 ‘진보나 보수나 다를 것이 없다’는 자탄과 지탄이 난무했다. 한국의 진보가 내세운 민주화는 사실상 정권교체 이외에 내용적으로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며, ‘조국사태’는 진보 역시 보수와 같은 지역주의와 학연, 혈연 등 기득권에 안주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검찰개혁을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의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이같은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낙마라 할 수 있는 조국의 중도사퇴는 필연이다. 대통령 문재인이 민정수석이던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다는 말이 나올 때부터 전 대통령 이명박이 당시 민정수석 권재진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할 때 민주당이 공격하던 논리, 즉 “공정한 법집행이 안 된다”, 권력 최측근의 회전문 인사다“를 감수하고도 꼭 조국을 기용할 이유는 무엇일까?

또 ‘조국이 검찰개혁의 최적임자다’라는 주장의 근거는 있었던가. 지명 당시부터 예견됐던 바, 야당과 특히 조중동 등 문재인의 개혁노선을 비판해온 세력들이 조국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잡도리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검증과 사전 준비를 거쳤어야 하며 문제가 있다면 인사 철회를 했어야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문재인(과 그 참모진)의 정치력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통일부 장관에 보수주의자인 강인덕을 기용하는 파격을 선보이지는 못할지언정, 격렬한 충돌이 뻔히 내다보이는 조국을 기용함으로써 낭비되는 국력손실과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후폭풍은 문재인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아쉬운 점은 이렇게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감행된 인사참사로 바닥권이던 자한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에 거의 근접했으며, 내년에 치러질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결코 제 1당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안이한 대처와 인사정책이 불러온 후과는 크다. 그리고 민심은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집권세력은 이번 기회에 처절하게 깨달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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