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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준 칼럼] 적반하장도 가끔은 절실히 필요하다

기사승인 2019.12.11  14: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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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든 그에게든

살다 보면 어리둥절할 때가 가끔 있다. 누군가의 앞뒤 안 맞는 행동을 볼 때. 평소의 말과 이 순간의 행동이 사뭇 다를 때. ‘내’가 화를 내야 하는데 ‘네’가 화를 낼 때. 배고파 미치겠는데 “배부르니 그 따위 소리나 하지”라는 지청구를 들을 때. 또 있다. 자신은 결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미친(?) 인간이 다가와 불콰한 얼굴로 삿대질하며 “예쁘면 다야?”라고 거세게 따질 때.

이럴 때면 모두들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게 되고, 일견 기쁘기도 하지만 다음에는 분노의 단계에 자연스레 진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 사람을 놀린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드는데, 그 상황에서 참지 못 하고 불같이 화를 내면,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해 실수를 하게 되고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그 실수를 정확히 포착해 반격을 하게 된다. 이쯤 되면 우물쭈물 하다가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 어떻고...” 비명을 질러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고 그냥 진 게임이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영세민들이 오종종 모여 사는 번잡한 골목에서 어느 날 말다툼이 벌어졌다. 하굣길에 지나다가 목격했는데 30대 중반쯤의 남자 어른 2명이 싸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존댓말로 조심스레 시작하더니 약간씩 언성이 높아졌고 드디어 멱살잡이 직전단계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진입해 두 양반은 황야의 건맨처럼 마주섰다.

 

피해자 : 이게 무슨 일이요?

가해자 : 미안하요.

피해자 : 뭣이 미안한데요?

가해자 : 하여튼 미안하요.

피해자 : 정신병자 아이가. 뭣이 미안한 줄도 모르고 미안하다카네.

가해자 : ... 뭐시라? 정신병자? 응? 정신병자!!

피해자 : 으응. 그게 아니고...

가해자 : 한 번 더 말해봐라 개자슥. 니 방금 정신병자라 캤제? 응? 정신병자라 캤제에!!!

 

▲ 박흥준

순식간에 존댓말이 반말로 바뀌었고 공수가 뒤바뀌는 것도 찰나였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눈앞에서 현장견학하며 나는 새삼 감탄했다. 아. 밀리면서도 약점을 노려야 하는구나. 한 번 약점이 잡히면 처음의 원인행위는 누구에게 있든, 시작점은 어디였든 뒤집힌 결과를 맞게 되는구나. 결국 나만 억울하게 되는구나. 잠시 거세게 밀었던 피해자는 말 한 마디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느닷없이 되밀리게 되었고 그것으로 게임은 끝이었다.

말리는 동네사람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가해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정말 억울한 사람은 자신인 것처럼. 그럼 피해자는? 한동안 조용하더니 길옆 구멍가게의 평상에 앉아 김치안주에 계란후라이 추가해 대선소주 한 병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묵묵히 혼자서 따라 마셨다.

골목길의 그 사건 2-3년 뒤 보게 된 또 다른 에피소드는 도심 한복판의 일대 활극이었다. 아무리 항구도시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태어나 항구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세상을 살았더라도 그래서는 정말 안 될 일이었는데 ‘그래서는 정말 안 될 일’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벌어졌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11시50분에 일제히 연주됐던 딕 페밀리 노래, 제목은 잊었음)를 뒤로 하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나이트클럽을 나온 우리들은 시래기국밥 한 숟갈 먹고 헤어지려 짧은 거리를 서둘러 이동하다가 문제의 그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그 장면은 오랜 세월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어쩌다 주변사람들에게 술자리에서 취한 김에 간략히 그 장면을 소개하면 모두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로 생각했다. 아무리 거친 항구도시였더라도 절대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반박이었다. 아니, 지역을 폄훼하는 얘기라며 나를 개 나무라듯 몰아세우기 일쑤였는데... 내가 본대로 팩트만 건조하게 소개한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과 역시 비슷한 연배의 남성이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거친 말싸움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남 : (애원하듯) 그래 말해바라. 내가 뭘 그리 잘 몬했노?

여 : (당당하게) 그걸 몰라서 묻나. 어이? 생각해 보모 모리겠나?

남 :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모리니 ‘가스나’ 니가 제발 쫌 갤차주라.

여 : (화가 더 난 듯) 가스나? 응? 그라모 이 ‘머스마’야. 니 참말로 사람 복장 터지게 할래?

