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많으면 연락하소. 마중 나갈게.’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첫차로 읍내에 나간 아내는 목욕탕 가고, 한의원도 들르고, 반찬꺼리 챙겨 한 시 버스로 들어온다고 했다. 주말에 민박손님이 꽤 많으니 짐이 만만치 않을 거였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오기에는 제법 멀고 길이 가팔라 벅찰 일이다.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말고 마중을 나가려는데 아내가 문간을 들어서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양팔에 들고 가방은 어깨에 걸머졌다. “전화하라니까. 팔 빠지겠다.” 맨발로 마당으로 나가 짐을 받았다. 아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마루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 김석봉 농부

“고물 팔아요. 고물. 찌그러진 냄비, 깨진 모판, 헌 책, 비료푸대 고물 팔아요. 고물.” 고물장수가 골목을 돌아나간다. 언제나 변함없는 확성기소리, 낡은 트럭 소음만 들어도 고물장수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에서 나오는 잡동사니를 말끔히 치워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저 고물장수가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기엔 아까운 쇳덩이들은 어찌할까. 쓰레기봉투에 담기조차 어려운 커다란 고물들은 어찌할까. 지금은 그나마 사지수족 멀쩡하니 마을 쓰레기장까지 가져가 버리면 되지만 더 나이를 먹고 걷기도 불편해지면 집에서 나오는 쓰지 못할 것들은 어찌 하나.

세월이 더할수록 세간살이가 닳거나 찌그러져 버려야할 것들도 더 늘어날 것이다. 그때도 저 고물장수가 마을을 드나들기를 바랐다.

“문 고치세요. 문. 고장 난 문 고쳐드립니다. 깨진 유리, 찢어진 방충망 갈아 끼우세요. 나무문 로라, 샷시문 로라 갈아드립니다.” 한 달에 두 번 꼴로 문 고치는 트럭이 우리 마을을 찾아온다. 산 너머 남원에서 오는지 확성기소리는 부드러운 전라도 억양이었다. 투명유리, 반투명유리, 얇은 유리, 겹유리 등등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판과 스텐재질의 방충망을 싣고 느린 속도로 마을 골목골목을 돌아나간다.

몇 번 문 고치는 차를 불러세웠던 적이 있었다. 뜯어진 방충망도 고치고, 금 간 유리창도 바꾸기 위해서였다. 고마운 차였다. 저 차가 마을을 찾지 않는다면 고장 난 문짝을 뜯어 읍내로 가지고 나가야할 처지였다. 세월이 더 흐르면 집도 많이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부디 그때도 저 차가 마을을 찾아주기를 바랐다.

“생멸치가 왔습니다. 생멸치. 싱싱하고 살이 찬 남해 생멸치가 왔어요. 젓갈 담그세요. 젓갈. 싱싱한 젓갈 담그세요. 젓갈.” 갈치며 동태를 팔러 다니다 젓갈 담글 계절이면 생멸치를 한가득 싣고 마을을 찾는 생선장수가 있다. 해마다 아내는 이 생멸치로 젓갈을 담갔다. 가끔 생선도 이 생선장수에게서 사는데 갈치가 특히 맛있다고 했다.

마늘수확이 끝나가는 유월이 지나면 마늘장수도 마을을 찾아온다. “마늘이 왔어요. 마늘. 저장성 좋은 육쪽마늘. 의성 육쪽마늘이 왔어요, 토종마늘.” 마늘장수의 확성기소리는 건너편 밭까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컸다.

한여름에 접어들면 가끔 과일장수도 마을을 찾았다. “수박이 왔어요, 수박. 꿀참외, 도마토가 왔습니다. 과일사세요. 과일.” 그나마 젊은 나도 읍내 장에서 무거운 수박을 사오는 것은 고역이었다. 이웃 노인네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수박은 대체로 잘 팔렸다.

김장철이나 장 담글 시기가 다가오면 소금장수가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소금장수는 별 재미를 못 보는 것 같았다. 농협에서 정기적으로 주문을 받았고, 집까지 배달하니 굳이 소금장수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마을을 찾아드는 잡상인 중 으뜸은 단연 만물장수였다. 매 주 두 번씩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만물장수를 기다리는 이웃 노인네들은 많았다. 만물장수 확성기소리는 숨 가빴다. 그 많은 품목을 다 호명하려니 듣는 사람이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기초농산물에서부터 생선, 육류, 가공식료품, 잡화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상회였다. 에프킬라, 백열전구, 장갑, 양초, 성냥에 조그만 양은냄비까지 구비하고 다녔다. 라면, 국수, 감자수제비는 물론이고 귤, 사과, 배와 같은 기초과일에 콩나물, 두부, 양파, 감자, 동태, 오징어, 생닭과 삼겹살까지 그야말로 이동하는 장터였다.

농사일이 한창일 때는 주로 이 만물장수를 이용하지만 요즘처럼 한가할 때는 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홀로 사는 노인네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만물장사가 왔나봐.” 마을 입구에서부터 숨 가쁜 확성기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만물장사에게서 살 걸.” 비닐봉지를 풀어헤쳐 장짐을 정리하면서 아내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내의 장짐도 대개 만물장수가 가지고 다니는 콩나물과 두부, 당면, 고무장갑 따위였다. 굳이 읍내까지 가서 살 일도 아니었다.

“그러네. 다음부턴 저 만물장사 것을 사야겠어.” 숨 가쁜 확성기소리는 차츰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마을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만물장사는 우리가 늙어서도 다닐까?” “그러게. 그때까지 다녀야 우리가 편할 텐데.”

만물장수가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얼핏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더 나이를 먹고 몸이 불편해지면, 가까운 면소재지 마트를 찾아가기에도 버거워지면 영락없이 저 만물장수를 이용해야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어느새 환갑진갑 다 넘긴 중늙이가 되어버렸고, 아내마저 올해 새로운 갑자를 맞았다. 자꾸만 쇠해가는 몸을 느끼며 읍내 한의원에서 장침과 부항기에 몸을 맡긴다. 두어 병은 거뜬하게 마시던 술이었는데 반병만 마셔도 몸이 무거워진다. 끼니마다 고봉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었는데 자꾸만 큰 밥그릇이 버거워진다.

“양파, 대파, 감자, 당근, 감자수제비, 삼겹살, 동태, 갈치, 마른멸치, 국수, 라면, 다시다, 식용유, 가루소금, 밀가루, 튀김가루......” 멀어지는 만물장수 확성기소리를 따라 해가 기울었다. 우리 인생의 기울기를 보여주듯 산그늘이 빠르게 마당을 덮고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먼 어느 곳으로부터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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