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수막걸리가 그동안 계속해서 써오던 녹색 페트(PET)병 대신 투명한 막걸리 페트병을 시장에 출시하였다. 지난 달 25일에 시행된 소위 자원재활용법 개정에 따른 결정인데 늦은 감이 있지만 법의 강제성에 기대더라도 막걸리 용기의 투명화는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막걸리 용기로 페트를 쓰는 건 플라스틱이 가진 본연의 장점인 싸고 가벼운 점 때문이다. 막걸리 자체가 가진 싸고 배부른 술이라는 전제에 부응하기 위해 아직도 많은 막걸리 업체들이 수입쌀을 써서 생산원가를 낮추려 하는데 페트병은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의 재료였다.

▲ 백승대 450 대표

막걸리 용기를 불투명한 유색의 페트로 쓰는 것은 자외선으로부터 막걸리의 보존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생막걸리의 법정 유통기한이 14일인 걸 감안하면 페트병이 투명인지 불투명인지가 딱히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생막걸리의 경우 상온에서 용기가 부풀어 올라 흐르거나 넘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뚜껑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놓았으니 진공 밀봉 상태도 아니다. 생막걸리는 효모가 살아 있는 상태로 병에 담기고 발효가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루만 지나도 막걸리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건 다들 쉽게 경험해보았을 터이다. 14일밖에 되지 않는 유통기한 때문에 그동안 유색 페트병을 사용했다는 건 너무 궁색한 변명이 아닐까?

법이 개정되고 시행되면서 모든 플라스틱 용기들은 재활용이 쉬운 투명의 용기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맥주의 갈색페트 용기는 5년의 기한을 유예받았다. 맥주 업체들이 바로 투명으로 못 바꾸겠다고 몽니를 부르니 연구 용역과정을 거쳐 대체재를 5년 안에 찾으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갈색의 맥주페트병은 재활용이 어려운 가장 최악의 재료로 우리가 맥주페트를 구매하고 버렸을 때 파쇄되어 불쏘시개로 쓰이는 것 말고는 딱히 사용할 곳도 없다.

국내 맥주시장의 15%를 페트맥주가 차지하고 있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맥주의 보존율이 가장 높은 것이 병이고 다음이 캔, 꼴지가 페트병이다. 상하거나 김빠진 맥주가 되기 가장 쉽다는 것이다. 야외로 캠핑가거나 놀러갈 때 마트에서 들고 가기 편하게 페트맥주를 사고 남은 페트맥주를 집으로 가져와 며칠 뒤 따서 맛을 보면 맛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콜라도 병콜라가 제일 맛있고 캔콜라, 페트콜라의 순서이듯 탄산을 함유한 맥주도 다를 바가 없다.

이번 개정안의 시행에 대해 OB맥주의 어느 관계자는 "맥주 페트를 갈색으로 하지 않으면 햇볕이 들어가 품질이 변한다. 아직 마땅한 대체제가 있지 않다" 라는 희대의 뻘소리 인터뷰를 했다. 나는 이 자가 의무교육인 중고등과정에서 과학만 빼고 배웠는가 의심한다. 명색이 맥주회사에서 일하는 자가 맥주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이렇게 일천한데도 어찌 입사를 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낙하산인가?

맥주병이 갈색이나 녹색이 많은 것은 색에 따라 자외선 차단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갈색이 차단율이 가장 높고 다음이 녹색이라 대부분의 발효주들은 갈색이나 녹색병을 쓰는 것인데 그럼 카프리와 코로나, 버드아이스가 투명한 유리병을 사용하는 건 그들이 바보라서 그런가? 코로나는 OB랑 같은 회산데?

어느 샌가 맥주의 법정 유통기한을 1년으로 정해 놓고 오래오래 팔아보겠다는 심산인데 술장사 하는 사람들은 안다. 세상 어느 맥주도 1년은 못 버틴다는 걸. 유리나 캔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갈색 페트병 맥주가 사라지면 페트맥주의 유통기한은 짧아질 테고 소비자는 그만큼 신선한 맥주를 즐길 수가 있다. 제품 품질 보존의 이유 같은 헛소리 하지 말고 유통기한이 짧더라도 투명페트에 담아 팔면 소비자들이 더 좋아할거다. 요즘 OB맥주의 광고 슬로건이 갓 만든 신선한 맥주인데 왜 페트용기는 신선한 걸 안 팔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최대 7~8회 재사용되는 국산맥주나 소주병은 환경오염도 막고 원가 절감에도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원이지만 한 번 쓰고 재사용이 아닌 재활용대상이 되는 수입맥주병, 각종 음료수병 등은 날짜 맞춰 내놓아야하는 쓰레기일 뿐이다. 용기 규격을 통일시켜 다양성을 저해하고 생산자의 의욕을 꺾는 것도 문제겠지만 재사용이 안 되고 버려져 환경을 오염시키는 각종 술 용기에 대해서도 더 늦기 전에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병으로 재사용이 안 된다면 다른 용도로 어떻게 재생시켜 써야할지 모두가 고민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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