남 : (견디다 못해) 어데서 목소리를 높이노. 가스나가. 사람들 안 보이나.

여 : (앙칼지게) 니 내 사랑하는 거 맞나? 빨리 말해라! 사랑하면서 그란 식으로 나오나!!! 어이?

 

여기까지는 늘상 있을 수 있는 사랑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진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남성이 여성의 뺨을 느닷없이 손바닥으로 갈겼다. 곧바로 쌍코피가 터졌는데 앞섶이 붉게 물든 여성은 남성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 때리바라. 더 때리라! 와 못 때리노! 지기라. 내를 지기란 말이다아!! 죽어주께에!” 그러자 남성은 여성을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외쳤다. “그래. 내 니 사랑한다. 사랑한다 안 하나. 이 가스나야아아!!!” 에이구. 사랑하면 때리지나 말든지. 때리려면 사랑하지나 말든지.

누가 누구에게 적반하장인지 그 당시 우리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튼 당사자 누구에게는, 나아가 당사자 쌍방에게는 시차를 두고 서로 적반하장이었음이 틀림없었다. 내 젊은 날의 씁쓸한 에피소드는 세월이 만만치 않게 흐른 요즘 어떤 풍경의 데자뷔가 되어서 나로 하여금 또 한 번 씁쓸함에 젖게 하고 있다. 적반하장이 난무하는 세상은 인류세이자 동시에 말세이다. 지구를 뜯어먹어 멸망시키는 종이 인류이고, 인간이 인간 아니게 된 세상이어서 세상의 마지막이 지금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정말 이런 세상이라면, 인류세이자 말세가 지금이라면 지금 이 따위 글을 쓰든, 게거품을 물며 성토를 하든, 삭발을 하든, 높이 올라가 태풍을 맞든, 광장에서 집회를 하든, 밀실에 처박혀 세상을 잊으려 관조하든, 그 무엇을 하든 실로 무망한 노릇일 터.

그럴 자격이 전혀 없는 인간이 무언가를 약간 잘못한 다른 인간을 개 나무라듯 짖어서 나무라면 처음 들을 때는 어리둥절하지만 설명을 계속 하는데도 폐성(吠聲, 개 짖는 소리)이 계속 들리면 너나 할 것 없이 숨이 막혀 드디어 절망하게 된다. 아울러 머리 깎을 자격이 전혀 없는 일군의 무리들이 릴레이로 머리를 깎아대면 일찌감치 머리를 깎은 적이 있는 어떤 거룩한 분들과, 무명초를 일정한 간격으로 늘 밀어내야 하는 스님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존심을 심하게 상하거나 굴욕감에 치를 떨게 되지 않을까. 그동안의 공부가 잠시 무용지물이 되지나 않을까. 삼지창이든 소림무술이든... 저 마군(魔軍)이들을 일단 싹 쓸어 없앤 뒤 불목하니로 천수경 공부 다시 시작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성불(成佛)이 빠르지 않을까. 빡빡이가 밤송이로 진일보한 요즘에도 그런 깨달음이 계속돼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적반하장은 일상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모두가 모두에게 억울한 것이다. 당시에는 분노에 정신을 잃다가 일정한 세월이 흐른 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가능한 나이가 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게 인생이라고 어느 선지식(善知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일상의 삶이 아닌 정치모리배의 세상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역지사지를 절대 하지 못 하는 부류들이어서 역지사지 대신 사생결단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상의 삶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도 시치미를 뚝 떼게 된다. 그 다음은 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이다. 하긴 민주주의는 칼 대신 말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이는 체제이니. 그래서라도 절망은 이르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절필(絶筆)이 곡학아세(曲學阿世)를 면(免)하는 유일한 길이란 걸 요즘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 언론이라 이름하는 확성기들은 일단 입맛에 맞는 주제라면 진위여부를 가리지 않고 증거가 있든 없든 무엇이든 긁어모아 생중계 수준의 보도를 함으로써 한 줌 서적(鼠賊)들의 시류에 영합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목적한 바를 일거에 이루려 하고 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게 아니라 약간의 사실로 거대한 진실을 덮으려 몸부림치고 있다. 그 덮으려는 진실이 무엇이든 지금 전개되는 세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진실이 덮인 뒤 세상은 온난화를 거슬러 빙하기로 지구 위의 인간을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절필이다. 빙하기로 가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늦추는 유일한 방법은. 나부터 절필하련다. 내가 절필해야 저들의 입이 봉해질 것이므로. 단디뉴스 독자 분들께는 죄송하기 짝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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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준 840039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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