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국이 달린 유라시아 38,000km #2

*이 여행기는 <경북매일>에 함께 연재하고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행 페리를 타기 이틀 전 아침, 소파에 앉아 가족사진을 찍었다. 매번 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 몇 개월 동안 보지 못할 테니 사진 한 장쯤 남겨두는 편이 좋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평소처럼 아내와 아이들은 집을 나섰고, 홀로 남아 집안 정리를 끝내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짐을 싣고 로시(오토바이 애칭)의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출발.

 

▲ 오랜 친구 인수 씨가 조촐하게 고사상을 차려주어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안전운행 무사귀환'을 빌며 절했다.

◇무사귀환 고사 지내고 동해로.

드디어 출발이었다. 하지만 바로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엔진은 힘있게 돌았지만 충전잭이 작동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충전하지 못하면 길을 찾을 수도, 숙소를 예약할 수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도 없으니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해결해야 했다. 며칠 전 필요 없는 선들을 정리하며 충전잭 커넥터를 연결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결국 공구를 빌려 쓸 수 있는 회사(수머신테크)에 가서 다시 카울을 벗기고 빠진 곳을 찾아 연결하고서야 문제를 해결했다.

오토바이 여행에선 아주 사소한 문제가 이렇게 발목을 잡고 시간을 뺏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리 사전 준비를 꼼꼼하게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터지고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다. 이럴 땐 조바심 내지 않고 느긋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걸림돌이 정확하게 무언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괜히 서두르다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오히려 복잡하게 꼬일 수가 있으니까.

충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수 씨 회사에 갔더니 앞마당에 ‘무사귀환 고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오랜 지기의 배려였다. 여행을 준비하며 오토바이를 정비하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떠나는 날까지 이렇게 깜짝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여행을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더 멀리 더 많이 보고 오는 것이 도움을 주신 분들이 내준 숙제라 생각했다. 막걸리 한 잔 부어놓고 절을 하며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도 로시도 잘 버티게 해달라고 빌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이렇게 여행기를 쓸 수 있게된 것도 어쩌면 고사상 앞에서 엎드려 기원한 간절함의 결과가 아닐까. ‘신을 믿지 않지만’ 세상일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으로 계산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 여행하며 필연 같은 우연을 만날 때면 그런 생각이 흔들릴 때도 있다. 어쨌거나 신의 존재한다는 사실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나로선 증명할 수 없지만 간절함이 긍정의 인과(因果)와 연결되어 있다는 건 굳게 믿는다. (신을 향한 것이 아닐지라도) 간절한 기도만큼 인간의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어딨으랴.

다시 시동을 걸고 강원도 양양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양양에 사는 아우 성진네였다. 하룻밤 묵고 강릉에서 형주 씨와 그의 친구인 정운 씨를 만나 추암해수욕장까지 함께 내려와 점심을 먹었다. 파주 쉼표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형주 씨는 성수공고에서 진행했던 오토바이 정비 과정을 함께 듣기도 했고 그 인연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에 대한 강연도 했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파주에서 강릉까지 배웅하러 온 것이다.

언젠가 유라시아 횡단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형주 씨도 가지고 있었고 먼저 떠나는 나를 응원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형주 씨와 헤어지고 추암해수욕장 근처 한적한 공원 구석에 자리 잡고 모든 짐을 내려서 다시 쌌다. 자주 쓰이는 물건은 꺼내기 편한 곳으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사이드박스에 나눠 넣었다. 지갑에 있던 돈은 가까운 은행에 가서 모두 입금하고 남은 3천 원으로 우유와 빵을 사고 아까 봐둔 자리로 노숙하기 위해 돌아왔다. 텐트 치기도 귀찮아 해수욕장 공원 정자에 매트리스와 침낭만 깔고 잠을 청했다.

 

▲ 형주 씨(오른쪽)와 정운 씨. 형주 씨는 성수공고에서 진행하는 오토바이 정비 수업을 함께 듣기도 했다. 파주에서 동해항까지 먼 길을 달려와 배웅해주었다.

