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주도로 지역에 알맞은 기능 더해 도시재생해야, 인구유입정책도 중요

[단디뉴스=김순종 기자] “지방중소도시들마다 도시 외곽에 신시가지를 개발한다. 그리고 도청과 시청과 경찰서 같은 관공서들을 죄다 새로 만든 신시가지로 옮긴다. 그래놓고 구시가지가 죽어간다며 또 난리법석을 떤다. 전 국토가 개발병과 그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대한민국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도리가 있겠는가”

- <천천히 재생>, 정석 교수. 2019 -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그의 책 ‘천천히 재생’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의 개발 패러다임이 구도심 공동화를 가속시켰고, 구도심 공동화가 일어나자 또 다시 개발주의 정책으로 구도심 공동화를 극복하려하는 양태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중앙정부 보조금에 의존한 시한부 프로젝트는 실패하게 마련이고, 일본이 이미 경험해온 일이라는 것.

그는 도시재생의 성패는 ‘자생’에 있다고 말한다. 지역의 자체적 방안 마련을 통한 재생이 아니라면 재생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전문가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단시간이 아닌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재생할 것’, ‘관 주도가 아닌 민관 거버넌스 체제로 진행할 것’, ‘기존 도시환경을 살리면서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등을 권유했다. 2부에서는 죽은 도시를 살리는 도시재생사업의 선진사례를 알아본다.

 

▲ 진주시 위성지도(사진 = 네이버 지도)

문재인 정부 들어 도시재생이 화두다. 정부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매년 10조원 씩 총 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지방중소도시의 몰락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230여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쇠퇴했거나 쇠퇴하고 있다. 2040년이 되면 자치단체 가운데 30%가 제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나온다.

지방 중소도시 쇠퇴의 근본원인은 인구감소 문제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8명. 통계청은 2029년부터 인구감소가 시작될 것이라 보고 있다. 저출산 국면에서 지방도시는 더욱 위험을 안고 있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사회적 인프라와 대적할 수 없는 도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100대 기업 본사의 95%, 전국 20대 대학의 80%, 의료기관의 51%가 몰려있다.

기업 본사나 의료기관을 인위적으로 지역에 보내기란 힘들기에 그간 각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조성, 주택단지 조성 등의 방식으로 지역경제 활력을 도모해왔다. 하지만 이는 지역경제활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전국에는 200곳에 달하는 산업단지가 조성됐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다보니 일반산단의 경우 미분양률이 7.2%에 달한다. 진주 정촌면 뿌리산단이 3월 준공을 앞두고 10%내외의 분양률을 보이는 것도 이같은 이유로 짐작된다.

 

▲ (사진 = Pixabay)

수요를 넘어서는 주택 공급도 지역경제에 활력을 주기보다 구도심 공동화 등을 부르며 도시를 황폐하게 했다. 진주만 하더라도 2025 진주시도시기본계획에서 주택단지 조성으로 7만여명의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 봤지만, 10년간 아파트 세대수가 2만5천여 가구 늘 때, 인구는 고작 1만명 정도 증가했다. 경주시 또한 198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2만여 세대의 아파트를 공급했지만, 인구는 오히려 2만여명 줄었고, 문경시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신도시 개발, 산단조성은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오는 방식이 더 이상은 아닌 셈이다.

특히 1인인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 공급은 수요를 무시한 공급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수는 600만으로, 전체 가구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곽운학 작은기업연구소장은 “1인 가구수 증대에 따라 이제는 큰 집보다 미니멀 하우스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미니멀 하우스를 구도심에 건립하고, 적은 임차비용으로 젊은 인구를 유입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사진 = Pixabay)

전문가들은 이제 도시재생으로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석 교수는 그의 저서 ‘천천히 재생’에서 “도시개발시대의 개발이 대규모 ‘빅프로젝트’였다면 도시재생 시대의 개발은 ‘스몰프로젝트’가 돼야 한다”며 “이제는 크신재(크게, 신도심, 재개발)의 시대가 아닌 작고채(작게, 고치고, 채우는)의 시대”라고 말했다. 개발단위를 작게 줄이고, 새로 만드는 대신 고쳐 쓰고, 도시 확장 대신 도시 안의 빈 곳을 채워 지역을 살리자는 것.

도시재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 주도의 사업이 아닌 민관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주민주도의 사업을 실시할 것 ▲당장의 성과를 욕심내기보다 천천히 오랫동안 재생사업을 이어갈 것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 사회문화, 경제, 정체성을 고려해 기존의 도시에 추가적 기능을 더할 것 ▲지속적으로 도시와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 것을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이같은 방법으로 도시재생의 성공모델이 되고 있는 곳이 일본과 국내에도 적지 않다.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는 자생에 기초한 도시재생 모델이다. 기타큐슈시는 빈집 등 유휴부동산 활용을 위한 투자를 유치해 새로운 창업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스스로 사업을 벌인다. 2011년 고쿠라야모리구상 5개년 계획을 입안했고, 자치단체, 민간기업, 학계가 참여하는 리노베이션 마을만들기 추진협의회가 구성됐다. 유휴 부동산 활용을 위한 리노베이션 스쿨도 만들어졌다.

