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 벌벌 떨던 ‘호환 마마’를 뺨치는, 족보에도 없던 역병이 흘러들어온 것이 1820년이었더라. 조선천지가 공포에 휩싸였던 그 시절의 묘사는 역사학자 ‘김신회’의 「19세기 콜레라 충격과 조선사회의 반응」에 조곤조곤 기록된 바, 아슴하나마 그때의 분위기를 짐작하여 오늘과 견주어 본다.

“1800년 이전까지 인도 벵갈 지방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가 1820년 중국 광동을 거쳐 이듬해 산동과 북경을 경유해서 조선에 들어왔다. 콜레라는 1821년 7월 말에서 9월 말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에서 발생하고 이듬해에는 제주도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 창궐했다. 콜레라가 맹위를 떨치는 동안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략 열흘 간격으로 집단사망했다”『목민심서』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1821년 콜레라로 인해 평양에서 죽은 사람만 수만 명이며, 도성에서 죽은 사람은 13만 명으로 서술했다.

▲ 홍창신 칼럼니스트

『역서일기(曆書日記)』 또한 “도성 안에서 이 병으로 죽은 사람만 20만 4천여 명이고, 시골은 그 수를 알 수 없으나 서울에 비해 두세 배에 이른다”라고 했다. 이후 병균은 인간의 이동과 함께 인접 지역으로 옮겨간다. 예컨대 요동을 거쳐 평안도로 들어온 병원균은 황해도를 지나 서울, 수원을 거쳐 충청, 전라, 경상도로 번져갔다. 여기에는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을 부채질할 수 있는 뜬소문까지 동반되곤 했다.

꼬박 2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 시대나 별반 진배없는 꼴이다. 인류가 전염병에 대응하느라 그간 예방의학의 수준을 상당한 지경까지 끌어 올렸다 하나 세균이란 물건 또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며 적응하고 변이하는 특장으로 무장한지라 맞서 이겨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도시 ‘우한’에서 발생해 ‘신종 코로나’라 이름 얻은 이 변종 바이러스가 슬그머니 국경을 넘더니 삽시간에 세계로 번졌다. 비교적 가벼운 감기 형태의 초기 증상과 요란하지 않은 잠복기를 거치며 전염이 쉬운 특성으로 무장해 공격해온 것이다. 추이 관망하던 ‘세계보건기구’가 마침내 국제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연신 특보로 비춰지는 인구 천만이 넘는 그 도시의 텅 빈 거리를 TV로 보며 그들이 느낄 공포의 크기를 짐작해 본다.

그게 뉘 탓이건 어차피 발병한 것이고 다만 전염 확산하지 않도록 방비함은 공동체 전부가 합심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정부의 대응이 완벽은 아닐지라도 제대로 가닥을 잡고 있는 눈치고 시민들의 자세도 예전에 비해 차분하고 여물어졌다는 느낌이다. 십수 년에 걸쳐 해거리하듯 메르스나 사스니 하는 등의 역병을 치르며 혼달림한 뒤끝에 얻은 학습 효과가 이참에 발휘되는 것 이러라.

그러나 그 와중에 맞게 된 두어 가지 병증은 결코 전염병에 못지않은 악성의 증후로 세상을 교란한다. 그 첫째가 가짜뉴스의 확산이다. ‘카더라’라는 전언의 형태는 흑백사진을 연상케 하는 순진한 과거 방식이고 이젠 5G 시대에 걸맞게 영상과 사진에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을 입혀 의심의 여지를 지우도록 진화했다. 심지어는 지상파 방송의 속보를 캡처한 것처럼 구성한 헛것도 있다.

“보충수업 도중 쓰러진 학생을 근처 성빈센트병원으로 데려가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1차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 중이며…” “중국에서 가짜 치료제를 사용하다 18만 명이 사망했다” “인천에서 사망자가 나왔다” “고양시 쇼핑몰서 확진자가 쓰러졌다” 등의 허언이 SNS에 오르는 순간 삽시간에 전국으로 뿌려지고 불안은 확산한다.

심지어는 기성 언론까지 은근히 가세해 공포를 배가한다. 중앙일보의 1월 28일 자 기사 “인구 65만 도심에 우한교민 수용? 무슨 죄냐 불안한 천안“ 제하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그 기사 명색은 천안 시민의 불안을 북돋우고 그 반대에 못 이겨 격리장소를 옮기게 된 것이란 결론으로 아산 진천 시민들의 트랙터 시위를 견인한다.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 혼란을 목적으로 삼는 의도가 빤하니 가히 기레기 칭호에 착실히 부합한다.

정치꾼들은 더 노골적이다. 코앞에 닿은 총선에 이득을 얻는다면 무엇과도 바꿀 기세다. “우환 폐렴”이란 직접적 언어를 쓰며 ‘중국인 입국 금지’등 자극적인 표현으로 우환을 득표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징그럽다.

재난지역에 갇힌 자국의 국민들을 태워 오기 위해 비행기 띄우기를 일 같잖게 해내는 나라들이 그간 더럽게 부러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 비행기도 떴다. 봉쇄된 이국의 땅에서 자신을 구출하러 오는 태극마크의 비행기를 바라보는 심정이라!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따지자면 그거야말로 국가가 그 구성원에 복무하는 합당하고도 당연한 자세가 아닌가.

아산 진천 주민의 따뜻한 환영 메시지는 트랙터 시위를 애 터지게 바라보던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중국 인민일보는 우리대통령이 중국 정부에 보낸 응원 메시지와 우리 기업들의 기부 소식을 전하며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다음엔 삼성 휴대폰을 사겠다”라는 자국 누리꾼의 댓글을 기사로 전한다.

역병이 경자년 벽두를 흔들지만 그러나 봄 오는 소리 또한 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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