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방영을 시작한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는 대한민국 중년, 특히나 중년남성들의 노후계획을 확연히 바꾸어 놓았다. 하루에도 수없이 재방송되는 자연인들을 보며 나도 얼른 은퇴해서 자연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거나 텃밭을 가꾸고 약초를 캐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꿈꾸게 한 것이다.

극단적 자연인들처럼 가족이나 속세와 인연을 끊고 은둔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끊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자급자족하며 자연에 동화되어 조용히 노후를 보내는 낭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물론 티비에 출연하는 자연인들은 아무리 추레하게 입거나 헐벗고 있을지라도 그 땅이나 산의 소유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늦기 전에 다 버리고 자연에 파고들어 자연인을 하고 싶어도 본인 소유의 조그만 동네 뒷산이라도 있어야 가능하고 생활에 편리를 위한다면 그 산에는 식수로 음용이 가능한 수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산이 어디 한 두푼인가.

▲ 백승대 450 대표

힘들게 노력해서 땅을 준비하고 귀농 귀촌의 꿈을 실현해 자연인이 되어도 매달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연금이 나오거나 도시에 내 건물에서 월세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자연인을 하려해도 경제적 활동, 즉 돈을 벌어야 한다.

작물을 재배하자니 마땅한 경험이 없고 약초를 캐어 팔자니 약초와 독초도 구별 못하는 낫 놓고 기억자 모르는 까막눈 신세인데 무얼해서 돈을 번단 말인가? 티비로 보기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던 자연인이 뭐가 이렇게도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많은 건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요즘 많은 귀농 귀촌인들이 수익창출 모델로 삼는 것이 바로 술이다. 막걸리, 증류주, 와인 등을 소규모 양조시설을 갖추어 생산해 내는데 아직까지는 미흡한 점이 많은 걸음마 단계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농촌에서의 다른 수익모델들보다 소규모, 소인원으로 고부가가치를 이루어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양조장 운영이 더욱 각광 받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럼 어떤 술을 만들어야 잘 팔릴까? 흔히 말하는 전통주 시장은 탁주 약주 증류주 등이 있고 포도나 복숭아 복분자 키위 등을 이용한 국산 와인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탁주는 유통기한이 짧고 꾸준한 품질관리가 어려워 소규모로 하기엔 가치가 떨어지고 약주는 인지도가 극히 낮은 데다 판매처가 마땅치 않다. 충북을 중심으로 국산 와인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수입산 와인과 경쟁하기엔 여러모로 버거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내가 주목하는 술은 "아이스와인" 이다. 아이스와인은 여름에 포도를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초겨울에 포도를 수확하여 와인을 만든다. 노지에서 오래 방치하였기에 새나 벌레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자연 낙과(실과)의 양도 만만찮아서 생산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영하로 내려간 기온 때문에 포도의 당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져 꿀이나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아주 높은 당도를 가진 달콤한 와인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아이스와인은 보통 와인의 절반 크기의 병에 담겨 판매되지만 고가의 와인으로 식전주나 파티주로 인기를 끌고있다. 

아이스와인처럼 생산량이 적더라도 부가가치가 높으며 많은 사람이 시도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해 술을 만드는 것이 시장 진입이나 제품의 정체성 확립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우리 땅에 나는 재료 중에 아이스와인처럼 저알콜 고당도를 가진 과실들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흔히 구할 수 있고 가능한 수확을 늦추는 게 가능하며 특별한 재배관리가 필요하지 않으면서 당도가 높은 과실은 마가목, 산수유, 고욤 등이 있는데 마가목, 산수유는 이미 담금주로 많이 활용하고 있으니 발효나 증류로 방법을 달리하는 것도 좋을 테다. 고욤은 늦겨울까지 오래 버티면서도 동물들이 건드리지 않는 열매라니 일석이조다.

초야에 묻혀 조용히 자연인이나 하겠다는데 무슨 술이고 양조장이냐 하겠지만 색다른 수익모델이 필요하거나 술에 관심이 많은 자연인 꿈나무라면 한 번 시도해볼만 하다.

술 담그는 자연인이라... 꽤 그럴 듯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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