2011년 리노베이션 스쿨이 처음 개최된 뒤 2013년까지만 12개 사업이 시행돼 247명이 신규 고용됐고, 2015년까지 지역 내 50개 이상 유휴부동산 중 30%가 사업화되거나 사업화 준비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리노베이션 스쿨은 리노베이션의 의미처럼 빈집, 공실 사무소, 창고, 빈 가게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소유주, 사업자, 투자자도 다 함께 이익을 얻게 하는 새로운 상생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 (사진 = Pixabay)

일본 효고현 아와지섬은 지역자원을 활용해 일자리 창출을 해낸 사례로 꼽힌다. 아와지섬은 식량자급률이 110%(일본 식량자급률 39%)에 달할 만큼 풍부한 식재료의 보고로, 젊은이들이 취업 문제로 떠나자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 프로젝트를 시작, 지역고용창조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지역자원을 활용해 가업이나 생업 수준의 창업을 지원하는데 도지새생사업의 중점을 둔 것이다.

프로젝트 4년간 아와지섬에서는 다양한 일자리와 상품이 만들어졌다. 섬에서 키우는 가축의 분노냐 채소 쓰레기를 처리해 만든 유기비료 상품 ‘섬의 흙’은 순환형 농업 구조를 만들었고, 일본 3대 기와 가운데 하나인 아와지 기와를 계승해 현대적으로 되살린 ‘마치마치 기와’, 아와지 특산품으로 만든 조미료 선물세트 ‘GOTZO’, 섬의 과일과 채소로 만든 ‘아와지섬 야마다야’ 등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지원을 받아 시작된 연구섬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자원 특화상품 14종, 관광상품 7종 등 21개 신상품이 개발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갤러리가 있는 복합공간, 식당, 양복점, 이벤트 기획회사 등 여러 가게가 생기기도 했다. 2016년 후생노동성 지원이 끝나고도 지역에는 일하는 형태를 연구하는 섬이라는 뜻의 ‘하타라보지마 협동조합’이 생겨 그동안의 연구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 = Pixabay)

육아지원에 적극 투자해 도시재생의 핵심이라 할 인구문제(저출산)를 해결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일본 오카야마현 나기정은 민관이 참여하는 ‘나기정 재출발 정책위원회’를 2003년 발족시켜 육아지원에 집중 투자했다. 이들은 불임치료비, 출산축하금, 육아지원수당 등 경제적 지원에 이어 사회적 육아지원을 병행해 큰 효과를 봤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는 도시가 됐다.

특히 육아에 관심이 많던 부모들이 만든 모임 ‘나기 차일드홈’을 확대한 것은 큰 성과였다. 주민들이 차일드홈을 함께 운영하며 육아 품앗이를 하고, 아이들이 자연에 뛰어놀도록 한 프로그램 등의 효과로, 나기정의 합계 출산율은 2013년 2.81명을 기록했다. 이 도시의 가구당 자녀수는 한 명이 14.2%, 두명이 35.8%, 세명이 38.8%, 네 자녀 이상이 11.2%에 달한다. 인구 문제를 스스로 극복해낸 경우이다.

 

▲ (사진 = Pixabay)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양한 도시재생사업 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산청군은 지리산이라는 자원을 활용해 녹색산업과 힐링도시를 지향하고 있고, 완주군은 로컬푸드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다. 구례군은 농공단지에 아이쿱생협을 유치해 자연드림파크를 만들었으며, 임실군은 치즈과학고에서 인재를 양성해 치즈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진주시도 최근 성북구 도시재생사업 선정, 구 진주역 철도재생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 추진되는 도시재생사업의 성패를 당장에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의 중요한 기준을 지켜야 도시재생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강승수 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물리적 요인보다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며 “관 주도가 아닌 주민주도의 도시재생을 펴 남강을 중심으로 구도심 지역에 활력을 돋우겠다”고 했다. 곽운학 작은기업연구소 소장은 “그 지역다운 도시가 좋은 도시다. 진주도 진주의 특성에 기초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며 "진주는 농업 인프라가 좋으니 로컬푸드를 살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 (사진 = Pixabay)

도시재생의 핵심 방안인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청년을 보내는 사업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일본은 2009년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을 시작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대도시 지역 청년들에게 4천만 원의 연봉과 활동비 등을 지급하고 지역에서 지역 브랜드·특산품개발, 농림수산업에 종사하게 하는 내용이다. 현재 5천여명의 대원이 일본 자치단체 천여곳에서 활동 중이며, 임기 종료 후에도 약 60%가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최근 지역부흥협력대 사업을 모방한 서울시의 ‘서울청년 지방탐험’ 사업과 경상북도의 ‘도시청년 시골파견제’가 진행되고 있다. 두 사업은 모두 만 15세 이상 만 39세 이하 청년을 선정해 지방이나 시골에 내려 보내고 이들에게 인건비나 활동비, 보조금 등을 제공하는 것이다.

서울청년 지방탐험 사업은 두 유형이다. 고용지원사업은 경북 9개 시군의 농업회사, 사회적 기업 등에 청년을 보내 월 220만원의 인건비를 보조하는 내용이며, 창업지원사업은 지방 창업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는 경상북도 시골지역에 청년들을 보내 지역특산품 개발, 관광, 창작활동, 음식점 등의 창업활동을 하게 하고 연간 1인당 최대 3천만원의 보조금을 2년간 지원하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실패가능성도 거론된다. 임기동안 1년에 10조원 씩 총 50조원을 투자해 500여개 지역을 살리겠다는 목적이 달성되기 어렵다는 이유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모든 곳을 살리기보다 재생 가능성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재생사업을 펼치고, 지역에도 서울에 대적할 만한 도시를 키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압축도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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