◇D데이, 드디어 페리를 타다

드디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 날.(지난해 5월 13일) 아침 일찍 동해여객선터미널로 이동했다. 출발 시간이 되자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떠나는 라이더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 오토바이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라이더는 6명, 일본, 러시아 라이더까지 포함하면 모두 9명이었다. 유라시아 횡단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간은 4월 말에서 9월 초까지. 그 전이나 그 이후에는 추위가 때문에 오토바이 여행은 힘들다. 대부분 6월에서 7월까지 시베리아 날씨가 온화해질 쯤 예약이 몰린다. 일주일에 한 번 블라디보스토크 행 페리가 출발하고 오토바이는 5~10대 정도만 실을 수 있어 최소한 두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만 배를 탈 수 있다.

2019년이 아니라 2018년 5월에 떠나려고 준비를 끝냈지만 예약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2018년엔 모스크바 월드컵이 열렸고 평소보다 더 많은 여행자들이 몰렸던 탓이었다. 3년 동안 준비했던 여행 계획이 예약조차 못하고 수포로 돌아가자 낙심했고 꽤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오로지 떠날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9월까지 예약이 불가능합니다”란 선사 담당 직원의 답변을 들었을 때 기분이란. 1년에 시베리아를 횡단하려는 오토바이 여행자는 100명 내외, 그들 사이에 내가 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혹시라도 빈자리가 생길까 대기자 명단에 올려달라고 했지만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기다리고 동해항 세관에서 짐 검사를 끝내고 페리에 오르고서야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예약조차 하지 못했던 지난해의 불운은 끝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오토바이 여행자들은 객실 요금을 더 내지 않는 이상 2층 침대가 있는 객실에서 묵는다. 객실 키를 받아 문을 여니 샤워실까지 갖추고 넓은 침대가 있는, 바다가 보이는 1등실이었다. 말로만 듣던 ‘객실 업그레이드’였다. 한 푼이라도 여행 경비를 아끼려 어제만 해도 노숙했던 가난한 여행자의 초발심은 아늑한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봄눈 녹듯 사라졌다. 어떤 불편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결심이 푹신한 침대에 눕자마자 흔들렸다. 사람 마음이란 게 얼마나 간사한지. 이렇게 편한 숙소에서 지내며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편안함은 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끝날 터였다. 하지만 잠시만이라도 처지에 맞지 않는 편안함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내일 일은 내일, 모레 일은 모레 걱정하면 되니까.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함께 배에 오른 여행자들과 이야길 나누었다. 여행을 준비한 과정도 목적도 모두 달랐지만 함께 출발선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각자 유라시아 횡단을 위해 각자 수집했던 정보들을 풀어놓았다. 앞서 횡단 여행을 떠난 사람들과 뒤이어 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오토바이나 차량을 이용한 유라시아 횡단 여행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찾을 수 있지만 역시 이렇게 직접 들으니 생생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들도 많았다. 목적지도 관심사도 비슷하다보니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사소한 여행 팁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렇게 페리에서의 밤은 깊어갔다.

 

▲ 추암해수욕장 근처 공원에서 노숙했다. 아낄 수 있는 건 숙박비와 식비뿐이니 처음부터 허리띠를 조일 수밖에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의 출발선, 블라디보스토크에 서다

꼬박 24시간 동안 동해를 가로지르고서야 배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도착했다. 갑판에 서서 군함들이 정박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보며 여기에 오기까지 준비했던 지난 4년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아니 오토바이를 타고부터 꿈꾸었던 여행이었으니 그보다 기억을 더 과거로 돌려야 했다. 2013년 1년 동안 중국 칭다오에서 포르투갈 포르투까지 가겠다 떠났던 배낭여행에서 7개월쯤 떠돌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와야 했던 그때부터 언젠가는 다시 포르투를 향해 갈 거라 결심했었다. 머무는 곳마다 서점을 찾고 앞으로 책방지기로서 식견을 넓히겠다고 다짐했던 못다한 여행의 마지막 장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이곳에도 봄이 왔지만 바람에선 시베리아의 찬 기운이 스며있었다. 지난 시절 떠났던 긴 여행의 출발지, 칭다오와 시모노세키에 내렸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거칠고 아득한 시베리아가 곧 내 앞에 펼쳐질 거라 생각하니 묘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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